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이지 말고, 페르소나 n!

불편한 사피엔스를 위한 (회복노트 1)

by 사피엔




해소되지 못한 분노는 뭉개지면 트라우마가 되지만, 정확하게 조준되면 회복의 불씨가 된다.




싸구려가 아닌 이상, 잘 보관했다가 해마다 꺼내 입는 옷들 중에 연식 20년 이상인 것들이 많다. 평생 체형이 바뀌지 않았던 덕에 옷에 들어갈 돈이 남들보다 덜 낭비됐던 건, 가난한 나의 복 중에 복이었다. 게다가 내 옷장엔 주위 언니들이 물려준 사치스런 옷들도 꽤 있다. 멋쟁이 여자들과 어울린 덕에 내게 주어진 보너스 같은 달콤한 행운이랄까.



그런데 최근 들어 체중이 느는가 싶더니, 작년 여름까지 맵씨 뽐내며 걸쳤던 옷들 중 몇 개는 입지도 못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아차 싶었다. 하루 서너개 이상 기본으로 먹었던 맥심 커피와 옥동자, 캔맥주를 한두 개로 줄이고, 주기적으로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시켜먹었던 피자, 치킨, 햄버거도 이젠 칼로리부터 계산하게 되었다.

나이는 어쩔 수 없나? 의구심 반, 저항 반의 심정으로.



나이가 들면서 바뀐 게 하나 더 있다.



예전 같았으면 예민하게 반응했을 일들도 이제는 한 박자 쉬고 따지거나, 아예 흘려 보내는 여유가 살짝 생겼다. 싸워봤자 혈압 오르고 에너지 소진된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네 이마에 써 있다. '상종금지'."

체중과 함께 예민한 성질머리에도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까.

설명하고 설득하고, 따져서 이기려 하기 보단,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나를 지킬 수 있게 된 나이. 지금은 내 에고도 좀 늙었고, 그만큼 유연해졌나보다.



하지만 지금의 이 원만함은, 어디까지나 내 생 전반의 쓸쓸함과 깨달음 위에 놓여있다. 바보같이 순진했던 날들,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았던 숱한 기억들 위로, 나는 화 대신 '거리'를 선택하는 평화 기술을 연마한 셈이다.






페르소나 n.



아들이 어릴 때, 고사리 같은 녀석의 손을 잡고 교회에 다녔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젊은 여자 신분으로, 교회라는 사회공동체는 안전하리라 믿었다. 그 기대에 반비례하는 모욕과 폭력이 우리 모자에게 날아들기 전까지. (세상에! 그때 난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아이고 불쌍해라. 아빠 없이...쯧쯧"

자기 감정에 취한 사모의 이중적 눈물과 망령된 발언이 있던 날, 난 벙어리처럼 얼어붙었다. 동정을 가장한 우월한 눈물, 불쌍하다고 낙인찍는 위선을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응대하지 못했다. 오히려, 신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권력 앞에서 내 영혼은 찢겼고, 존엄은 훼손되었다. 내 아이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모욕을 처음으로 목도한 날, 내게 세상은 더 깊은 암흑이 되었다.



심방이 있던 날, 여전도사가 기도를 마치고 들려준 말도 끔찍했다. 자기 기도 중에 나의 환영이 보였단다. 움켜쥔 내 손에 날카로운 것이 들려 있는 걸 봤는데, 아무래도 '수치'를 상징하는 것 같다고. 이건 또 뭔 개풀 뜯어 먹는 소린가. 전도사가 자다가 봉창 두드릴 때도 나는 멀뚱거리기만 했다. 사람들 앞에서 오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수치스러웠지만, 그건 예언이 아니라, 예단이고 위로가 아니라, 공포의 통보라고, 한마디도 주장하지 못할 만큼 미련하고 연약했다. 그렇게, 내가 묻지도 않은 전도사의 환상 속에서 그날 나는 이미 예비 범죄자가 되었고 심판을 당했다.



부적처럼 가짜 계시나 날리는 무당전도사와, 위선으로 똘똘 뭉친 뚱뚱한 사모가 종교적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던 미개한 교회를 떠나며 나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원천봉쇄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입장에서 남의 인생을 정의하고 멋대로 단정하는 목회자들로 인해, 나는 믿음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믿지 않게 되었다.



교회에서마저 질투 섞인 경계와 같잖은 심판의 대상이었던 나. 그 시절, 내게 유일한 안식처는 오직 책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원인은 당당하지 못했던 내게 있었다.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살아갈 세상이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난 어디서든 주눅이 들어있었고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젠 예전처럼 외부 세계를 차단하지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는 학원 아이들 외엔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그 옛날 상처로 깊이 흡수되던 말들이 이젠 어설픈 사람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리트머스지가 되었고, 나도 보통의 아줌마들처럼, 사람에게 응수할 정도의 뻔뻔함은 갖게 되었다.



숨죽였던 시절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나는 울분처럼 문장을 뱉는 습관이 있다.

사실 내 안엔 아직 해결되지 못한 채 웅크린 페르소나가 여럿 있다. 그들을 하나씩 꺼내어 쓰다듬고, 숨을 불어넣는 일이 곧, 나의 글쓰기다. 내 한 시절을 되찾기 위한 이 기록의 과정에는, 분명 회복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복이란 언제나 치유의 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상처를 말로 꺼내는 순간, 나는 다시, 상처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상처를 말로 표현하는 이유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또다른 자아를 꺼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움츠려 있는 나를 다시 불러내는 일은 ㅡ 오직 말로만 가능하다.



종종 벙어리로 오해 받을 정도로 말 없는 사람이었던 나. 빈약한 가용 언어로 구차한 말하기를 끝내고 나면, 스스로에게 회의감이 들 만큼 구술에 약하지만, 그나마 글로는 생각과 감정을 풀어낼 줄 아니 다행이다. 이건 내게 주어진 유일한 행운이자 무기다.



나 역시, 그 시절을 입 밖으로 꺼내고, 지면 위에 펼쳐놓아야 비로소 내 인생의 서사자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만, 비로소 숨죽이지 않고, 당당하게 되받아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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