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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4. 2021

9. 블록체인으로 뭘 할 수 있을까?


2017년 여름, 나는 브라이언에게 발표할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나의 본업은 투자자산관리 운영의 매니저인 빌과 함께 중앙은행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었는데, 빌의 경쟁자인 브라이언이 먼저 블록체인에 관심을 보였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인인 브라이언은 빌과 비슷한 50대 중반의 백인 남자로 키나 덩치도 빌과 비슷했는데, 재무부 운영 (Operation) 부서의 부서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면서 둘은 눈에 보이게 앙숙이 되었다. 결국 부서장으로는 캐나다 중앙은행 출신의 외부인이 채택되면서 둘 다 고배를 마시고 말았지만, 그래도 둘의 관계는 여전했고 빌의 부하 직원인 내가 브라이언과 가깝게 지내는 걸 빌이 달갑게 여길리 없었다.

하지만, 재무부서에서 블록체인을 시도하기엔 해외 송금 결제와 채권 발행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브라이언이 적임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빌의 영역인 투자자산 관리는 금융 시장에서 구매를 하는 바이 사이드 (Buy-side)인지라 새로운 상품이나 기술을 주도하기보다 그러한 것이 시장에 나타나면 선택하는 입장이다. 반면, 채권 발행은 판매자인지라 주도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으니 브라이언을 설득해 시도하는 것이 먼저 넘어야 할 산과 같았다. 세계은행의 재무부서가 국제 금융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할 때, 재무부서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상징적인 중요성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후에는 그것을 이용해 각국의 중앙은행과 연계해 그들에게 블록체인에 대해 교육하고 함께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을 듯했다. 

먼저, 블록체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을 정리해 참고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혹은 다른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사기다 혁신이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블록체인 혹은 분산원장기술이 혁신적이며 경제, 사회, 정치적 체제의 근본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데에는 이미 컨센서스가 만들어져 세계 곳곳 다양한 분야에서 그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뢰를 증명하는 것을 보증해 주는 중개인 없이, 네트워크에 참여한 모든 분산된 컴퓨터가 자동으로, 신속하게 증명하고 데이터를 저장하는 탈중앙화된 시스템인 블록체인은 그 투명성(Transparency), 보안성(Security), 불가역성(Immutability) 특성으로 보안과 신뢰가 필요한 모든 곳에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6년 여름부터 매일 쏟아져 나오는 뉴스와 문건을 쫓아왔는데, 그 자료를 모아 놓고 보니 그동안 업무와 관련된 금융분야에만 중점을 두고 보아 왔던 디지털 화폐나 지급결제 외에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공분야의 사례들(부록 2 참조)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토지 대장 개혁이 흥미로웠다. 토지는 인간 삶에 직결된다.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식량을 얻을 수 있는 곳이자 거주할 터전이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는 부패한 나라의 부정한 권력의 탐욕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국의 조선시대처럼 세계 곳곳엔 여전히 권력자가 토지의 명의를 임의로 바꿔 땅을 차지하기도 하고, 제대로 된 토지 대장이 없어 분쟁의 원인이 되고, 법질서가 유지되지 않는 부패한 곳에서 약자는 삶의 터전을 잃기 일수다.

한국이 한국전쟁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된 이후 어떻게 급속도로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지만, 나는 1950년대 이룬 농지개혁이 그 기반을 이루었다고 본다. 물론 어느 개혁이나 불완전하듯 그 개혁 또한 역사적 평가가 다르기는 하나 대다수의 소작농이었던 사람들에게 농지를 분배하여 자기 땅을 일구게 된 이들은 자식들의 교육에 투자하게 되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편으론, 내가 살고 있는, 이 풍요로운 나라 미국에서 흑인들의 빈곤과 그로 인한 범죄가 개선되지 않는 것은 그런 토지개혁을 이루지 못한 데 있다고 본다.

사실 미국에서도 그런 토지개혁을 이룰 뻔했었다. 남북전쟁(1861년 4월 12일 - 1865년 4월 9일)이 끝나갈 무렵 1865년 1월에 북군 장군이었던 윌리엄 테쿰세 셔먼(William Tecumseh Sherman)이 전쟁 후 해방된 남부지역 흑인 노예들에게 삶의 터전을 이룰 수 있도록 40 에이커 (약 5만 평)의 땅과 당나귀를 나누어주자 했고 링컨이 이를 약조했다. 하지만, 그해 4월 15일 링컨이 암살된 후 차기 대통령인 앤드루 존슨은 그 명령인 Special Field Orders, No. 15를 무효화했다.


꼭 부패한 나라가 아니더라도 토지와 부동산 거래는 등록에 시일이 오래 걸리고 그런 만큼 비용도 많이 들어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또한 자연재해 등으로 문서가 분실될 경우 소유권 분쟁과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동유럽 조지아와 북유럽 스웨덴은 2016년부터 블록체인 기반 부동산 거래 플랫폼을 테스트하기 시작해 2017년 이미 실험적으로 거래의 등록을 마치기도 했다.  

