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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4. 2021

7. 블록체인 컨센서스 (Consensus)

2017년 5월, 맨해튼에서 가장 번잡한 타임스퀘어에 위치한 메리어트 마퀴스(Marriott Marquis) 컨벤션 센터에 들어섰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1996년에 갔었던 스팅 (Sting)의 서울 올림픽 아레나 콘서트 이후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곳에 꽉 들어찬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 그랜드 볼룸은 20여 년 전 내 기억을 떠올렸다. 서울 올림픽 아레나는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위해 처음 지어져 올림픽이 끝난 후 큰 행사나 콘서트를 개최하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1996년 4월에 결혼한 후 그해 가을 아직도 신혼기를 지나고 있던 나는 남편과 함께 그곳에 갔다. 콘서트에 모인 군중 속에서 남편과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었다. 스팅의 음악과 관중들의 함성으로 가득 찬 그 공연장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마술의 시간처럼 남아 있었다. 

블록체인 전문매체인 코인데스크가 주최하는 컨센서스 행사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찬 컨벤션 센터 안도 거대한 마법의 공간처럼 보였다. 벽을 통과하며 마법 세계로 들어간 해리 포터처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람들이 법석이는 공간 속으로 들어서며 마치 다른 법칙이 운영되는 세상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예전에 타임스퀘어를 지날 때마다 이 건물의 전광판이 번쩍이는 규모에 놀라곤 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실내가 얼마나 큰지 몰랐다. 곧 나는 그 수천 명 중 하나가 되었고, 행사장 내 가장 큰 볼룸(Ballroom)의 한 의자에 앉아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프닝 발표는 2017년 1분기 현재 블록체인의 상태에 대한 간략한 보고로 시작했다. 비트코인의 거래량이 하루 평균 28만 7천 건에 이르렀다는 것, 그 해 2월 출범한 엔터프라이즈 이더리움 얼라이언스(Enterprise Etherium Alliance)가 급성장하면서 ETH가 중개 또는 결제 수단으로 비트코인의 경쟁자가 되는 등 눈에 띄는 활동이 두드러졌다는 것, 또한 2009년 시작되어 현재까지 비트코인의 역사, 가상화폐와 퍼블릭 블록체인, 스마트 컨트랙트와 탈중앙화 앱, 허가형 블록체인, 다양한 DLT 플랫폼 등등이 언급되었다. 첫 발표 후 바로 글로벌 블록체인 채택에 대한 패널 세션이 이어졌다. 인도, 중국, 유럽연합과 호주에서 온 패널리스트들은  연단 위에 놓인 크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그들의 경험을 공유했다. 그들 모두 블록체인이 인터넷 다음으로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호주의 경우, 이미 농업, 에너지, 금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 기술을 실험적으로 적용해 긍정적 결과를 얻고 있다 했다. 

그들 중 특히 중국의 자동차 부품 제조로 유명한 완샹(Wanxiang) 그룹의 빈센트 왕(Vincent Wang)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2013년 블록체인의 잠재력을 알아차려, 2015년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공식 출범 때 41만 6천  ETH를 매입해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과 함께 블록체인랩스를 설립했다. 부테린은 2013년 열아홉 살 나이에, 비트코인의 배후 기술인 블록체인을 단순한 거래를 위한 것보다 더 많은 활용 사례로 확대한다는 아이디어로 블록체인 기반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ETH를 개발했는데, ETH는 암호화폐 시가총액 세계 2위로 올라섰다. 비트코인은 기존 금융권에 의존하지 않고 P2P 방식으로 일상적인 거래를 한다는 목표로 탄생한 반면, 이더리움은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이 더해지면서 다양한 분야로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빈센트 왕이 말했다. "블록체인랩스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교육을 촉진하고 해당 분야의 연구와 실험에 투자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사회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교육진흥사업에 대한 포상 등 비영리 목적으로 지역사회에 ETH를 홍보하고 나눠주기로 했지요.” 2015년 초기 투자 당시 $1 달러 미만의 ETH는 행사 당일인  2017년 5월 22일에 $180달러를 상회하고 있으니 180배가 넘는 수익을 그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셈이었다. 어떻게 자동차 부품 제조 회사가 이 기술의 잠재력을 일찍 포착하고, 랩을 열어 실험적으로 실현해 지역 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나는 사회적, 환경적 영향에 대한 고려는 아랑곳없이 주주들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온 미국과 서유럽의 자본주의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랜드 볼룸 세션이 끝나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사방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느라 꽤 혼란스러웠다. 여러 작은 회의실에 동시 세션이 진행되어 나는 어느 곳으로 갈지 선택해야 했다. 여러 세션에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몇 명의 동료가 함께 왔으면 하는 바램이 새삼 일었다. 몇 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 컨벤션에 동료 몇 명과 함께 참석했을 때, 여럿이 흩어져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고, 전시 부스를 돌며 게임을 함께 하고 저녁과 시내 관광을 즐겼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는 나 혼자 동분서주하며 정보를 수집해야만 했다. 나는 로즈의 이름을 한 패널 세션에서 찾았지만 그녀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는 없었다. 많은 흥미로운 세션들 중에서, 나는 재무부 업무와 직접 관련된 해외 지급결제 (Cross-border payments), 파생 시장 (Derivative markets), 디지털 통화, 중앙은행 또는 규제 기관 관련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안타깝게도 로즈의 패털 세션은 해외 지급결제에 관한 패널 세션과 겹쳤다.

