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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4. 2021

8. 세계은행 블록체인 연구소

(The World Bank Blockchain Lab)

"컨퍼런스는 어땠어요?"

컨센서스 컨퍼런스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일찍 피터가 내 사무실에 들렀다. 함께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컨퍼런스 정보를 공유했었지만, 그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그는 내게 IT 부서에 블록체인 팀을 만들려 한다는 소문이 있다며 담당 매니저 이름과 연락처를 주었는데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아 혼자 다녀오고 말았다.

"함께 가지 못해 정말 유감이었어요. 거기서 혼자 돌아다니며 정말 아쉬웠어요. 당신과 같은 IT 전문가가 함께 갔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세션도 너무 많고, 방문할 부스나 얘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도 너무 많아 혼자서 한계를 절실히 느꼈죠.” 

함께 사무실 카페로 걸어가며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마 내년엔 갈 수 있겠죠. 그래서 어땠어요?" 그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먼저, 해외송금 관련해 협력할만한 후보 몇을 확인했어요. 아프리카 케냐를 거점으로 활동 중인 비트페사, XRP라는 자체 개발한 토큰을 이용해 기존 중소 규모의 은행들의 외환거래에 집중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리플. 리플은 은행, 특히 일본에서 은행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해서 우리 재무부서의 사무실이 있는 인도에도 네트워크를 갖고 있으니 우리의 실제 거래를 적용하기 좋을 듯해요. 이것으로 현금 관리팀장에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죠?"

동료들이 하나둘씩 출근해 모닝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서 어수선해졌는데, 피터는 아랑곳없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요! 다른 건 더 없나요?" 

"재무부서에서 취급하는 채권시장의 몇 가지 사례를 찾아냈고 파생상품시장의 경우 한 세션의 패널리스트로 나온 CME그룹의 디지털화 책임자와 연락이 닿았어요. 그리고, 카리브해 섬나라인 아루바 (Aruba) 중앙은행 대표와 비트(Bitt)라는 바베이도스(Barbado)에 본사를 둔 회사의 아주 젊은 CEO가 블록체인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로 섬나라 경제를 혁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 CEO를 따라가서 그의 연락처도 받았어요. 더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그와 컨퍼런스 콜을 주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놀이동산에 다녀온 어린 소녀처럼 지난 며칠간을 회상하며 얘기했다. 피터도 덩달아 신이 나서 말했다.

"비트와 컨퍼런스 콜을 하게 되면 저도 꼭 잊지 말고 초대해 주세요. 그나저나, 블록체인 팀을 이끌 IT 매니저인 스텔라와 얘기해 보셨어요?"

"오, 정말 그 팀이 만들어졌나요? 지난번에 소문을 말해줘서 그녀에게 전화해서 음성 메시지를 남겼는데 답이 없었어요. 그녀나 그 팀원 중 누구라도 회의에 참석하길 바랐지만, 답을 듣지 못했어요." 

내 동료 중 하나가 와서 팀 미팅을 알려주어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피터가 대답했다.

"네, 이제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요. IT 부서에 블록체인 랩을 세우고, 스텔라가 열심히 새 팀을 꾸리고 있는 듯해요. 약 한 달 후에 몇몇 유명한 전문가들을 초청하는 오프닝 행사를 개최한대요. 아마 랩 론칭 준비로 너무 바빴나 봐요. 스텔라를 보게 되면 전화하라고 말해 줄게요." 


일주일 정도 후에, 스텔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라, 스텔라예요. 더 일찍 전화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여긴 정말 정신없이 바빴어요. 컨센서스 컨퍼런스는 어땠습니까?" 그녀는 강한 동유럽 억양으로 저음의 느린 말투로 차분하게 말했다.

"정말 좋았어요. 동시에 진행되는 세션이 너무 많아서, IT 부서에서 누구라도 함께 갔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싶었죠. 당신이 블록체인 랩을 추진해 이끌게 되었다니 정말 기쁩니다. 축하해요!"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그녀지만 블록체인에 대한 열정을 함께 나눈다는 것만으로 나는 벌써 그녀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고마워요! 곧 개막 행사에 초대장을 발송하겠습니다. 알렉스 탭스콧을 비롯해 블록체인으로 이미 유명 인사가 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할 겁니다. 그 행사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래요.” 

"알렉스 탭스콧이요? <블록체인 레볼루션>의 저자? 와, 전 그 책 읽고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가 됐어요! 꼭 갈게요." 정말 흥분되는 소식이었다. 이제까지 블록체인 얘기를 꺼낼 때마다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었는데, 같은 열정으로 일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세계은행 블록체인 랩의 공식적 오프닝에서 알렉스 탭스콧을 만날 수 있다니! 갑자기 로즈 생각이 났다. 나는 그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녀에게 바로 전화했다.

