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형석 산문집 <고작 이 정도의 어른>
"숱한 철학자들이 알려준 인간다움을 대학 도서관과 고시원 침대에서 이해하며 스스로 대견해했지만, 회사에서는 비인간적인 질서에 스스럼없이 편입해왔다. 또 많다, 이런 것들. 셀 수 없이. 20대에 발아한 자유의지는 지혜로 무성한 30대를 기약했지만, 결국 나는 고작 이 정도의 어른으로 자랐다."
- 고작 이 정도의 어른
<고작 이 정도의 어른>
남형석 작가의 첫 산문집으로, 10년 차 MBC 기자였던 그가 사회적 성공을 추구하며 잃어버린 감정, 공감 능력, 인간적인 도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풀어낸, 삶과 성찰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의 마중 글이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글자마다 통통 튀는 주옥이었다면,
무난하게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한국 사회 엘리트(저자)의 충만한 인생 스토리는, 그러나 어떤 부분에선 법정 스님의 무소유까지 소환됐음에도 불구하고 1도 와닿지 않을 만큼 밋밋했다.
남형석 산문집 <고작 이 정도의 어른>
결국 잘나가는 사람의 자기 성찰이란, 앞에 놓인 탄탄대로 꽃길에 재정비 차원의 비단 장식 덧대는 격이랄까.
글쓴이가 늘어놓는 뻔하디 뻔한 자기 과시 글에서 벅찬 감동과 사무치는 서사를 발견하기란 당연히 어려웠다.
나는, 누군가의 극복된 고난과 정반합을 거친 사유의 경험이 내게 깨우침과 용기로 환원되길 기대하며 책을 펼친다. 그러나 서문에만 가득 힘 실려 있는 이 책은 끝내 아쉬울 뿐이었다.
삶의 어느 순간은 난파선 한 조각 붙들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것처럼 암담하고 두렵고 외로운 것임을, 글 쓰는 작가라면 응당 품고 있는 정서라고 생각했다. 독자는 그 순간을 지나 온 사람의 자취에서 위로와 에너지를 구하므로.
그런 점에서 최근 읽었던 은유 작가의 에세이 <다가오는 말들>이나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는 연약함과 빈한함을 대변하는 "말"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성취한 사람의 성찰은 구경되어지고, 상처난 자의 고통은 전이되어 결국 내 속살을 단단하게 한다.
<고작 이 정도의 어른>
저자의 시선은 자신을 향해있다. 그가 들려주는 자기 성찰(혹은 자랑)의 언어는 가볍게 스치는 반면 타인을 바라보고 있는 은유, 이기주 작가의 언어는 쉬이 잊혀지지 않고 쌓여 있다가 피부에 스민다.
필력 뛰어난 글이 단지 읽는 재미가 있다면, 삶이 녹아있는 깊은 글은 나를 구성하는 피와 살로 순환하는 것이다.
자기 반성을 통해 익숙함을 걷어내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보겠다는 한 개인의 분투기.
독서 모임 첫 선정 책이라 애정 담아 읽으려 했는데, 하루 만에 덮고 말았다.
"외로움을 부단히 과외받아"야 했던 부족함 없는 작가의 글에 내 시간을 더 이상 할애하고 싶지 않아서.
외로움을 과외받았다는 말.
나는 이 문장 앞에서 그만,
숨이 턱- 막혔다.
솔직히 말해 거부감이 역하게 올라왔다.
외로움이란, 무릎을 끌어안고 조용히 울던 밤처럼
몸에 남아 있어야 하는 감정일진데!
그저 ‘외로웠던 적 있음’을 말장난처럼 포장하려는
저 간사한 언어적 기교.
쉽사리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껍데기 같은 문장이 잔뜩 비위에 거슬렸다.
외로움조차 휘황찬란하게 포장하는 허위의식. 자신은 '고급 외로움'을 앓아봤노라, 더 있어 보이려는 자의 자기연출과 기만 앞에서 대체 어느 독자가 마음을 앓고, 감동을 하겠는가.
저 말 속에는 누가 봐도 ‘진짜 외로운 사람의 침묵’이 없다.
말을 잘 다루는 사람은 많지만,
말에 진심을 담는 사람은 드문 것 처럼.
물론, 내가 이 책을 정서와 맥락, 단어의 온도까지 꼼꼼하게 살펴본 건 아니다.
글쓴이의 잘남이 ‘진심처럼 포장된 성찰’로 전달되는 순간, 차마 눈 뜨고 못 봐줄 감각적 위화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성급하게
읽기를 그만두었는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 이야기에 감정의 접속이 전혀 없었다”고 단호히 말하겠다. 세상엔 나같은 빠딱한 독자도 존재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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