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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4. 2021

5. 블록체인이 대체 뭔데?

2016년 가을에, MIT에서 12주 동안 블록체인을 가르치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블록체인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듯했다. 세계은행은 각 직원의 연수와 교육을 위해 연간 할당된 예산이 있어서 그 범위 내에서 직무와 관련된 교육 과정을 수강할 수 있는데, 상사에게 그 교육 과정이 업무와의 관련성이 있음을 설득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2016년 당시, 세계은행 재무부에서 동료들에게 블록체인에 대해 처음 얘기를 꺼내면 "블록체인? 그게 뭔데?"가 첫 반응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블록체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때였다. 내가 "비트코인은 들어봤어요? 비트코인을 가능케 한 기술이 블록체인이에요."라고 말하면,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비트코인?! 마약이나 범죄자들이 블랙마켓에서 쓰는 전자돈 아닌가요?" 그들의 눈빛은 내게 "너 미쳤니? 왜 그런 거에 신경을 쓰고 시간을 낭비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 직장 상사는 세계은행의 1천7백억 달러가 넘는 투자 포트폴리오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그의 사무실 앞에 얘기를 나누고자 하는 대기자가 줄을 서 있었다. 그는 재무부서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는 이였는데, 워싱턴 D.C. 에 있는 우리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버지니아와 웨스트 버지니아 국경 근처에 사는 그는 새벽 4시 버스를 타기 위해 3시에 일어나서 6시에 사무실에 도착한다고 했다. 미국 캔자스에서 자란 전형적인 미국 백인 남성이었는데, 잠이 부족한 탓인지 백설공주에 나오는 일곱 난쟁이 중 그럼피(Grumpy)처럼 항상 불만이 가득한 듯이 보였다. 

노후된 투자관리 시스템에 새로운 고객은 자꾸 늘어나는 상황이라 매일 같이 이슈가 터져 내 상사 사무실엔 이른 아침부터 항상 그와 논의하기 위한 대기자가 늘어서 있었고 9시가 지나면 그는 연속되는 회의로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런 그에게 블록체인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 MIT에서 신설한 이 과정이 왜, 어떻게 내가 하고 있는 업무와 연관이 있는지 설득해야 했다. 


그와의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블록체인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했다. 이제까지 동료들과 나눈 대화에서 비트코인 이야기를 꺼내면 모두 선입견으로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 신기술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사진을 한 장 찾았다. 그해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했을 때였다. 커다란 건물에는 북쪽과 남쪽 도로에서 들어설 수 있는 두 출입구가 있었다. 포럼에 늦어 허겁지겁 남쪽 문으로 들어갔는데, 입구에 선 경비원이 나를 가로막으며 계단을 이용해 한 층 내려가 건물 반대편으로 건너가 다시 걸어 올라가서 반대편 입구에서 체크인을 하라고 했다. 기다란 대리석 계단을 내리고 올라 북문 앞 검문소에 이르니 그곳의 경비원이 포럼 참석자 명단이 적힌 종이를 가리키며 신분증을 제시하라 했다. 서류에 사인한 뒤 검문소를 지나 다시 건물 반대편으로 걸어가야 했다. 포럼이 열린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내가 처음 들어섰던 남문 바로 옆에 있었다. 

각 검문소의 경비원이 포럼 참석자 명단을 종이가 아닌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한 후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나 태블릿과 같은 디지털 장비를 갖추고 있고, 참석자가 양쪽에서 체크인할 때마다 데이터가 즉시 업데이트되어 양쪽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면 참석자들은 그런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관련자들이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도록 디지털 방식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분산원장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 DLT)이다. 분산원장기술은 기존의 중앙 집중화된 서버에 저장하는 데이터베이스 (Database: DB)와는 달리 분산된 여러 노드에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DB를 가능케 하는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관리 대상 데이터를 ‘블록’이라고 하는 소규모 데이터로 나누어 사슬처럼 연결한 DLT를 기반으로 생성된 체인 형태의 연결고리 데이터이고, 이에 암호화(Cryptography) 기능을 더하여 만들어진 것이 최초의 암호화폐 비트코인이다. 이후 비트코인에 법적 계약 및 운영을 자동화할 수 있는 스마트 컨트랙트 (Smart Contract) 기능을 더해 이더리움이 탄생했고 이후 수많은 암호화폐가 AI 등 여러 핀테크와 결합하며 진화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중앙 집중화된 데이터와 통제는 내가 맨해튼 빌딩에서 겪은 것처럼 많은 비효율, 제한된 서비스 등과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기술이 현실에 적용되기까지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맨해튼 건물의 유추를 계속하자면, 건물에서 태블릿과 같은 새로운 기기나 기술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으면 도입될 수 없고, 법규와 규정이 허용하더라도 건물주가 태블릿 구매와 같은 신기술에 투자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도입되지 않을 것이다. 건물주가 투자를 한다 해도 경비원이 기기의 사용법을 모르면 또한 이루어질 수 없다. 이와 같이, 관련 법규, 지배적인 시장 참여자의 채택, 인적 자원 등의 조건이 이루어져야만 새로운 기술은 현실에 도입될 수 있다.

