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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Nov 11. 2022

그는 스토리텔링에 완전 실패한 작가였다

경험과 지식이 많다고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다

한 남자가 있었다.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1살에 대학에 입학한 천재였다. 수학, 과학, 인문학 등을 두루두루 공부했고 여러 분야의 학위를 동시에 취득했다. 남자의 본캐는 과학자였으며, 부캐로 다양한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했다. 평생 물리학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논리적 이론으로 증명하는 삶을 살았다. 그가 살았던 세계는 눈에 확연히 드러나고 손에 명확히 쥐어지는, 확실하고 분명한 과학의 세계였다.


어느  부활절이었다. 남자는 부활절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중년이 되도록 독신으로  그는 아래층 하숙집 아주머니가 갖다 주는 음식을 먹었다. 오랜만에 과식을 했고, 배가 불편한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스르륵  무렵,  안에서 강한 회오리바람이 불어,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그때 갑자기 천장이 바닥으로 바닥이 천장으로 뒤집혔다. 어지럽고 어리둥절했던 그의 앞에는 정체를   없는 사람이 서있었다.


“누구세요?”

“자네, 너무 과식은 하지 말게나. 건강에 안 좋아.”


‘스베덴보리’가 처음으로 천사를 만났던 장면이다. 그가 57세 되던 해였다. 이는 그가 살아왔던 과학세계와는 정반대인, 불가사의한 신비의 세계로의 입문이었다.




에마뉴엘 스베덴보리는 1688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그 시대의 스베덴보리는 태양계 형성 이론의 최초 고안자로서, 만유인력의 아이작 뉴튼에 필적할만한 명성을 가진 뛰어난 과학자였다. 게다가 철학과 신학에 능통했던 그는 독일 철학자 칸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천사를 만났던 그 시점부터 8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27년 동안 수호천사의 인도로 천국과 지옥을 체험했다. 그는 자신의 영계 체험을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저술로 남겼다.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천국, 육체의 허물을 벗고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가는 중간 영계, 고통과 증오로 가득 찬 지옥이 각각 3단계로, 총 9단계의 영적 세계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정말 대단한 체험이고 대단한 작품이 아닐 수가 없다.




오래전 나는 그의 스토리가 너무 궁금했다. 그가 남긴 책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책을 죄다 구입했다. 그리고 부푼 기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의 책은 역시 대단했다. 내게 진기한 경험을 선사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눈꺼풀이 무거워 견딜 수가 없는 희한한 경험이었다. 엄청난 체험과 영적 능력이 책 속에서 어쩜 그리도 재미가 없는지… 대단히 놀랄 지경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스토리텔링에 완벽하게 실패한 작가였다. 물론 그의 영적 체험이 가치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의견이나 이야기를 전달(딜리버리)할 때, 최소한 상대에게 흥미를 유발해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허공에서 사라져 버리는 의미 없는 행동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 단 한 명도 하지 못할 경험을 했고, 산 자 중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세계를 알았던 선택받은 자였다. 하나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전혀 와닿지 않는 의미 없는 일에 불과하다.


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일까? 번역이 엉망이라서 그럴까? 평범치 않은 일들이 기록된, 이토록 놀라운 책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의 괴성을 지르게 하는 것도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책의 내용 중 한 가지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


영계에서는 현실세계와는 반대로 누군가의 뒤에 서있으면 안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에서는 타인의 앞을 지나가는 것이 실례이다. 특히 “미안합니다”라는 언급 없이 상대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은 굉장히 실례가 되는 행동이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현생과는 반대로 누군가의 뒤에 서있거나 뒤로 지나기는 것이 실례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위의 내용을 많은 페이지에 걸쳐 지루하게 기술했고, 심지어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책의 여러 군데에 반복적으로 나온다. 급기야 그것을 읽던 내게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건데?


그의 흥미 제로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천상의 스토리를 읽고 다시 한번 이런 생각이 들었다.


1. 경험이 많고 지식이 많다고 글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2. 몸이 건강하다고 건강한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3.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글도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4. 문장을 잘 만드는 잔기술이 있다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다.

5. 흥미로운 스토리가 없으면 아무리 귀한 경험도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건강한 글을 생산하기란 어렵고 매력이 1도 없는 사람의 글이 매력만점이 되기는 드물다. 경험과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 훌륭한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경험이 적다 해서 쉽사리 실망할 일은 아니다. 경험은 독서를 통해서 얼마든지 간접적으로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과 진실을 바탕으로 한 글이 감동을 줄 가능성은 높지만, 그것 역시 스토리가 없으면 감동은커녕 흥미 없는 진부한 글이 되고 만다는 것을,- 스베덴보리에겐 미안하지만- 그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의 컨셉을 잘 딜리버리하여
상대방으로부터 공감을 끌어내야
비로소 스토리텔링을 잘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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