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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4. 2021

10. 리바이어던과 Ur-파시즘

(Leviathan & Ur-Fascism)

“우리는 죽음을 원치 않기 때문에 열거하기를 좋아한다. (We like lists because we don't want to die.)” 2017년 여름, 이코노미스트지에 실린 블록체인 관련 기사의 첫 문장, 그리고 뒤따르는 이름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가 나를 사로잡았다. 내가 대학생일 때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이 돌풍을 일으켰고, 나는 그의 마니아인 선배와 동기들에 둘러싸여 한동안 그의 책을 여러 권 읽었었다. 미학을 전공한 지라 그의 미학, 기호학 등의 책은 과 동기들과의 대화에 빠질 수 없는 필독서였다. 

“블록체인이 세계를 운영한다면: 신뢰 사업을 뒤흔들고 있다.”라는 제목의 그 기사는 ‘목록(lists)은 간단한 체크리스트에서 복잡한 데이터베이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이들 목록에는 모두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다. 그 관리자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어떻게 새로운 방식의 데이터베이스인 블록체인이 신뢰를 필요로 하는 많은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지 보고한 후, 수학적 논리로 운영되는 블록체인이 인간의 의사결정을 대체하면 진정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 기사는 초반에 5백여 년 전 새로운 형태의 리스트 작성 방식, 즉 복식부기 회계가 처음 북부 이탈리아에 나타나 처음으로 리스트 작성 방식이 세상을 바꾼 적이 있다라고 잘못된 지식을 드러내 나는 그만 읽을까 하다가 그래도 첫 문장에 매료된 지라 이야기를 끝까지 어떻게 풀어나가나 싶어 마지막까지 읽어 내려갔다. 앞서 2장에서 복식부기 시스템에 대해 잠시 언급을 했었지만, 행여 이 기사를 쓴 기자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을까 싶어 간략히 회계 (장부 혹은 리스트 작성 방식)의 역사를 먼저 짚고 넘어가려 한다.


수십만 년 전부터 인류는 물물 혹은 노동 등 교환 (Barter) 경제 활동을 이루었고, 이런 교환 활동은 기록을 필요로 해 수십만 년 전부터 초기 원시적인 장부 기록방식이 존재했다. 이 방식은 끊임없이 진화했다. 앞서 언급한  2만 년도 더 된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계산 기록인 아프리카의 이생고 뼈, 1만여 년 전 요르단 강 서쪽에 위치한 제리고(Jerico)의 점토 구슬(Clay balls), 수천 년 전 유프라테스 강가에 위치한 메소포타미아 우루크(Uruk: 현재의 이라크)에서 발견된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 문자(cuneiform) 등의 단식부기 방식을 거쳐 세계 곳곳에서 다양하게 복식부기로 발전했다. 잉카를 비롯한 고대 안데스 문화에서 유래한 실의 매듭을 활용해 기록으로 남긴 잉카 매듭 문자인 키푸(Quipu), 2차 칼리프 이후 이슬람 회계 감사 제도, 7세기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4대 요소 예약 제도 등 세계 각지에서 복식부기 방식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루카 파치올리 (1447년경 – 1517년)에 의해 처음, 체계적이고 세부적으로 복식부기 회계가 문서화되어 남겨지게 되었다. 문자로 기록하여 남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역사적인 예라 하겠다. “말이 없었다면, 기록과 책이 없었다면 역사도 없고 인류의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한 헤르만 헤세의 말을 다시 되새긴다. 


그 기사가 내게 인상 깊게 남은 것은 또한 그 기사를 통해 비트네이션(Bitnation)을 알게 된 것이다. 블록체인의 여러 사례를 언급하며, “사람들은 가상 국가에서 함께 뭉칠 수 있고 그들만의 규칙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 중 하나가 이미 존재한다: BITNATION. 누구나 그 헌법을 받아들임으로써 시민이 될 수 있다.”는 문장이 내게 ‘국가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과 함께 내 대학 동기 하나가 떠올랐다. 대학 입학 후 과 환영회에서 신입생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할 때였다. 까까머리에, 호리호리하게 키가 크고, 검은 티셔츠, 검은 바지를 입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학생이었다.

