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향한 열망의 목소리

by 이동훈

사람은 제각기 다른 성질과 방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어떤 사람은 음악에 재주가 있을 수도, 또 어떤 사람은 체육을 잘할 수도 있다. 근면과 성실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게으름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길테지만, 그런 사회에서도 역시 게으른 사람은 존재한다. 환경이 달라져도 사람의 성향은 제각기 다르다. 서로의 ‘다름’이 존중되고 보호받는다면, 우리 사회는 비교적 열린 사회에 해당할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과 다르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존재한다. 특히, 정치나 종교와 같은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해당하는 문제면 더욱 그러한데,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용납하지 못하거나 타인의 삶에 쓸데없는 훈수를 두곤 한다. 이것이 지속되면 관심과 교육이라는 명목 아래, 나와 다른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저지를 수도 있다.


또한 사람은 고정 관념에 따라 행동한다. 내가 가진 스테레오타입에 따라, 상대를 재단한다. 내 기준에 이것이 옳으면 이것대로 행동해야 직성이 풀리고, 저것이 맞으면 저것대로 행동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과 저것을 모두 끌어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생물의 본질 중 하나인 ‘공격성’이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까닭이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을 공격하고 비난한다. 그 결과 일이 커져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오해로 얼룩져 원수의 사이가 되곤 한다.


만약 누군가에게 잘못을 했거든, 그 사람에게 가서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기심과 욕망, 자존심으로 인해 사과를 먼저 청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 탓이겠거니 스스로 되뇌며 넘어가거나, 되려 상대방에게 잘못을 떠넘기거나 비난하는 경우도 생긴다. 분명 스스로가 저지른 잘못임에도 말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미래에도 여전히 그러할 것이다. 인간의 모순된 행동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될 것이다. 본질적인 부분이 바뀌지 않는 이상 변화되기는 어렵다. 여전히 TV를 틀면 강력범죄가 흘러나오고, 사기와 공갈, 권모술수가 사회 각지에 존재한다. 정치인들의 얼룩진 비리나 우크라이나 전쟁,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처럼 정치나 국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현상은 결국 인간 안에 자리한 동일한 본질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인간의 보편성은 불변한다.


열린 사회는 분명 의식의 변화가 이뤄져야 하는 시기가 도래될 때만이 나타날 것이다. 모두가 고전을 읽을 수는 없고, 모두가 문학에 관심이 있지도 않으며, 모두가 영적인 진화에도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론과 실전이 조화되야 하고, 때로는 보편적인 진리에 호소하기 보다는 개인의 개별적인 관점 변화에 초점을 둬야 할 일도 생긴다. 바른 사회가 되기 위해서, 사랑을 만들기 위해서, 용기와 관용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붙들어야 할까?


쓸데없는 고민이라 치부하기에는 그 안에 근본적인 함의가 있다. 하지만 무엇을 바꿀지 막막하기만 하다. 뒤숭숭함과 어지러움이 바로잡히고, 난세에 영웅이 나타나 갑자기 위기 상황이 불현듯 해결된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그것은 이상과 꿈에 가깝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표준적인 상을 하나로 고정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기 꿈을 펼치기 위해서 사회의 여러 부분들은 편견과 혐오 없이 구성원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다양성’이 전제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날이 온다면, 구성원 각자는 각자의 역할대로 존중받을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를 꿈이라고 표현하겠지만 나는 언젠가 이루어질 현실이라 부르고 싶다. 누구나 자신만의 꿈은 자유롭게 꿀 권리가 있다. 사회가 오해로 얼룩지더라도, 늘 변화의 바람은 불어와 공동체를 바꾸어 놓곤 했다. 그 변화는 다양성이란 작은 발걸음 하나에서부터 시작하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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