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많은 사람들이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소설 작법에 관한 책인 줄 착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원제목은 “On Writing : A Memoir of the Craft”으로, 작가가 붙인 제목을 충실하게 번역하자면 “글쓰기에 관한 한 : 그 기교의 회고록”이다. 누구의 번역인지 몰라도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참으로 많은 독자를 유혹하긴 했다.
다들 알다시피, 스티븐 킹은 <미저리> <쇼생크 탈출> <그것> 등의 세계적 작품을 배출해낸, 선이 굵은 작가이다. 이 책은, 작가로서의 글쓰기 인생을 돌아본 논픽션 회고록이다. 그렇다고 글쓰기 요령이나 소설 작법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자신의 저서에서 장편 소설 쓰기에 관해 밝힌 인상적인 말이 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욕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한국에 살았던 나는 바다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들이 항상 ‘태평양’을 거론하는 것을 들어왔다. 유럽에서 바다에 관해서라면 언제나 대서양이 언급된다. 지중해도 있지만, 규모가 작아서인지,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대자연으로서의 바다를 언급할 땐 언제나 ‘대서양’이다.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려운 일이다. 아무런 장치가 없는 나룻배로 물 위를 빠르게 헤쳐나가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돛이라도 있다면 방향 잡는 것은 그나마 수월해진다. 거기에 모터라도 달려 있다면 속도면에서는 훨씬 나은 환경이 될 수 있다. 규모가 큰 범선이라면, 웬만한 폭풍에도 견딜 힘이 있을 것이다.
돛도 없고, 모터도 없고 규모마저 보잘것없는 배는 치명적이다. 설령 나침반이 있고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 할지라도 조각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는 행동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 무모한 행동이다.
스티븐 킹은 글쓰기를 메타포(metaphor)적으로 항해에 비유했다. 특히 소설을 쓴다는 것은 욕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것처럼 지난하고 힘든 일이라고 했다. 재능이 있다면 속도도 빠르고 살아남을 확률도 높겠지만, 재능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초반에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나는 <유혹하는 글쓰기>를 정성들여 두 번 정독했다. 약 13년 전에 읽었지만 아직까지 기억나는 특징적인 내용이 또 있다. 그가 말한 가장 대표적인 글쓰기 요령으로, <연장통 이론>이란 것이 있다.
연장통 이론
* 개요 :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여 글을 쓰기 위해선 연장들을 골고루 갖춰놓아야 하고, 그 연장통을 들고 다니는 힘, 즉 필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 연장통 맨 위층 1 : 자주 사용하는 연장들을 맨 위층에 넣자. 글쓰기의 원료라고 할 수 있는 필수 연장은 바로 ‘어휘(낱말)’이다.
* 연장통 2 : 문법이다. 문장은 문법 규칙에 맞게 구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문법을 완전히 지키는 정문(正文)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때론, 문법을 살짝 비튼 문장도 효과적이다. 혹여 잘 쓸 자신이 없다면, 문장을 단문(單文)으로 구성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여기서 말한 단문은 그저 짧기만 한 단문(短文)이 아니다. 겹문장이 아닌 홑문장을 말한다. 말하자면 관계대명사나 종속 접속사로 주어가 다른 두 세 문장을 엮는 겹문장 보다 하나의 주어가 그 문장 전체를 지배하는 홑문장으로서의 단문(單文)을 구사하라는 뜻이다.
이런 글쓰기 팁을 보면, 글을 쓴다는 것이 정말 쉬운 작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스티븐 킹처럼 세계적인 작가에게도 그렇다는 게 한편 굉장한 위안이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뛰어난 재능의 소산이 아니라,
욕조를 타고서라도 바다를 항해하려는
뛰어난 정신의 소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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