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 위로
언젠가, 그 정도면 알코올중독이 아니냐고 ㅡ 의심 반 농담 반으로 툭 던졌던 당신의 말이 떠오른다. 흥! 천만의 말씀. 난 애정 결핍증후군자다. (술은 문제가 안된다.) 입으로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 운운하지만 그건 다 헛소리. 가끔 눈 침침해서 글자가 안 보이면, 이놈의 책일랑 싹 다 집어던지고, 혼자여도 강인한 척 뒤집어쓴 가면도 벗어던지고 더 늦기 전에 제발이지 연애나 좀 하고 싶다!
함께 주말 드라이브 나섰다가,
"내가 네 운전기사냐?" 갑자기 히스테리를 부리는 속 좁은 년들과는 죄다 인연을 끊어버리고 파란 하늘, 알록달록 온갖 꽃, 초록들판. 그 딴 것들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올 만큼 눈 뒤집힐 사람과, 러브!!
나라 사랑 국어 사랑 그런 거 말고 뉴런에서 도파민 팡팡 터지고, 콩깍지 씌어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죽고 못 살, 무모한 사랑. 그런 걸 좀 해보고 싶다.
닥쳐올 내 연애 상대는 반드시 남성이어야 할 것이며 그와는 일락을 누려야 할 것이므로 그는 최소한 지적 능력과 성적 매력에 있어서 어디에 내놔도 남부끄럽지 않을 함량을 필수 장착해야 할 것이다. 공유, 고수, 비. 정도의 급이면 왓따겠다!
흐흐흐
꿈이라도 넘치게 꿔볼 일이다!
영화 <풍산개> <용의자>의 남주인공들은 인간의 몸이 갖는 한계가 결코 절대적이지 않음을 인상 깊게 보여주었다. 신체 특유의 불완전함과 극한을 초월한 절정의 마력. 신념이든 사랑이든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의지와 움직임은 강렬한 스토리와 함께 무척이나 진한 감동이었다. (여러 번 봤다.)
이 사진. 아름답다는 단어가 남루할 지경이다. 사람의 신체로 이토록 경이로운 예술을 표현한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생각해 보면 몸이 곧 이야기고 예술인 경우가 주위에 많다. 발레와 무용, 종교적인 춤, 보디페인팅까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신체 예술 행위들 말이다.
여성 착취의 상징이었던 중국 전통 전족이나
목에 링을 차는 어느 부족 소녀의 길게 늘인 목을 보면서, 한편으로 나는 미美를 발견한다. 예쁜 모습과는 다른 차원의 무엇. 주어진 신체를 재구성하고 원하는 대로 모양을 변형하는 창조적 행위들. 나는 불가능이나 신성불가침에 대한 도전적 선언으로 보이는 그와 같은 신체의 극기克己, 초극(超克) 따위를 찬미하는 것이다.
간혹 내게 외모지상주의가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아니다. 난 유미주의자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남들보다 더 많이 놀랄 줄 알고 그 놀라움을 가감加減없이 표현할 뿐이다. 외모지상주의와 유미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액세서리 착용하는 일 없고 명품에도 관심 없으니 겉치장과도 거리가 먼 나다.
자연 그대로의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조율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 속에 있다.
이제 화제를 돌려, 오늘의 요가 일기. 연애가 어렵다면, 요가랑 친해지겠단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어쩌면 사랑의 통증보다 요가 근육통이 더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비록 허리는 접히지 않고, 손가락은 발끝과 요원하고, 왼쪽으로 돌라하면 오른쪽으로 드러눕는 어리바리한 몸을 소유했지만 난 지금 아름다운 고행을 시작했노라, 우기고 싶다.
이 우김이 내게 필요하다. 내장이 울고, 관절이 비명을 지르고, 고개를 돌리면 '삐끗'하는 내 몸에게 '이제 다시 노력해 보겠다'는 작은 다짐. 아침엔 누워서 스트레칭, 점심엔 틈틈이 골반 열기, 저녁엔 요가 매트 위에서. 온몸이 우두둑, 어설프고 느리지만, 다시 내 몸을 예술처럼 다루기 위한 리허설을 하고 있다.
사랑, 네가 오지 않겠다면, 좋아! 내가 가겠다. 저 매트 위로. 그건 적어도,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출발이다. 도파민? 그까짓 거 나 스스로 얼마든 만들어낼 수 있다.
지갑 얇은 요즘, 필라테스와 결별하고 매트에서 꼬물꼬물 요가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