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일의 첫사랑이 끝난 작은 딸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 이렇게나 구태의연하고 식상한 말 밖에 없다니...
내 흐릿한 기억에 따르면 실연의 아픔엔 별다른 치유법이 없고 그저 시간의 치유가 최고의 명약이다.
설마 사랑과 이별조차도 라떼의 시절과 요즘이 다를까?
작은 아이의 첫사랑은 우연히 알게 되었고 "어?" 하는 사이에 끝났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를 데리러 학원에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한 게 문제였다.
내 차를 미처 보지 못하고 누군가 횅 지나갔고 학원 앞 편의점에서 꽁냥 거리는 두 아이를 보고서야 아이와 어떤 사내아이가 만나는 걸 봤다. 나도 모르게 차 문을 열고 아이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체한 그 날이 사귀기 시작한 지 134일째 되는 날이었고, 그다음 날인 135일째 이별을 통보받았다.
마음이 복잡 미묘했다.
큰 아이와 9살이나 터울 지는 늦둥이.
남들처럼 아니 남들보다 더 애지중지 키웠다.
누구나 그러하듯 아이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내 일보다 더 기뻤고, 손톱 밑에 가시가 박혀 있어도 그 아이가 웃으면 통증은 느끼지 못하고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작은 아이가 울면 여지없이 나도 눈물이 흘렀다.
작은 아이에 대해 말할라치면 가슴이 벅차서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누군가 '그래서 어떻게 시집보내려고?'라고 하면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고였다.
하객들이 출생의 비밀을 의심할 정도로 울게 될까 봐 결혼식은 어찌할까를 고민할 정도다.
그렇게 나와 감정의 선이 맞닿아 있는 아이다.
감정만이 아니다.
아이와 나의 관계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이를 보면 네 아빠 조금 전에 지나갔다고 말할 정도로 나를 닮았다.
외모만이 아니라 꼼꼼하고 까칠한 성격이나 걱정을 사서 하는 성향도 나와 같아서 '씨도둑질 못한다.'는 옛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문제는 저렇게 아파하는 아이가 지금 고3이라는 거다.
마지막 피치를 올릴 시기인데, 이제 며칠 남지 않았는데...
지금껏 수많은 녀석들이 고백해도 '혼자가 좋아.'라며 거절해 온 아이였다.
주변의 친구들이 온통 연애하느라 바쁠 때도, 자기만 모태 솔로라고 아쉬워하면서도 잘 버텨서 기특(?)했었다.
그런 아이가 실연의 아픔으로 울고 있다.
같은 반 남자아이의 고백을 받아들였단다.
그 아이의 고백을 받아들인 건 성적도 최고이고, 키도 크고, 잘 생겨서란다.
게다가 음악적 소양도 둘이 비슷한 게 좋았다고 했다.
이번마저 거절하면 고3 졸업 때까지 모태 솔로를 유지할 것 같은 위기감도 있었나 보다.
학교 내에서는 비밀로 하자고 해서, 지나치면서는 눈인사만 한 게 전부였고, 이러저러한 마음의 공유는 SNS가 전부였을 테다.
주말에 다니는 학원이 서로 달라서 잠시 쉬는 시간에 중간에 학원 앞 편의점에서 만난 게 전부인데, 그래서 남들처럼 제대로 된 연애는 해보지도 못했는데... 하며 더 슬퍼했다.
제대로 된 연애가 뭘 말하는지 추측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연애가 끝났다고 했을 땐 내심 안도했다.
고3이라서 그런 마음이 든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작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걸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훨씬 컸다.
그런데 그건 잠시였다.
처음 겪는 상실의 아픔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좋은 친구로라도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이의 순수한 아픔이 그대로 내게도 전해졌다.
그래서 대학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그 녀석이랑 다시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 커졌다.
그렇다고 그리 말해줄 수는 없었다.
한 번 깨어진 사이를 다시 붙이기가 쉬운 게 아니고, 설령 그리 된다 해도 뭔가 금 간 그릇 다시 쓰는 느낌이라 싫었다.
내가 하는 사랑도 아닌데 작은 아이는 그저 티없이 맑고 깨끗한 사랑이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니 어쭙잖게 기껏 한 말이라고는 복수하기 위해 성공하라는 속물스러운 말 뿐이었다.
정작 아이는 남자 녀석에게 복수 따위는 생각도 않고 자기가 못해 준 것만 미안해하고 있는데...
부모랍시고 생각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ㅉㅉㅉ
평생 함께 할만한 친구로부터의 사랑 고백은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거다.
결혼까지 가고 백년해로한다면 모르지만 도중에 헤어지면 친구로라도 남기 어려운 게 남녀 사이 아닐까.
그런데 이게 모르는 것이 처음부터 헤어질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모두가 변치 않을 마음으로 시작하는 게 사랑이고 그래서 장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누고 영원하자는 터무니없는 약속을 하게 된다.
세상엔 영원한 게 없다는 철칙이 두 사람에게만은 해당되지 않을 거라 착각도 하고.
아쉽게도 첫사랑이 끝사랑이 되는 몇몇 특이한 사람을 빼면 반드시 맺지 못하는 게 첫사랑이라는 그지 같은 놈인데...
근데 왜 하필 가을에 이별을 한 걸까.
시리게 파란 하늘만으로도, 떨어져 밟히는 고운 낙엽만으로도 충분히 눈물 나는 슬픈 계절인데 왜 하필.
차라리 여름이면 덜 힘들 텐데...
그래, 뭐든지 처음은 서툴다.
사랑도 이별도. 부모 노릇도.
그러니 서툴러서 헤어졌다고 위로하자.
이게 경험으로 쌓여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사실, 사랑도 이별도 처음만 처음이 아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늘 처음이다.
같은 사람과 다시 사랑하는 게 아니고 상황도 같지 않으니까 100번, 천 번째의 사랑은 매번 처음이다.
그래서 서툴고, 그래서 시리고, 그래서 처음처럼 아프다.
100번째의 사람도 천 번째의 사람도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고, 이 사람만이 유일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