ㅡ 조건의 부재, 부재의 조건
미희의 원룸은 부엌과 방의 구분이 희미했다.
현관에서 곧장 침대가 보였고,
침대에서 고개를 조금만 들면 싱크대 위의 컵이 보였다.
남자는 무릎이 나온 바지를
엉덩이에 걸친 채 냉장고 앞에 서 있었다.
바지는 흘러 내리기 직전이었고,
허리는 한 번도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다.
그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때마다 옆집에서 기침 소리가 났다.
컥.
잠깐의 정적.
컥컥.
남자는 냉장고 안을 다시 들여다보며 말했다.
“먹을 게 이것밖에 없네.”
미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된 지 오래였다.
냉장고 문이 다시 열렸다.
기침도 다시 났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문이 열릴 때 기침이 났고
문이 닫히면 기침도 멎었다.
남자는 반쯤 남은 반찬통을 꺼내 들고,
뚜껑을 열었다가 냄새를 맡고,
다시 넣었다.
“이건 좀 시었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옆집에서 다시 기침이 터졌다.
컥.
미희는 그 소리를 시계처럼 들었다.
지금이 몇 시쯤이겠거니,
냉장고 문은 몇 번 열렸는지를
기준으로 시간을 가늠했다.
남자는 결국 계란을 꺼냈다.
계란판을 통째로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마치 선택을 미루듯.
그 사이 냉장고 문은 또 한 번 열렸다.
기침도 따라왔다.
미희는 생각했다.
이 남자가 이 집에 있는 이유와
옆집 남자가 하루 종일 기침을 하는 이유는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둘 다
여기서 나갈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남자는 계란을 들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거 먹어도 되지?”
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라기보다는,
그냥 동작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프라이팬에 기름이 올려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 위로
옆집의 기침이 한 번 더 겹쳤다.
컥.
옆집 남자의 기침은 이 집 냉장고 문을
감시하듯 정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