“저는 막 군대를 마치고 돌아온 아나키스트입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라는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나라를 뜻하는 군주(君)와 스승(師)과 아버지(父)의 은혜는 같다’는 뜻의 군사부일체를 배우며 자랐고,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기억을 뼈저리게 새긴 조부모 세대에게서 나라를 잃은 설움과 고난을 되새기며 나라의 중요성을 새긴 나에겐  매우 낯선 단어였다. 그 친구를 만나기 전엔, ‘무정부주의자’하면 강압적인 제국주의 시대에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그런 강압적인 나라가 없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막연한 꿈을 꾸며 테러와 같은 수단을 써서라도 그 꿈을 이루려 한, 결국 무질서와 혼란만 초래하는 한물간 시대의 유물쯤으로 생각했었다.


그 친구를 통해서 아나키스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표트르 크로포트킨처럼 아나키스트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비유한 진정한 이웃인 사마리아인 (눅10:25-37)과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피투성이로 길바닥에 누워 있는 이를 마음 아파하며 보듬어 안는 사람. 누가 이런 비트네이션을 만들었는가 궁금해 찾아보니, 제임스 페넬 템펠호프(James Fennell Tempelhof)와 수잔 타코브스키 템펠호프(Susanne Tarkowski Tempelhof)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길에 버려진 사마리아인처럼 피 흘리는 사람들이 많은 전쟁터를 찾아다닌 이들이었다.

2016년에 둘이 결혼해서 둘 다 성이 템펠호프이지만, 국경 없는 세상을 오랫동안 생각하며 비트네이션을 창시한 대표 CEO인 이는 여성인 수잔이다. 그녀는 프랑스인 어머니와 폴란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 그 아버지는 10여 년동안 시민권을 얻지 못한 난민인 상황이었고 많은 다른 나라를 전전하며 그녀는 자랐다. 그녀가 스무 살이 되어 스웨덴으로 돌아왔는데, 그녀는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했다. 이후 그녀는 7년간 미국을 위해 일하며 리비아와 아프가니스탄을 오가며 살았는데, 그때 또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경험한 것을 말했다. 그녀의 인터뷰 기사의 몇몇 대목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스웨덴과 같은 정부는 삶의 중요한 기능을 통제합니다. 부모는 자녀 양육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으며, 자녀는 부모를 돌보지 않고, 이웃들은 서로를 무시하죠. 국가가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미국을 위해 일한 7년 동안, 저는 많은 고통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살해되고, 산산조각이 나고, 납치되는 것을 보았죠. 그리고 국가 기구 대신에, 사람들을 돌보는 다른 형태의 공동체들을 보았습니다. 제가 반군 지역에 도착해, 리비아의 벵가지 폭격을 보았을 때, 저는 완전한 혼란을 예상했지만, 그곳은 제가 방문했던 곳 중 가장 문명화된 곳 중 하나였습니다. 한 무리의 '스카우트'들이 교통정리를 했고 자원 봉사자들이 쓰레기를 수거했어요. 나는 중앙 정부 없이 기능하는 사회를 보았지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같은 종류의 민간단체를 봤습니다. 그곳에서는 당국의 입지가 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는 기능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끔찍한 것들을 보고, 전쟁을 경험하고, 위험한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저는 솔직히 서양에서는 보기 힘든 인간애와 상호 협조를 경험했습니다.”

