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여행자에게
인류가 우주를 탐사하는 이유는 지구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지구 밖에서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여행자가 여행을 떠나는 건, 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일 말고 다른 것에서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장거리 비행을 할 때면 푸른 하늘이 철학자처럼 무언가를 말해 주었고, 버스 여행에서는 차창 밖 대자연의 변화가 무언가를 가르쳐주었다.
이런 배움은 과거 우리가 해왔던 지식 흡수와 다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문자나 귀로 들을 수 있는 말의 형태도 아니다. 이때의 세계는 침묵이라는 언어로 여행자와 소통한다. 말할 줄 모르는 큰 나무가 인생의 진리를 전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란바이퉈, 돌아온 여행자에게 중에서
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은 일상
#S1. 여느 해 같았으면 집을 떠나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을 법 한데, 코로나 19가 한 순간에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로 인해 내 생활 패턴과 사고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수천 년의 역사상 인류는 여러 불가항력적 환경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지혜를 강구하고 앞으로 한걸음 나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집을 좀 더 편안하고 아늑한 장소로 바꾸기 위해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렸다. 10년의 세월을 동고동락해준 반려견이좀 더 즐겁게 살 수 있도록 강아지 관점에서 물건의 위치를 바꿔주었다. 수년간 고수하던 커튼을 교체하기 위해 전기드릴이라는 장비도 처음 사용해 봤다. 집에 화초들을 들여왔을 뿐 아니라, 그 식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햇살과 바람을 틈틈이 공급해주고 있다. 생활 여행자가 되어 아침마다 동네 가벼운 산책을 즐긴다. 오전에는 스타벅스에 출근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어디든 떠나는 것에 제한이 있으니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며 ‘더 밀도있는 사유’의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본업은 늘 열심이다!) 당분간은 이렇게 지내도 좋을 거 같다.
20대부터 나(혼)자(산)다 생활을 해온 나는 틈만 나면 집 밖을 나서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길 바랐는데, 지금은 한 곳에 정착해서 뿌리내리는 행복도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S2.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엠마'에서 주인공 엠마는 한 번도 Highbury를 떠난 적이 없었다. 엠마가 나고 자란 그곳은 평화롭고 안전하며, 그녀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떠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 포인트인 줄을 모르겠는데 나는 이 대목이 참 흥미로웠다.
오래전 파리 몽마르트르를 같이 동행해주었던 파리지엥도그랬다. 태어나서 한 번도 파리 밖을 나가본 적이 없다고! 기차만 타면 지척이 국경선 밖의 유럽연합국 내였을 텐데.. 그녀는 다른 곳, 다른 장소가 크게 궁금하지 않았나 보다. 오늘도 그녀는 파리 생활에 만족하고 있겠지. 흠.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S3. 집으로 돌아와서는 JRR 돌킨과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1, 반지 원정대’ 를 왓차 플레이로 돌려봤다. 영어 자막과 같이 보니 다시 봐도 수작이다. 넷플릭스도 좋지만 거기엔 내 인생영화 3개가 없다!! 킹덤 시리즈만 보고 왓차플레이로 갈아탄 이유다. 그나저나 이 반지의 제왕을 보면 나는 TMI가 되고 만다. 서사가 있는 대장정의 여정이 참 눈물겹다. 무엇보다 프로도가 샤이어 땅을 떠나 원정을 시작할 때의 독백이 여전히 마음을 두드렸다.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이 안전지대를 떠나 위험이 도사리는 집 밖을 나설 때의 그 한 걸음 한걸음을 나는 늘 응원해왔다. 용기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잘해보라고 다정하게 행운을 빌어주고 싶은 그런 날이다. 때로는 이야기 한 토막에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배운다. 웬만에서는 멀리 떠날 수 없는 요즘같은 일상에 이왕이면 ‘스펙타클 판타지 대모험’을 선택하겠다.
Remember what Bilbo used to say : It's a dangerous business, Frodo, going out your door. You step onto the road, and if you don't keep your feet, there's no knowing where you might be swept off to. by J.R.R Tolkien
빌보가 했던 말을 기억해봐. 집 밖을 나서는 건 위험한 일이야. 프로도. 길 위에 발을 내디딜 때, 신중하지 않으면 네가 알지 못하는 새
어디론가 휩쓸려 가 버릴 테니까.
#S4. 오늘의 그림으로는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천재에게 경의를 표하는 부>를 골랐다. 19세기 프랑스 작가인 구스타브 쿠르베 일상의 사실적인 포착에 능한 참 재능 있는 화가다. 쿠르베 아저씨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듯 그 당당함과 의연함이 물씬 풍겨 나는 인물이다. 프랑스 미술에서 자기 자신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란 걸 스스로 늘 강조했으니까! 봇짐 지고 자신의 후원자를 만나러 가는 그 길을 졸졸 따라나서고 싶은 일요일 오후다. by Sar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