"안녕, 로즈, 컨센서스 컨퍼런스 전에 블록체인에 대해 전화했었던 사라예요."

"오, 안녕, 사라. 회의에 참석하셨었나요?" 지난번 통화했을 때보다 한결 여유로운 목소리였다.

"네, 할인 코드를 공유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행사장에서 연사 명단 중 당신 이름을 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시간에 다른 세션에 참석해야 해서 행사장에선 못 마나 섭섭했어요. 세계은행 IT 부서가 블록체인 랩을 출범한다는 소식 들었어요? 이달 말에 개막 행사를 진행한다고 하는데…” 

내 들뜬 목소리와는 달리 그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건 이제 내게 중요하지 않아요. 난 이달 말에 세계은행을 떠나요."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내 흥분은 꺼졌다. 

"아, 유감이네요. 계획이 뭔지 물어도 될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이곳을 떠나게 되어 정말 기뻐요. 블록체인 스타트업 회사로 옮겨가요."

그렇게 나는 그녀를 만나볼 기회도 없이 그녀의 앞길을 축복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한편으론 그녀의 젊음과 스타트업으로 옮겨갈 결단을 한 용기가 부러웠다. 내가 그녀처럼 젊었을 땐 한국에서 제일 큰 회계법인에서 연수를 마치고 조그만,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일종의 창업 회사로 옮겨갔었다. 그 조그만 회사는 내가 옮겨간 후 몇 년의 가파른 성장 끝에 KPMG 코리아를 인수하고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컨설팅/회계법인이 되었다. 주말도 없이 일하고 심지어 밤을 새우며 일하기도 하고 엄청난 업무량에 지치기도 했지만, 가치 창출과 성장, 그에 대한 보상에 일을 하는 희열이 있었다.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세계은행에서는 그런 희열은 느껴보지 못했다. 

한 번은 친구가 보내준 딜버트 만화를 보고 소리 내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어젯밤에도 여느 때처럼 자정까지 일했어요, 엄마." 만화 속 딜버트가 그의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그에게 "음, 그래도 돈은 좀 벌었겠군."하고 말했다. "야근 수당은 없어요"라는 그의 대답에 어머니는 여전히 "음, 적어도 중요한 일이었겠지"라며 그를 위로한다. "아니요. 상사가 내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바꾸게 했는데, 바꾼 후 더 나빠졌어요." 그의 어머니가 다시 "그래도 넌 중요한 회의에 대한 준비를 한 거지"라고 위로하자, 그는 “프로젝트가 자금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회의도 취소됐어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의 엄마는 “그럼, 예산도 없는 프로젝트에, 일어나지 않을 회의를 위해, 회의자료를 더 악화시키는 일을 공짜로 했다는 거네?! 오, 너 세계은행에서 일하는구나!"

세계은행과 같은 정체되고 관료적인 조직에서 일하는 데 있어서 더 나쁜 것은, 외부적, 정치적 변수가 너무 많아서 성공과 실패를 측정할 수 있는 명확한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은행그룹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기관인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수익은 2000년대 초반부터 크게 감소해왔다. 한편, 비용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2004년 7월부터 2005년 6월까지 처음으로 연간 비용이 미화 20억 달러를 넘었다. 세계은행은 재무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1998년에 신규 직원의 연금과 혜택을 대폭 축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2001년 5월 세계은행에서 근무한 이후 재정악화는 심화돼왔다. 

"세계은행에 대한 농담 들어봤어?" 한 번은 사무실에서 농담을 좋아하는 동료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월스트리트와 세계은행 사이에 조정 대회가 열린 적이 있대. JP모건, 시티, 골드만삭스 등 모든 기업들이 공모 준비에 분주했는데, 세계은행은 평소처럼 이 대회를 위한 위원회를 먼저 설치했지. 일곱 명의 위원들은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그들의 대부분의 시간을 누구의 생각이 옳은지 토론하는 데 보냈지. 경기일이 빠르게 다가오자, 그들은 노를 저을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해, 경기가 시작 직전에 한 사람을 골라서 모두 배를 탔어. 그 신참이 죽어라고 노를 젓고, 일곱 명의 위원들은 카메라를 향해 얼굴을 내밀기에 바빴지. 당연히 그들은 패했고, 일곱 명의 위원들은 대회에서 패한 뒤 신참 직원에게 실패의 원인을 물어 쫓아내고 그 일을 덮었대.”