그녀와 함께 비트네이션을 공동 창업하고 운영 책임을 맡아온 제임스는 영국 해군 장교 출신으로 대학시절 온두라스의 고아원을 돕는 자원봉사를 나갔다가 분쟁지역을 돕는 것에 뜻을 가져 국제 원조 구호 기구 (Cooperative for Assistance and Relief Everywhere: CARE)를 위해 일하며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일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저는 CARE 업무로 많은 전쟁을 겪게 되었는데, 특히 르완다에서 대량학살을 현장에서 직접 목도했죠. 저는 이것이 자국민을 살해하기 위한 고도로 조직된 국가의 의도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주권을 국가 당국에 주지 않고는 대량학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의 말은 한국에서 1980년에 일어났던 광주학살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신군부 쿠데타 세력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탱크와 공수부대를 대량 투입해 민간인, 심지어 어린 학생들까지 무자비하게 살상한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였다. 내가 대학생이 된 1989년까지 한국의 현대사는 부정부패한 정권과 이에 대항하는 학생과 시민에 대해 체포, 구금, 심지어 고문으로 살해까지 하는 부당한 공권력으로 점철되었다. 하지만, 군부 정권의 언론 통제로 대다수 시민은 이런 공권력의 범죄는 알 수 없었고, 시위대는 불만을 가진 정신이상자로 홍보되고 그렇게 인식되었다.


누구도 권력을 갖지 않는 무정부 상태가 되면 사람들은 모두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까?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혁명은 아랍세계를 휩쓸며 수십 년간 군림하던 각국의 독재자들을 내몰고 사람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곳의 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카다피 정권 때보다 더 살기 힘들다"는 푸념이 새어 나온다. 독재자의 대명사로 불리던 리비아의 카다피 시대가 극단의 혼란과 그로 인한 폭력과 불안정한 혁명 후의 시기보다 낫다니, 17세기에 이를 이미 간파한 토마스 홉스 Thomas Hobbes (1588–1679)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홉스의 책 <리바이어던>의 표지 (자료 출처: https://www.bl.uk/collection-items/hobbess-leviathan)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상처 투성이에, 짧다. 인류의 자연적인 기본 상태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라고 한 홉스는 인간의 삶과 그 본성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국가를 이러한 원초적 자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필요악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계약에 의해 만들어진 권력체로 보았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그의 책 <리바이어던 Leviathan (1651)>의 표지 그림에 잘 나타나는데, 성경 욥기에 나오는 괴물 리바이어던이 왕관을 쓴 거인으로, 한 손에는 세속의 권력을 상징하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교회의 권력을 상징하는 홀장(crosier)를 들고, 몸통과 팔은 수많은 인간들로 구성되어 그 거인의 힘이 계약된 사람들에게서 옮을 보여준다. 


비트네이션의 수잔은 “나는 중앙 집권화된 당국이 없는 세상을 상상한다. 대신, 나는 지역, 도시 국가, 마을, 그리고 자치 공동체의 조합을 보고 싶다.”라고 했다. “만물은 서로 돕는” 상호부조의 세상을 꿈꾼 크로포트킨과 닮았다. 누군가 아나키스트는 사람 좋은 몽상가라고 했던가. 슬프게도, 아나키스트들이 초래하는 혼란은 새로운 파시스트를 낳는다.

2016년 트럼프가 외치는 구호를 마술에 걸린 듯 따라 하는 지지자들의 모습에 움베르토 에코가 1995년에 썼던 ‘영원한 파시즘 (UR-FASCISM)’을 인용해 트럼프를 파시즘에 비교한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나치와 비슷하다고 그들을 나치에 비유하는 글이 나올 때였는데, 그 글의 저자는 에코가 지적한 파시즘의 14가지 특성을 조목조목 들어가며 이성적 논리를 표명한 나치와 다른, 평등을 거부하며 우월한 인종의 전체주의적 통치를 믿는 파시스트로 규정했다. 

그 글을 통해 나는 에코의 ‘영원한 파시즘'을 찾아 읽었다. 