금융 거래의 그 비효율성뿐만 아니라, 기존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여러 금융위기 특히 2008년 금융위기로 절정에 달했다. 2008년 9월 화산 폭발처럼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후 전 세계가 그 재를 뒤집어쓰고 허덕이고 있을 때, 그해 10월 31일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으로 <비트코인: P2P 전자 현금 시스템 (Bitcoin: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페이퍼를 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싶다.

"순수하게 P2P 방식의 전자 현금을 사용하면 금융 기관을 통하지 않고도 한 당사자에서 다른 당사자로 직접 전송되어 온라인 결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신뢰에 의존하지 않고 전자거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해왔다. 디지털 서명으로 만든 디지털 코인으로 출발해 강력한 소유권 제어를 제공했지만 이중 지출을 막을 방법이 없어 불완전해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거래의 내역을 무수히 많은 컴퓨터 Node에 동시에 저장해 공격자가 빠른 시간 내에 대부분의 거래 기록을 조작하지 못하게 하는 공공 장부 기록을 유지하는 P2P 네트워크를 제안하였다."

불과 여덟 페이지의 짧은 페이퍼의 첫 장 요약 중 일부이다. 이 페이퍼가 나온 시점이 미 연준이 미국 금융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실패하기엔 너무 크다 (Too big to fail)'는 이유로 대형은행에 돈을 쏟아붓고 있을 때였다. "은행이 아닌 사람들을 구제하라!"와 같은 포스터를 들고 시위대는 월가를 점령하고 있었다. 맹렬한 산불처럼 이 미국발 금융위기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번졌다. 나카모토는 2009년 1월 3일에 처음 50개의 비트코인이 들어 있는 오리지널 블록인 제네시스 블록을 출시하며, "타임스 2009년 1월 3일 영국 총재 2차 구제금융을 내놓다"라는 메시지로 비트코인이 보다 투명하고 포괄적인 금융 시스템을 만들어 현재의 부패한 금융 시스템을 없애기 위한 것임을 시사했다.


이렇게 탄생한 비트코인은 모든 사용자가 장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뢰성을 보장할 제3자가 필요 없고, 분산된 네트워크 내 대다수 컴퓨터를 장악하지 않는 한 장부조작을 할 수 없어 해킹의 위험이 적고, 모든 사용자에게 거래내역을 공개하기 때문에 거래내역이 투명하고, 중앙 관리자가 따로 필요가 없기 때문에 유지 보수, 보안 유지, 거래 중계자 등에 필요한 비용이 절감되어 매우 경제적이다. 하지만, 세계은행 재무부서에 적용 가능한 블록체인을 고려할 때, 내가 중점을 둔 것은 비트코인과 같은 공개적 분산원장기술 (Public DLT)이 아니라 사적 분산원장기술 (Private DLT)이었다.

세계은행의 재무부서 거래나 함께 일하는 각국의 중앙은행에서 공개적 블록체인을 채택할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요원한 것이었다. 당시 IBM을 주축으로 한 하이퍼레저 (Hyperledger)와 여러 금융기관이 협력하는 R3 등의 사적 블록체인 활동이 증가하고 있었다. 사적 블록체인은 관련된 참여자들이 계약을 맺어 허가된 참여자들만이 장부에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많은 금융기관들이 블록체인의 다양한 적용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세계은행 그룹의 내부적 은행 역할을 하는 재무부서는 매일 약 미화 350억 달러의 현금흐름을 거의 130개 세계 각국의 다른 통화로 처리하고 있으며, 이는 매달 약 2만 5천 건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해외송금을 현재의 방식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디지털 방식으로 변경하면 얼마나 비용과 시간이 절약될 것인가! 또한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을 우리의 고객인 각국의 중앙은행에 도입하면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의 효율성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 DLT가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효율성과 투명성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확신했다. 보안도 높이고, 채권 및 파생상품 시장이 DLT 체제로 전환되면 월가의 독점을 축소시킬 수도 있고, 중앙은행들과 협력해 글로벌 DLT 생태계 구축을 이루면 DLT 체제의 혜택이 다른 분야에 확산되는데도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 꿈꿨다.