세계은행의 부조리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기회를 찾아 떠나는 로즈를 생각하며 나는 정현종 시인의 아주 짧은 시 <섬>을 떠올렸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나는 로즈와 단지 전화 두 통화를 나눈, 정현종 시인의 시어처럼 아주 짧은 관계였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시적 관계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통해 컨센서스 행사를 알게 되고, 블록체인에 많은 열정을 가지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전 세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어느 곳에 가든 블록체인으로 만들고자 한 그녀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2017년 6월 27일, 파란 하늘이 내다 보이는 세계은행 본관 꼭대기 층 이사회실에서 블록체인 랩의 오프닝 행사가 열렸다. 워싱턴 D.C.의 세계은행 내 MC(메인 콤플렉스)로 불리는 이 본관 건물은 총 13층의 직사각형 유리 건물로 백악관에서 불과 두 블록 떨어져 한 블록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데, 1층 중앙에는 거의 매일 행사나 전시회가 열리는 아트리움이 있고, 아트리움을 내려다보는 내부 사각형도 모두 유리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트리움과 내부 벽 위 천장이 모두 유리여서 햇빛이 유리를 통해 여과돼 아트리움과 각 층의 모든 공간이 자연광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듯하다. 

사무실과 회의실은 외부 유리벽과 내부 유리벽 사이의 공간을 네 열로 채우는데, 관료적 위계질서가 이 건물 내 공간배치에도 배어있다. 맨 위층에는 커다란 이사회 실과 행사장, 그리고 총재의 사무실인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이 있고, 회원국이나 지역을 대표해 파견 나와 있는 전무이사 (Executive Director: ED)들이 11층과 12층을 차지하고 있다. 각 층과 층 내 구역은 직위가 높을수록 외벽의 공간을 차지하고 그다음은 내부 유리벽이 있는 공간을, 자연광이 없는 내부 두 열의 공간은 조수 및 임시직 직원 등에게 할당된다.

 IT 부서의 블록체인 랩이 오프닝 이벤트를 주최할 무렵 나도 재무부에서 블록체인을 통해 몇 가지 아이디어를 홍보하는 데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블록체인과 핀테크 관련 기사들 중 재무부서에 직접 관련이 될 것들을 추려 동료들에게 전해주어 그중 몇 명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현금관리팀장에게도 해외송금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실험을 해보자고 제안해 긍정적인 답을 얻었고, 이날 행사에는 현금관리팀장, 채권 발행 운용 및 현금관리팀의 매니저인 브라이언, 아프리카 국가들의 파트너 격인 매니저 케이트가 함께했다. 특히 브라이언은 IT 경력을 가지고 있고, 그가 관심을 보인다면 많은 아이디어를 함께 추진할 수 있을 듯해 나는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햇빛이 가득한, 커다란 이사회실에는 알렉스 탭스콧의 오프닝 연설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들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화상으로만 참여할 수 있었다. 그의 연설 후, 뉴아메리카 블록체인 트러스트 액셀러레이터의 토미카 틸레만 (Tomicah Tillemann)과 디지털상거래회의소(Chamber of Digital Commerce) 창립자인 페리안 보링 (Perianne Boring)의 짧은 연설이 이어졌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브라이언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와 함께 재무부 빌딩까지 돌아올 계획이었다. 본관 건물에서 일곱 블록 동떨어져 있는 재무부까지 걸어오는데 십여분의 시간이 걸리니 그 시간 동안 그에게 내 생각을 직접 나눌 좋은 기회였다. 행사가 끝나기 전에 그가 일어서고 내 옆에 앉아있던 피터와 내가 그를 따라갔다.


"브라이언, 사무실로 걸어갈 건가요?" 피터와 함께 걸어가며 나는 그에게 물었다. 본관과 재무부 건물을 오가는 셔틀이 매 30분마다 운행되기는 했는데, 대부분 시간을 맞추지 못해 걸어 다니는 편이었다.

"네, 셔틀버스를 기다리다간 회의에 늦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산책하기 좋은 날씨네요." 브라이언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키가 큰 그의 보폭을 따라잡느라 나는 바삐 움직여야 했다. 

"블록체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피터가 브라이언 옆에서 걸으며 먼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브라이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모두가 희망에 찬 모습이 인상적이었네. 사라, 요즘 블록체인에 대한 뉴스를 많이 공유하던데, 어떤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나요?" 

