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와 파리(fly)육즙과의 관계
‘흙’이라는 것을 처음 본 순간이 기억난다. 첫돌이 지난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유모차를 타고 가던 나를 누군가가 정원 한가운데에 내려줬다. 몇 걸음 아장아장 걸어가다 말고 쪼그리고 앉아 오른손으로 바닥의 흙을 한 줌 쥐었다.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 핥고 맛보고 씹을 요량이었다. 구강기 영아로서 본능에 충실한 행동을 한 그 순간 차갑고 불쾌한 질감으로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별안간 무언가로부터 모멸차게 공격당한 느낌을 받은 나는 돌아서며 생각했다. ‘뭐야? 우웩! 조심해야 할 물건이군. 꼭 기억해둬야겠어.’
생명에 위협을 느낄 만큼 굉장한 충격이었기에 성인이 된 후까지도 잊히질 않았다. 걸어가다 앉은 시점부터는 비디오가 아니라 한 장면 한 장면 이미지 컷으로 선명하게 기억난다. 게다가 흙이 들어갔을 때 혀에 느껴진 감촉과 냄새, 그리고 구역감과 황당함은 지금까지도 끈질기게 생경할 정도이다.
사실, 입에 흙을 넣은 것은 생물학적 본능이 시킨 짓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의 자유의지로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와 유사하게 내 의지와 상관없는 물건을 맛봄으로써 아주 어이없었던 적이 또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꽃다운 나이 스물한 살, 대학교 2학년 때의, 날 좋은 어느 늦은 오후였다. 친구와 저녁 약속을 했었다.
“엄마, 나 친구 만나서 저녁 먹고 들어올게.” 춥지도 덥지도 않았던 사랑스러운 날씨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꽃단장을 마치고 집을 나섰다. 우리 집 대문에서 버스 정류소까지는 줄잡아 100 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였다.
원하던 대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던 그 시절은 모든 것이 장밋빛이었다. 고백건대, 나 좋다고 줄 서던 이성친구도 많았고, 별 부족함 없이 살아가던 귀족 영애 같은 삶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 심히 주관적 판단임)
즐거운 마음과 가벼운 스텝으로 거리에 나와 열 걸음도 채 떼지 않았을 때였다. 눈앞에서 윙윙! 가미카제 같은 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돌진하는 푸르스름한 물체가 보였다. 석양의 태양 빛을 받아 황금빛 광채로 빛나는 푸른색이었다. 놀란 나의 두 눈에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가장 무서워하던 똥파리로 파악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절친과 함께 내 방에서 밤을 새워가며 공부하던 어느 날 밤, 무시무시하게 큰 소리를 내며 방을 휘젓고 다니던 ‘그것’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진 후부터 내겐 파리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대상이 되었다. 그 당시 내 동생은 걸핏하면 나를 놀려댔다.
“그러게, 머리 좀 자주 감아! 얼마나 냄새가 고약하면 파리가 다 꼬이냐?”
외출하려고 나서던 나의 로맨틱한 저녁이 삽시간에 공포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 녀석이 나를 범치 못하도록 입을 꼭 다물고 몸을 움츠렸는데, 아뿔싸! 늦어버렸다. 그 물건이 이미 입 속에 들어온 뒤였고, 설상가상으로 입을 닫으면서 오른쪽 어금니 사이에 그것이 자리 잡는 사상초유의 기함할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그런 말이 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신체 각 부분의 속도에 관한 것인데, 이와 비슷한 류로 이런 말도 할 수 있다. 느낌은 생각보다 빠르고, 생각은 행동보다 빠르다. 다시 말해, 행동은 생각보다 느리고 생각은 느낌보다 느리다는 말이다.
그날 저녁의 경우,
첫째, 그 물체를 본 순간 공포+혐오스러웠고 - 느낌
둘째, 그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겠다 싶었고 - 생각
셋째, 입을 다무는 등의 행위로 몸을 위축시켰다. - 행동
이런 일련의 단계들을 거쳐야 하는 인간이, 어떻게 1초에 300번 날갯짓을 하며, 20만 분의 1초 만에 위험을 감지하고 파리채를 피해 달아나는 초고속 똥파리의 스피드를 당해내랴.
하필 그날 저녁, 집을 나서던 내 앞에 엄지손톱보다 더 크고 위협적인 생명체가 날아들게 뭐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 물론 그의 의지도 아니었겠지만 - 입 속으로 들어와 버린 그놈은 생각보다 덩지가 훨씬 크고 통통했다. 그런데다 기다렸다는 듯이 절묘한 타이밍에 어금니를 앙다물어버리는 나! 덕분에 그것이 <물크덩!>하고 터져서 육즙이 혀로 흘러들기까지……. (표면이 살짝 ‘바스락!’ 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 겉바속촉인가?!)
이건 기적이다. 백만분의 일보다 더 낮을 법한 확률의 일이 내게 순식간에 일어나지 않았는가. 실제로 ‘기적’이 일어날 확률이 수치적으로 1/1,000,000 이라고 한다. 맛이 어땠냐고? 하하
단백질의 보고인 곤충을 미래의 식량으로 쓰자는 의견들이 많다. 미국에는 곤충을 볶아서 햄버거 패티로 사용하는 레스토랑이 벌써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다. 매출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단백질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한들, 맛이 이다지도 쓰고 떫다면…
“글쎄요! 나는 사양하고 싶네요.”
구김살 없이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처녀의 몸에 왜 파리가 꼬이냐고!! 더구나 그날 저녁은 목욕재계하고 향수까지 뿌리고 나가던 참이었는데… 혹시, 향수 냄새를 좋아하던 파리였을까?
집에서 멀지 않던 곳이라,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입 안에서 터진, 날것의 육즙을 수습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입을 헹궈내면서 생각했었다. ‘우리가 입에 집어넣고 오물오물 씹어 삼키는 일이, 때론 자유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기도 하는구나!’
그날 약속시간에 늦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허나, 얼떨결에 삼켜버리지 않은 게 얼마나 감사하던지! 만약 그랬다면 위세척 하려고 병원에 달려갔을 지도 모를 일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