꿈으로 가득 차서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2010년에 중앙은행 외환보유고 관리를 위한 회계 IT 시스템을 디자인해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때와 비슷한 흥분이 일었다. 세계은행은 2010년 개발도상국의 외환보유고 관리를 위한 분석 도구였던 PAT (Portfolio Analytics Tools)에 회계와 SWIFT 기능을 추가하는 PAT2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는 이 프로젝트에 회계 전문가로서 회계모듈을 설계하여 IT 개발자와 함께 만들고 지난 몇 년간 20여 개 중앙은행에 이 시스템을 설치하고 교육하는 일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PAT2를 매우 열정적으로 출시한 후, 우리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처음 몇 고객은 이전엔 엑셀 스프레드시트로 힘겹게 일하던 것과 비교해 PAT2가 가져다준 새로운 디지털 세상을 도입하는 데 열광했다. 민간 기업에서 일할 때와는 달리, 성과에 따른 보너스나 빠른 승진과 같은 동기부여가 없는 세계은행에서 일하며 그들의 열정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곧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정권에 따라 쉬이 은행장이 바뀌고 그에 따라 부서장이 바뀌는 정치적인 조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중앙은행의 각 부서마다 관심사가 달라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몇몇 중앙은행의 경우는 동일한 교육과 시스템 구현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했는데, 심한 경우 네 번이나 반복한 후에도 여전히 그 시스템을 쓰지 못하는 곳도 있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중앙은행이라는 외부 고객 문제 외에도, 재무부서 내부 문제로 인해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몇 년째 심화되고 있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충분한 인원을 확충하지 못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데다, 2011년 7월에 새로 부임한 재무부 VP는 재무부의 예산 문제를 수정하기 위해 여러 사업을 면밀히 검토하며 왜 재무부서에서  IT 시스템을 개발하여 중앙은행에 제공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설상가상으로, 4년 후 2015년에 또 다른 VP가 임기를 시작한 후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외부 컨설턴트를 고용해 PAT2 프로그램을 재검토하고 있었다. 


예산 부족으로 재무부서 고유의 필수적인 업무 외 활동에 대해서 부정적인 당시 VP의 입장을 고려할 때, DLT는 기본적으로 테크놀로지이기 때문에 내 상사에게 DLT를 배우겠다고 MIT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어떻게든 재무부서 일과 직접적 관련성이 있고 비용 절감 등 실질적 혜택이 있음을 보여주어야만 승산이 있을 듯했는데, 아직 그 개념도 낯선 기술을 가지고 실질적 혜택을 계산하기는 시기상조인 때였다. 

MIT 프로그램 신청 접수마감일이 다가오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프로그램 정보를 가지고 내 상사에게 접근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몇 주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에게 금융시장 관련 블록체인에 대한 기사나 적용 사례 등을 나누며 마땅한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일곱 시 이전의 이른 아침이 그를 만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나는 그의 사무실 유리문을 두드리면서 말을 건넸다. 

"좋은 아침이에요, 빌. 시간 좀 있으세요?" 

그가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무표정한 그의 표정에 그 기분을 알 수 없었다. "굿모닝, 무슨 일이야?" 그는 늘 그렇듯, 저음의 목소리로 무뚝뚝하게 말했다. MIT 프로그램 안내서를 건네며 나는 말문을 열었다. 

"빌, 최근에 제가 블록체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정보를 공유했는데, 기억하나요? MIT에서 블록체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10월부터 12주 동안 프로그램 첫 주를 제외하고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직장을 비울 필요가 없이 병행할 수 있습니다. 전 그동안 PAT2 미션 때문에 너무 바빠서 몇 년간 어떤 교육 프로그램도 받지 못했어요. 블록체인이 대안적인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되어 저희 고객인 중앙은행과의 협력은 물론 저희 재무부 내부 사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합니다. 금융시장과 중앙은행에 미치는 영향과 이 기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는 내가 건넨 안내문을 훑어본 다음, 그의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그는 여전히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우리 업무와 큰 관련이 없는 듯한데.. 아직 너무 이른 단계인 듯해. 좀 더 이게 어떻게 발전하는지 지켜본 후 다음번 기회 때 다시 생각해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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