"네! 블록체인의 기저 기술인 DLT는 재무부서 업무에 직접적으로,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해외송금, 채권 발행 등이 좋은 사례가 될 수도 있고, 스왑 등의 파생상품 거래에도 적용할 수 있고요. 아직 너무 이른 단계라 금융시장에서 외부 파트너를 찾는 것이 여의치 않은 경우 IBRD와 IDA 간의 내부 스왑 거래를 통해 그 가능성을 테스트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수작업 프로세스가 필요한 파생상품 거래나 SDR 포트폴리오와 같이 복잡할수록 스마트 컨트랙트를 사용하여 자동화할 수 있어 그 이점이 더 커집니다." 

나는 재무부로 옮겨오기 전에 중앙회계부서에서 재무부서의 채권 발행 시 그 거래내역을 검토해 승인하는 일을 했던지라 채권 발행 방식과 현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브라이언은 내가 회계부서에 있을 때 내게 접근해 재무부서로 옮겨오라고 설득한 사람이었다.

"정말 흥미롭군요. 실제 블록체인을 이용해 채권 발행을 한 사례가 있습니까?" 

브라이언은 귀가 번쩍 뜨이는 듯 흥미를 나타냈다.

"최근에 카자흐스탄 중앙은행이 모바일 앱을 통해 단기 채권을 소매 투자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거라는 계획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올해 1월 호주 영연방 은행은 퀸즐랜드 재무부와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채권 발행을 테스트했다는 기사가 있었고요. 지난달 컨센서스라는 거대한 블록체인 행사에서 호주가 얼마나 블록체인에 대해 열심인지 놀랐어요. 행사 기간 동안 한 회의실을 빌려서 금융뿐 아니라 농업 등  다양한 산업의 적용 사례를 가지고 호주의 각 산업 리더와 블록체인 협회의 대표가 지속적으로 세션을 개최한 유일한 국가였어요.” 

나는 숨 가쁘게 걸으며 브라이언에게 두서없이 답했다.

"원더풀! 나는 지금 회의 때문에 서둘러 들어가야 하는데, 이제까지 말한 모든 정보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채권 발행 아이디어를 요약해서 보내줄 수 있나요? 자료를 가지고 다시 얘기하도록 합시다.” 


브라이언은 바삐 말을 마치고 멀어져 갔다. 피터와 나는 만연한 웃음을 짓고 그를 향해 손을 흔든 후 하이파이브를 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전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재무부 건물 2층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들렀다. 아이스커피를 들고 우리는 창가에 앉았다.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창밖을 내다보니, 눈부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키 큰 나무들의 싱그러운 초록 잎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당신이 당신의 아이디어와 시장 정보를 정리해서 공유한다면, 나 또한 블록체인 랩 팀과 미팅을 주선할 수 있어요." 피터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케이트도 아까 행사에서 보았는데, 당신이 그녀를 데려왔나요? 재무부에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을 관리하는 케이트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정말 기대되는 일인 듯해요."

IT와 재무부 모두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 등의 외부 고객을 직접 상대하지 않는, 세계은행 내 활동을 지원하는 부서이다. 하지만, 재무부는 신흥국의 금융시장 발전을 위해 중앙은행 및 재무부와 협력하기 위해 금융 전문지식을 갖춘 틈새시장 사업을 개발했다. 특히, 2001년부터 중앙은행에 외환보유액 자산관리와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온 자문 및 관리 프로그램(Reserve Advisory & Management Partnership:RAMP)엔 세계 각 지역의 국가들을 관리하는 매니저들이 있는데, 재무부를 지원하는 IT 및 재무부 직원들 사이에서 그들은 꽤 인기가 있었다. IT나 재무부의 일상 업무는 대체로 반복적이고, 잘 드러나지 않는, 때론 지루하기도 한 일인데, 그들과 함께 출장을 가면 외부 고객을 직접 상대해 우리의 일상 업무에 쓰이는 지식과 경험을 그들과 나누며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다. 

“매일 블록체인을 포함한 핀테크 관련 뉴스 중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과 관련된 것을 추려 RAMP 매니저들에게 보내주고 있는데, 그중 유일하게 케이트가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아마도 그녀 고객인 아프리카 나라들이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아직 케이트하고 직접 얘기는 나눠보지 않았는데 오늘 행사를 계기로 조만간 접근을 해 볼 수 있을 듯하네요. 이제 점점 바빠질 듯해요. 현금관리팀하고 해외송금 관련 건도 구체화해야 하고, 브라이언이 요청한 자료로 다음 사례도 추진하고, 케이트를 설득해 중앙은행과 협력하는 일도 추진해 볼 수 있을 듯하고…” 나는 피터에게 말했다.

“맞아요! 근데, 지금은 우리의 본업으로 돌아갈 시간인 듯한데요.” 

피터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기대에 차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던 우리는 서둘러 각 자의 사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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