지난해 가을부터 블록체인과 관련된 전 세계 뉴스를 매일같이 스캔해 왔는데도 행사장에 오니 처음 듣는 회사가 너무 많았다. 그중 해외 지급결제 세션의 패널리스트 중 아프리카에서 스타트업 회사 비트페사(Bitpesa)를 창시한 엘리자베스 로시엘로(Elizabeth Rossiello)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자그마한 체구에 코맹맹이 소리로 굉장히 빨리 많은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아프리카의 소상공인은 국제 무역에 의존하는데 금융산업이 낙후한 데다가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디리스킹으로 국제금융망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미달러화에 의존해 송금하는데 많은 제약을 받아왔습니다. 금융 황무지인 곳에서 휴대전화에 앱을 깔고 케냐 사업자가 케냐 돈으로  송금하면 이 돈은 유동성이 좋은 비트코인이나 ETH로 전환되고 이 암호화폐는 곧바로 나이지리아에 있는 사업자에게 나이지리아 돈으로 전환되어 불과 몇 분 안에 송금이 완료됩니다.”

2013년에 블록체인 기반 지급 결제 회사를 설립한 후 아프리카에서 비트코인, ETH 등 암호화폐를 이용하여 P2P 혹은 기업 대 기업(Business-to-Business: B2B) 국제 지급결제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내가 근무하는 세계은행이 아프리카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트페사의 플랫폼이 세계은행 재무부의 현금 지급 거래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그 세션이 끝난 후에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명함을 건네며 말을 건네자 그녀는 연사들을 위한 대기실의 조용한 공간으로 나를 초대했다. 

둥근 소파에 마주 앉자마자 그녀는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무대에서 빠르게 말했을 때, 나는 그녀가 제한된 시간 안에 전달해야 할 것이 많아서 그렇게 급하게 말하는 줄 알았는데, 단둘이 얘기를 나누니 무대에서보다 말이 더 빨랐다.

"남편이 IFC*에서 일하기 때문에 IFC에서 몇 번 발표한 적이 있어요. 지난 몇 년간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큰 장벽 중 하나는 교육 부족으로 인한 블록체인 기술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금융 규제 당국의 반발이 심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저는 각국의 정부와 중앙은행과 일하는 세계은행과 IMF와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세계은행에 대해 언급하자 너무나 반가웠다. 

"저도 우리가 오늘 여기서 만나서 대단히 기뻐요. 세계은행 재무부에서 저는 주로 개발도상국의 중앙은행들과 일해 왔습니다." 내가 중앙은행을 언급하자, 그녀는 반색하며 말을 이었다.

"외환을 규제하는 중앙은행을 교육하는 건 너무나 중요해요. 우리의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아프리카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암호화폐를 금지하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그런 금융 당국의 기관들을 교육하면서 그들과 싸워 왔습니다."

나는 다음 세션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확인한 후 양해를 구해야 했다. 


이 행사의 첫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날 중 하나였다. 연이은 세션에 이어 연사의 말을 들으며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마다 각종 부스를 찾아 정보를 수집했고, 칵테일 디너 시간까지 참석해 네트워킹을 한 후 녹초가 됐다. 내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모퉁이에 앉을 때마다, 몇몇이 내 명찰에 적힌 '세계은행'을 알아보고 내게 다가왔다. 

"당신은 세계은행에서 일하나요? 저는 브라질에서 디지털 페이먼트 앱을 만든 사람입니다. 제 비즈니스는 세계은행에서 추구하는 금융포용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 생각에는 저희 사업에 관심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에서 디지털 결제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지원 자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금융 포용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내게 접근해 왔다. 혹은 몇몇은 세계은행 내의 블록체인에 대한 활동 현황을 묻기도 했는데, 나는 세계은행의 무관심과 무지를 드러내지 않으려 얼버무리느라 상당히 진땀을 흘려야 했다.


저녁식사 후 호텔 방에 올라와 창밖으로 방을 내다보니, 하루 종일 창이 없는 공간 안에 갇혀 하늘을 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급한 일들을 처리하기 앞서 커피를 끓였다. 호텔 방에 커피 향을 가득 채우고 스팅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컴퓨터를 열었다. “Oh,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스팅의 노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뉴욕의 영국인(Englishman in New York)'이 흘러나오자, 나는 일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타임 스퀘어에 설치된 전광판의 찬란한 빛은 화려하게 반짝이고 늦은 밤인데도 거리엔 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었다.

화려한 불빛과 북적이는 밤거리는 서울의 번화한 거리와 닮았다. 미국에 와서 내 첫 아이디에 나는 노래 가사처럼 ‘합법적인 외계인’이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외계인이라는 단어는 사람이 아닌 정체 모를 외계 생명체를 의미한다고 이해했었다. 외계인으로 지정되었던 시절, 나는 이 낯선 땅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외롭고 힘들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당신 자신을 잃지 마라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고 반복하는 스팅의 노래를 들으며 그 외로움을 달랬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블록체인에 대한 정보를 구하러 하루 종일 혼자 항해한 후 지친 그날 밤, 서울의 밤거리를 닮은 뉴욕 맨해튼에서, 나는 또다시 그 외로움에 젖어 그의 노래를 들었다.


* 국제 금융 공사(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 IFC)는 세계은행 그룹 내 개발도상국 민간부문 강화에 중점을 두고 민간사업에 투자하는 기관이다. 이외 세계은행 그룹은 국제부흥개발은행(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Association:IBRD)와 국제개발협회 (International Development Association:IDA)로 구성된 세계은행은 개발 도상국의 정부 및 공공 부문에 대한 자금 및 금융자문을 제공하고, 정치위험 보험을 제공하는 국제투자보증기구(MIGA)와 국제투자분쟁해결본부(ICSID)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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