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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Nov 08. 2022

글쓰기란 장작패기식 미분법이다?!

‘파트릭 쥐스킨트'의 감정세분법 배우기

“재떨이를 던져 줄 테니,
너는 대학노트 10장 분량으로
그것에 대해 써보거라.”


아버지에겐 모든 것의 계량 단위가 대학노트였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소설을 썼다. 100매짜리 대학노트 6권에 빽빽이 쓴 그의 대하소설은 안타깝게도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작가에 대한 꿈은 여전했다. 여가시간엔 언제나 펜을 쥐고 있어 금세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자로고 글쓰기란 보잘것없는 것도 중요하게 만들 수 있고, 아주 중요한 것도 하찮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내게 제시한 실천적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재떨이 작문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재떨이에 대해 10장씩이나 썰을 풀어낼 수 있을까. 재떨이에 얽힌 사연을 써야 하는 걸까. 담배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서 써야 하나? - 아버지는 담배를 무려 입에도 대지 않았다. 재떨이라는 물건의 디자인에 대해서? 혹은 그것의 이용가치에 대해서? 근데 왜 하필이면 재떨이일까?


아버지의 방법은 결국 어린 나에게 글쓰기란 무지하게 어려운 일이라고 겁을 주고 말았다.


커가면서 그의 방법을 자주 떠올렸다. 여전히 재떨이는 내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한 순간에 어떤 특별한 깨달음이 오고야 말았는데, 파트릭 쥐스킨트의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였다.


<향수>라는 소설은 전 세계 48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2천만 부 이상 팔린 초대박 베스트셀러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후각에 관해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그르누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그의 탄생 일화부터 사회 밑바닥을 훑는 기구한 삶, 그리고 조향사로 거듭나 재능을 발휘하다가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향기'라는 것을 이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성(性)적으로 미혹하는 사건, 그 이후 죽음까지…


파트릭 쥐스킨트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하기 짝이 없다.




다음은 파트릭 쥐스킨트 <향수>의 98 페이지에 나온 본문이다.


“향수는 생명이 있다.
……
우리가 만든 혼합물이 처음 만들었을 때는 정말로 상큼한 향기가 났으나 금방 썩은 과일 냄새가 나다가 결국에는 지나치게 들어간 사향으로 인해 메스꺼운 냄새로 변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
오늘 밤이 되면 그의 야심작에서 고양이 오줌 냄새만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그 냄새를 맡게 될 것이다. 날이 선 도끼를 이용해 통나무를 장작으로 쪼개듯이 코로 그 향수의 성분을 하나하나 나눌 것이다. 그리하면 이 마법의 향기라는 것도 사실은 널리 알려진 극히 평범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다.


<날이 선 도끼를 이용해
통나무를 장작으로 쪼개듯이…
향수의 성분을
하나하나 나눌 것이다>


후각 천재가 향기 속에 들어 있는 각각의 성분을 세세하게 알아차리고 분석하는 대목인데, 나는 의외의 수확을 얻었다. 바로 글쓰기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알아야 할 소소한 규칙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인 것 같다’ ‘~ 수 있다’와 같은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말, ‘나는’과 같은 1인칭 대명사, ‘그리고’ ‘그러나’와 같은 접속어는 사용할수록 손해라는 것.

그 외에도, 반복을 피하라.-단어뿐 아니라 내용 반복도 피하라. 동사를 꾸미는 부사를 너무 많이 쓰지 말라. 직유보다 은유가 세련된 표현이다. 만연체는 지양하라. 등의 팁들이 있다.


하나, 이것들은 글의 겉 단장을 위한 것일 뿐이다. 긴 호흡으로 써 내려가야 할 장편 소설의 내용을 채우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흔히들 ‘필력’이라고 말하는 ‘서사의 기술력’이 관건이다. 그것은 재떨이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노트 10장을 채우는 힘인 것이다.


서사력은 어떻게 키워지는가?


우리가 어떤 물건을 묘사하거나, 어떤 사건을 설명할 때, 그것에 대한 사실 분석은 물론, 내 느낌까지도 날이 선 도끼 같은 감각을 이용해 통나무를 잘게 쪼개듯이 낱낱이 쪼개어야 하고, 쪼개진 각각의 감정을 세세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


정말 기가 막혔다. 파트릭 쥐스킨트의 소설을 읽으면서 글쓰기 방법을 얻다니……. 눈앞이 확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이젠 나도 드.디.어! 재떨이에 대해 노트 10장 분량으로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꽃과 식물에서
향기를 추출하는 조향사처럼,
우리도 문자라는 재료를 가지고
향기 있는 글을 창조하는
글의 조향사가 아니던가!


물론, 감정을 쪼개는 것만으로 서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꼭지로 나누어 쓴 글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힘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일관된 메시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파트릭 쥐스킨트가 말한, 장작 패듯 쪼개어 하나하나 나눈다는 미분법은 적어도 글이라는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나에게 이정표가 되어준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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