1942년, 10살이었던 나는 루디 청소년 Ludi Juveniles (젊은 이탈리아 파시스트, 즉 모든 이탈리아 젊은이를 위한 자발적, 의무적인 경쟁)의 제1회 지역상을 수상했다. 나는 "우리는 무솔리니와 이탈리아의 불후의 운명의 영광을 위해 죽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수사를 총동원했다. 내 대답은 긍정이었다. 나는 똑똑한 소년이었다.

에코의 글은 이렇게 시작하여, 그 특유의 방대한 지적 창고를 열어 파시즘을 인식시킨 후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과제를 준다. 무솔리니 통치하에 자라며 구호와 그들의 수사만을 배웠던 그가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처음 미군 흑인 병사를 마주치고 해방과 자유를 알게 되었을 때를 상기하며, 그는 말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8년 11월 4일에 한 말은 기억할 가치가 있다. “나는 단호히 말합니다. 만약 미국의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힘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춘다면, 평화로운 수단으로 우리 시민들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 밤낮 애쓰지 않는다면, 파시즘이 우리의 땅에서 힘을 키울 것입니다."

나는 ‘평화로운 수단으로 시민들의 운명을 개선하는' 이 끝없는 과제에 주목한다. 날개가 없는 인간이 비행기라는 기술을 발명해 하늘을 날아다니듯, 이기심과 경쟁심, 소심함이라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부패하기 쉬운 국가라는 체제에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도입해 사람들에게서 받은 그 힘을 국가가 정당하게 사용하는지 사람들이 보다 쉽게 감시하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의지만으론 날 수가 없다. 의지만으론 부패하기 쉬운 본성을 고칠 수 없다. 진화한 기술을 선한 의지로 활용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면, 국가가 사람들로부터 받는 그 힘은 세금에서 나오는데 세금의 흐름, 즉 어떻게 거두어지고 사용되는지를 블록체인을 통해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적 자금을  어디에 사용할지 결정하는 의사결정에 현재의 제한된 간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번영된 삶을 누리는 스위스처럼 직접 민주주의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스는 대통령이 없고 일곱 명으로 구성된 내각에서 돌아가면서 의장 역을 하고, 의회를 통한 간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민이 직접 안건을 제기하고 투표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한다. 26개 주로 구성된 연합국인 스위스는 지방분권이 잘 이루어져 있고, 지방자치는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현안을 제기하고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원활히 이루어진다. 

그래서인지, 세계 최초로 암호화폐를 받아들인 곳도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주그 (Zug)로 연결되는 ‘크립토 밸리 (Crypto Valley)’이고 사회 모든 분야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는데 굉장히 적극적이다. 내가 사람들을 위한 더 나은 국가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카리브해 지역에서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들고자 애쓰는 비트(Bitt)에 주목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지난 5월에 컨센서스 행사에 참석했을 때, 연단에 서서 열정을 쏟아내며 블록체인 도입으로 카리브해 섬나라들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연계시키겠다는 포부를 얘기하던 비트의 젊은 CEO 가브리엘을 쫓아가 연락처를 받고 그에게 전화해 그들이 추진하고 있는 원대한 꿈의 상세한 계획을 들었다.

많은 부분에 인프라가 없는 작은 섬나라들에 디지털 인프라를 놓는 일인지라 각국의 정부와 공공기관을 상대로 하는 세계은행에 그들도 굉장히 고무된 듯했다. 가브리엘은 비밀유지조건으로 방대한 문서들을 내게 나누었고, 그들이 테스트하고 있는 전자지갑과 상공인을 위한 플랫폼 등을 화상으로 보여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들과 세계은행 재무부서, IT부서의 블록체인 랩 등과 일정을 조율해 2017년 8월 23일에 화상회의를 하기로 했다. 사면이 모두 유리로 된 재무부서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위치한 가장 넓은 회의실을 잡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블록체인을 언급하면 상대하는 이가 피터 외엔 없었는데, 그 넓은 회의실이 블록체인 랩 동료들과 재무부서의 동료들 외에도 IMF에서도 몇이 참석했다.

창 밖 하늘이 유난히 푸른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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