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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 Jan 12. 2022

냉정의 여왕

나는 미지근해질 필요가 있다.  


“왜 그런 노래 가사있잖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 난 그 가사가 늘 이해가 안 갔어. 어떻게 사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럽기만 할 수 있지?”

“사랑에 눈이 멀면 그럴 수도 있지.”

“오.. 자긴 그런 사람 만나봤나 봐.”


그는 장난스레 흘겨보는 내 눈을 피하듯 겸연쩍게 웃어보이고는 자리를 뜬다. 단 2초 가량의 무언의 재스처를 나는 깊이 해석하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애쓰는 일은 늘 그렇듯 잘 되지 않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말 한마디에 내포되어있을지도 모르는 비유와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 경험 그리고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의 깊이에 대해 생각한다.


 서른 후반의 그는 수많은 경험 끝에 나랑 결혼 했다. 하지만 정말 불타오르게 사랑했던 사람은 분명 따로 있었을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럽기만 한 사람, 나를 아무리 비참하게 만들어도 화를 낼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그런 사람. 솔직히 나 역시 이 사람없으면 죽을 것 같고 세상이 끝날 것 같아서 결혼한 것은 아니었다. 늘 지옥같이 뜨거웠던 내 연애에는 차가운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물 일곱에 알게되었다. 그걸 알았을 때 그를 만났고 결혼했다.나는 수많은 이별끝에 안정적인 사랑을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 내 우주를 상대의 우주로 채우려는 버릇은 고쳐야 한다는 것을.


사실 이제와서는 사랑의 의미를 정말 모르겠다. 거대하고 위대한 사랑의 의미에 집착하던 내 과거와 달리 지금은 그 진실을 직면하기 두렵기까지하다. 만약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내 결혼생활은 위선적인 것이 되고 진짜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평범한 부부들 사이에서 '가짜'로 치부 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내가 잉태한 아이들은 뭐가 될까.)

그가 날 사랑하는지는 궁금하지만 그가 나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지 않길 바란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예, 아니오로 대답하기 싫어서다. 그렇다고 글쎄 사랑이 뭐야? 라고 묻는다면 듣는이 누구나 실망하겠지. 나의 모호하고 중립적인 대답에 더 비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걸 몰라서 물어? 아마도 서로가 없으면 안되는 그런 게 사랑이겠지.' '그래? 그렇다면 나는 그를…'


그가 왜 좋았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는 날 왜 좋아했을까. 첫 만남에서 내 눈에 그는 유머러스했고 대화 포인트가 통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듯 가벼운 만남을 이어갔다. 짧은 시간에 서로 호감을 느꼈지만 그는 나와 사귈 생각이 없었고 나 역시 사귈 생각없이 우리는 여러 날 데이트 했다. 늘 금방 사랑에 빠져 내 마음을 다 내어 주고 관계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요구했던 과거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시작이었다. 그가 나를 '여자친구' 혹은 '자기'라고 부르지 않는다던지, '우리 오늘 사귄지 한 달째'라며 우리 관계의 진전 정도를 공공연히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 것이 전혀 자존심 상하지 않았다. 나 역시 내 시간, 내 일에 대한 우선순위를 그에게 빼앗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만나도, 안만나도 마음이 평온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내 삶의 작은 활력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를 좋아한다'라는 말 한마디 조차 서로 꺼내지 않았지만 나는 이상하게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가 더 좋아졌고 그도 역시 그럴 것이다.'


나는 제안을 했다. 그와 밥을 먹고 미용실 예약이 있어 데려다 주는 길, 차 안에서.


"사귀지 않을 거면 여기서 그만 만나는 게 어때?"

"어?"


날 만나면서 늘 여유롭고 유머러스하던 그가 최초로 당황스러운 표정을 내보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내 말을 애써 장난으로 넘기려 했던 것 같다. 난 장난이 아니었음으로 그의 반응에 미적지근하게 리액션했다. 그제야 말의 의미를 파악하게 된 그는 왜 그러냐고 되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서로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사이는 여기까지만 해야할 것 같아서."


