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의 결핍

혹은 무례한 독거녀의 일기

by 사피엔



다짐은 왜 늘 배부른 다음에 오는가 ㅡ


다시는 배부르게 밥 먹는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포만감 뒤로 행복 대신 짜증이 일 때,

허기진 상태보다 더한 불쾌감이 잠깐의 만족

뒤에 오래 머물 때. 그러나 다짐은 밥을 먹을 때마다

망각되었다가

재부팅을 반복한다.


욕망은 반복에 가깝고, 만족은 해소보다 오히려

마비를 낳는다.

의미 없는 충만, 그 끝은 언제나

묵직한 권태와 무의식적 불쾌뿐...



눈은 고고하게 ㅡ


백 트럭으로 갖다 줘도 쳐다보기 싫을 것 같은 남자들과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주변 여인들의 현실을 볼 때마다 이따금 다짐한다.

죽기 전에 연애라도 해보려면 나도 눈을 조금만 낮춰야지.

하지만 다짐은 어느 놈이든 그 눈까리와 마주치는 순간

산산이 부서진다.

한 번만 더 쳐다봐라. 숟가락으로 도려 내줄 테니.

내 눈은 다시 고고하게 치켜 올라간다.


욕망이 부질없다는 걸 가장 먼저 아는 기관이 눈이다.

그러나 눈은 가장 오만하고, 동시에 가장 정직한 감각이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견딜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는 눈동자 하나에 담긴다.



충분하지 않기에 ㅡ


결핍을 채우고 싶은 욕구와 갈망이 통제를 벗어날 때

인간은 행복의 동력이 아닌 고통의 근원과 가까워진다.

그것은 밥을 먹는 일부터 시작한다.

일, 인간관계, 사랑. 삶이 되는 모든 행위가 결국

욕망을 채우기 위한 무한 반복 시도들이지만

만족이나 행복은 결코 인간의 것일 수 없다.


게다가 내 거라고 갖다 붙일 만한 게 없는 무소유의

나는 남들이 행복이라 말하는 것을 거의 구경만 했거나

무언가 경험을 했더라도 만족 수치가 평균 이하일

확률이 상당히 크다.


그럼에도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자 내가 버린 것들이

남들보다 훨씬 많다면 과연 자랑할 만한 일인가.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무엇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무엇을 감당하며 사는가ㅡ인지도 모르겠다.


결핍은 끝내 채워지지 않고

우리는 욕망을 감당하기 위해

계속해서 존재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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