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구未久에 닥칠
그녀의 철없는 소리는 사실
우습지 않았다.
때깔 고운 노인네 보기 드물고 자애로운 노인네 구경해 본 적 없는 나는
노인은 곧 노추老醜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살아온 시간만큼 아집과 편협과 심술이,
늙어 주름진 사이사이에 깊숙이 또아리 틀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생사고락을 함께 겪지 않은 타인, 특히나 노인에 대한 내 편협한 시선은 그렇다.
갱년기를 겪었을 싶은 나잇대의 여자들이,
가끔 내게 자기는 몇 살까지 생리를 했다고,
자랑하듯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바보처럼 꿈뻑꿈뻑하는 내 속눈썹이 우스워죽겠다.
자기는 지금껏 헤어염색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어깨부터 으스대는 여인들의 까만 머릿결 아래로,
차마 시선을 주지 못하겠는 내 동공 역시 갈팡질팡 민망할 때도 있다.
우리는,
그러니까 당신과 나는
늙지 않을 재간 따위 있을 리 없는데
그 뻔한 사실을 두고 애써 모른 척하려니
씁쓸하고 우습기가 이심전심이리라.
두피에서 올라오는 흰머리를
아이브로우 펜슬 같은 도구로, 염색 대신 감쪽같이
칠해주는 화장품 광고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구매 버튼을 누르려던 중 어떤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렇게까지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
젊고 생기발랄하고 누가 봐도 어여쁜 외모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늙어져 사느니 차라리 당차게 죽겠단 패기 어린 그녀의 댓글에,
순간 쫄아버린 나는 허둥지둥 그 사이트를 나왔다.
미친년의 댓글치고 박력있다 생각하며...!
골 빈 그녀의 철없는 소리는 사실 우습지 않았다.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줄 모르는 멍청한 젊음이
오히려 부럽기까지 했다.
늙어가는 스스로를, 자기도 모르게 덜 늙은 누군가와 비교하는 이들의 심정을 이제 너무도 잘 아는 나.
정녕 늙고 싶지 않지만 기어이 아무도 모르게 늙어가는 나를 위해 오늘, 이 불금에 작정이란 걸 한다.
실컷 마셔보자고.
흥은 한 잔 술에 있지 않겠느냐고!
쭈욱 속절없이 늙어가겠지만, 오늘
필라테스 학원에서 기분 좋은 소리를 들었노라,
자랑질은 빼먹지 말고 해야겠다.
그녀들이 내 몸매를 극찬하였다.
운동을 많이 했냐고, 나처럼 글래머해지고 싶단다.
별말씀을!!이라고 대응했어야 했는데
고개까지 끄덕이며 흐뭇하게 수긍했던 것 같다.
이 나이 먹도록 겸손한 척하는 연기는 젬병이지만
사실을 직시하는 그들의 객관적인 눈에 감사를 표하며
건배!!
새치머리 커버 펜슬은 그 어린년 없는 사이트에서
몰래 구입하도록 하지 뭐.ㅎㅎ
미구未久에 닥칠 노老.
나도 당신도, 그리고 철없던 그녀도
우리는 모두 '늙음'을,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다.
그 공포엔 늙음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그리고
아직도 '젊음'에 매달리는 어리석은 바람이
단단히 한몫하고 있으리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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