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 대신 산에 간 아버지

by 사피엔


봄이 와도 설레지 않고
대신, 조금 더 깊이 울컥한 날이 있다.




점점 소녀가 되나보다. 43년 생 울 아빠는.

딸은 요 며칠 늙음에 꽂혀서

글밥은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 흑백 사진만

왕창 실린 책 한 권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보며,

태어나서 사는 일에 대한 이 근본 알 바 없는 외로움과 허망함에 잔뜩 코 빠뜨리고 앉았는데.


이삼일에 한 번 울릴까 말까한 '카톡' 소리에

부득불 핸드폰을 열어보니,

아버지가 톡으로 보내온 이런 사진.





호박잎인지 곰취인지, 사는 동안 평생에

한번도 생생한 자연 따위에 관심 가져 본 적 없는

무식쟁이 딸은, 이건 또 뭐지? 별 생각없이 읽십.

올 봄엔 고사리, 취나물, 옻나무이파리 삶은 반찬으로 며칠 동안 밥을 맛있게 먹었더랬다.

아버지가 삼봉, 고스톱 치는 대신에 몇 해 전 수술한 부실한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며 산과 밭에서 채취해 온 나물들로.


하나하나 정성껏 뜯어낸(?) 풀들을 정갈히 씻고 알맞게 삶아서, 도시에서 철없이 늙어가는 딸들에게도 먹이고 아들 며느리 손주들에게도 배불리 먹였을 초록빛 탐스럽고 예쁜 저것들.


아빠 주변 도처엔 저런 것들이 막 있나 보다, 초장 찍어 맛있게 먹으면서 내가 먹는 나물 이름이 뭔지, 우리 아빤 저런 걸 뭐하러 캐러 다니는지 물어본 적도 없다.

언젠가 깊은 산에 들어가 욕심껏 고사리를 뜯다가 지척에서 멧돼지 낌새를 채고 지체없이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고 별 자랑스럽지도 않은 경험담을 늘어놓았을 때, 딱 한 번 배꼽을 잡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흐흐흐 비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쁘다. 초록빛 이파리들.

울 아빠가 본 게 노란 꽃잎인지 적갈색 흙인지 알 수 없지만 저것들을 사진에 담아 도시에서 삭막하게

늙어가는 딸 생각하며 보냈을 걸 상상하니

그 마음이 너무나도 서럽다.


이제 와 속탄다. 울 엄마 아버지 그만 좀 늙었으면.


그나저나 쟤네들은 호박인가 곰취인가,

초록의 정체를 이제야 묻고 싶어진다.




어느 봄날의

이 일상의 조각.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자꾸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삶의 도구 > 신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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