(1) 매도자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접속해 (2) 매도 등록을 하면 (3) 토지대장을 관리하는 부처에서 부동산 정보를 확인한 후, (4) 브로커가 접속해 (5) 매수자를 연결하고 (6) 매수자가 네트워크에 접속해 (7 & 8) 구매의사를 확인한 후 (9 ~ 12) 매도자와 매수자가 거래은행에 통보해 각 은행이 이 네트워크에 접속해 금액을 결제한 후 (13) 브로커가 거래 완료를 입력하고 (14) 매도자 은행에서 자금결제 완료를 통보하면 (15) 토지대장을 관리하는 부처에서 이를 검토 후 승인하며 부동산 명의 이전이 완료된다. 스웨덴과 같이 경제와 정부 각 부처의 디지털화가 선진화된 나라에서도 수개월이 걸리던 부동산 등기가 블록체인의 도입으로 수시간 안에 완료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료 출처: BLOCKCHAIN NOW AND TOMORROW: ASSESSING MULTIDIMENSIONAL IMPACTS OF DISTRIBUTED LEDGER TECHNOLOGIES, 유럽연합회, 2019년 7월)


블록체인의 투명성에 각 회원국으로부터 기금을 모아 인도적 원조(humanitarian aid)를 하는 유엔도 주목해 상당히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었다. 5월에 컨센서스에 가기 전에 코인데스크에 “어떻게 블록체인이 마침내 유엔을 연합시킬 수 있었을까"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를 읽었다. 자연재해나 전쟁, 재난 등으로 어려운 지역에 원조할 때 현금을 사람이 운반해 가는데 원조액의 삼분의 일 이상이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부정부패로 인해 새어나가고, 겨우 목적지에 도착한 돈도 신분증이 없는 난민들에게 지급하는 어려움을 겪어 온 유엔과 그 산하기관에게 블록체인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2017년 들어 지난 5월엔 UN 세계식량프로그램(World Food Programme:WFP)에서 요르단에서 시리아 난민 1만 명을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 신원확인 절차를 도입해 식량보급을 했다는 보고가 나왔고, 6월엔 유엔이 마이크로소프트와 Accenture와 함께 전 세계 11억 명에 달하는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에게 블록체인을 도입한 ID를 발급하는 ‘ID2020 Alliance’ 프로젝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ID, 자금 추적, 송금 외에도 유엔 기후변화 협약 (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이행을 위해 블록체인을 활용해 탄소 배출과 청정에너지 거래, 기금 배분을 감시할 수 있는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음을 언급했다.


나는 그때까지 기사화된 개념 증명(槪念證明, Proof of Concept: POC) 사례들을 금융분야와 비금융 분야로 나누어 요약한 후 금융분야 중 특히 채권 발행에 관한 사례를 중심으로 제안서를 작성했다. 채권 시장은 전 세계 주식시장보다 더 큰 규모인데 불투명하고 많은 중개인을 거쳐 발행해야 해 비용이 많이 들어 상당히 비효율적이어왔다. 특히, 나오미 프린스가 지적한 대로 1947년 트루먼 대통령이 존 J. 맥클로이(John Jay McCloy)를 세계은행 총재로 선출했을 때, 맥클로이는 그 일을 맡는데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 첫 번째가 세계은행이 발행하는 모든 채권은 월스트리트의 은행을 통해서만 매각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두 번째 조건은 채권을 판매한 경험이 있는 월스트리트 출신의 그의 친구 두 명을 그의 부하 직원으로 임명하는 것이었고, 그들과 함께 1947년 세계은행이 첫 채권을 발행할 때부터 월스트리트와의 은밀한 관계가 시작되어 유지되어왔다. 블록체인을 통해 그러한 중개인이 없이 세계은행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예를 들면, 빈곤 지역의 아동과 여성을 위한 건강과 교육이라든지 혹은 환경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라든지)를 위해 관심 있는 전 세계인에게 직접 판매하고 그 수익을 함께 나누고 투명한 자금관리를 할 수 있다면 세계은행은 특정국의 특정 기득권을 위한 은행이 아니라 진정으로 세계를 위한 은행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행히 호주의 커먼웰스은행의 블록체인을 활용한 첫 정부 발행 채권 사례가 2017년 1월에 발표되어 그 담당자와 연계될 수 있었고, 5월에 참석했을 때 호주 전시관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느낌처럼 호주는 워싱턴 D.C.에 소재한 그들의 대사관을 통해서도 그들의 블록체인 활동을 홍보하는 등 굉장히 적극적으로 블록체인을 선도하는 국가로 협력하고자 했다. 게다가, 6월에는 벤츠를 생산하는 독일의 자동차 회사 다임러 Daimler AG에서 1억 유로에 달하는 회사채의 일부를 블록체인 파일럿 프로젝트로 발행해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이용해 모든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기사도 기술적으로 가능성을 구현해 브라이언을 설득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의 지원을 얻으니, 그와 경쟁 관계에 있던 빌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 빌과 브라이언에게 주기적으로 블록체인을 비롯한 핀테크 뉴스와 새로운 동향을 업데이트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IT부서의 블록체인 랩과도 연계해 내가 제시한 외화송금 결제와 채권 발행 등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현금관리팀장을 비트페사와 리플과 연결해 주었는데, 상당히 적극적으로 두 곳과 동시에 개념 증명 사례들을 추진해 나갔다. 나는 또한, 컨센서스에서 파악해온 기술적으로나 혹은 금융시장에서 협력할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이들에게 연락해 상세한 얘기를 나눈 후 화상회의를 추진하고 내부적으로 이를 홍보하는 등 바쁜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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