결국 나는 유교걸이었다. (프랑스인들의 자유로운 사랑방식을 선망했지만 유교질서가 짙은 한국에서 길러진 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그와 잠자리를 가지면서 '책임'에 대한 게런티를 생각하게된 것이다. 결코 내가 그를 어떻게서라도 만나기 위해 억지로 잠자리를 가진 것은 아니었음에도, 그러한 관계에는 호감 그 이상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또한 내 친구들 대부분이 그와 나의 관계를 '이용되고 결국 버려지는 불쌍한 여자' 레파토리로 예측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했다. 한국사회에서 만난 누구에게라도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내꺼 하자'가 있어야했다. 나의 제안에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는 몰랐지만 확실한 건 그와의 관계의 키는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나를 원했다. 나 역시 그를 원했지만 나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으면 굳이 그의 심중을 캐볼 필요도 없이 뒤돌아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미용실 앞에 도착했고 그는 어떠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세상 쿨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잘 지내!"


그러고 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3층의 미용실에 도착하자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다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왜 그러는거야." (서른 일곱, 그의 당황스러운 말투에 자꾸만 웃음이 났다.)


"말했잖아. 근데 대답을 안했으니 이제 안 보는거지. 나 머리해!"


전화를 끊었다. 스물 일곱 인생에 처음으로 내가 나답고 자신감 넘치는 순간이었다. 늘 이별을 고하는 남자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던, 평생의 연애의 루저였던 내가 늘 동경하던 냉정의 여왕이 된 것만 같았다. 그와의 시간이 분명 즐거웠고 그가 좋았는데, 결코 허전하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로 나를 채우지 않고 온전히 나로서 연애를 했기 때문이었을까. '혼자가 괜찮을 때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어디선가 들었던 뜬구름같던 명언이 그제야 내 마음에 와닿았다.

그렇게 나의 칼같은 이별통보에  그는 다시 내게 계속 연락을 했고 나에게 사귀자고 했다. 사귄 이후 물어본 그때 이야기를 하자면 (뭐 나름 그의 변명은) 자신은 결혼이 임박한 나이었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는 것이었지만(믿거나 말거나).. 우린 그 해 가을에 결혼했다. (쏘 심플)


그래서 내가 그를 사랑하냐고?  모르겠다.  그냥 '사랑'이라고 하면  남자한테 미쳐서 비이성적이고 산짐승같던 내가 떠오른다. (예를 들어,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이라도 미지근해졌다 싶으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불안해하고 그의 SNS 해킹해 그의  마음을 알아내고 싶어한다던지, 여사친과 인사하는 목소리에 호감도가 얼마나 되는지 측정해 작정하고 떼어놓는다던지.. 써놓고보니 무섭다.) 지금은  과거에서 많이 떨어져나와 상당히 미지근해진 상태다. 하지만 태생이  눈치 많이 보고, 남의  한마디에도 숨겨진 메타포를 10개쯤 찾아내는 (요즘은 '인프제'라고 손쉽게 정의하면 된다.) 내가  항상  온도를 유지할 수는 없다. 부단히 무신경하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래야 나의 결혼은 미지근할 수 있다.


많은 로맨티스트들은 실망스럽겠지만, 건강한 결혼 생활에는 서로에 대한 적당한 심적 거리와 프라이버시와 적당한 공상 일탈(머릿속으로 일탈을 시뮬레이션하며 간접 체험해보는 일(??))이 필요하다. 동의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러므로 그의 말에 숨은 의미 찾는 일 따위, 그의 과거 (아마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러웠을) 연인이 나보다 얼마나 날씬한지, 또 얼마나 더 어린지.. 궁금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가 유명한 이별 노래를 흥얼거리며 예전에 뜨겁게 사랑했던 다른 연인을 떠올린다고 한들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고, 알아도 뭐 어쩌겠는가? 나 역시 내 노래방 18번인 윤하의 '기다리다'를 부르며 스무살 첫사랑을 떠올린다. 어쩔 수 없다. 치사해도 쌤쌤이라고 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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