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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4. 2021

12. 인공지능 프로젝트

"자연어 처리 (Natural Language Processing: NLP)로 1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다섯 페이지로 요약했습니다." 

2018년 봄 어느 날 아침, 세계은행 인트라넷 블로그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아침 일찍, 나는 세계은행과 IMF가 공유하는 라이브러리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신문, 잡지, 학술지 등의 하이라이트를 훑어보곤 했다. 마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듯 기뻤다. 그동안 블록체인과 관련된 뉴스와 기사를 모두 수작업으로 모니터링하고 추적하다 보니 하루 24시간으로는 부족했다. 자연어 처리를 활용해 매일 관련 뉴스나 문서를 스캔하고 읽는데 소모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 싶어 블로그 링크를 클릭했다. 

이 블로그는 자연어 처리 개념 증명 사례 개발에 대해 세계은행 내  IT 팀과 협력한 긍정적인 경험을 나누었다. 블로거가 일하는 부서는 각종 프로젝트 평가를 위해 매달 수백 권의 두터운 보고서를 많이 읽어야 했는데, 핵심 용어와 평가 범주를 설정해 NLP를 활용해 이를 자동화했다. IT 팀과 함께 개발한 알고리즘은 각 보고서를 매우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으며, 인터액티브 대시보드(interactive dashboard)에는 수백 개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프로젝트가 전 세계 어느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지와 그 진행 정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와 표시된 곳을 누르면 상세 보고서로 연결되는 등 유용한 요약정보가 담겨있었다. 게다가, 단어 빈도 분석 및 단어를 분석해 프로젝트의 위험도를 측정하는 분석과 같은 추가 기능 또한 매우 유익해 보였다.


나는 바로 피터에게 전화해 IT부서에서 누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AI는 다른 팀에서 담당한다고 말하며, 내게 IT 내 다른 팀에서 일하는 자히브를 연결시켜 주었다. 세계은행은 전 세계의 축소판과 같아서, 무슨 일이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지 다 알 수 없고 특정 업무의 담당자를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세계은행 주주라 할 수 있는 회원국은 전 세계 189개국이고, 170여 개 국적의 1만 4천여 명의 직원이 140여 개국에 흩어져 있다. 본부가 있는 워싱턴 D.C.에서도 수천 명의 직원들이 여러 건물에서 일하고, 의사소통도 공식적으로는 영어를 사용하지만, 콩글리시, 칭글리시, 인도 영어, 아프리카 영어 등 제각기 다른 악센트로 말한다. 

은행에 다니기 시작한 후, 나는 가끔 사람과 언어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어디서, 언제, 어떻게 그런 분리가 시작되었을까? 정말 바벨탑에 대한 신의 벌이었을까? 그렇다면, 인류의 분열과 분쟁은 하나님의 뜻인가? 세계은행 본부의 아트리움이 내려다 보이는 2층 카페에 앉아 있으면, 디즈니랜드에서 'It's a Small World'를 타고 있는 느낌이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은 제각각의 언어를 구사하고 그들의 전통 옷을 입은 이들을 보기도 한다. 한국인은 전통 한복을 지극히 제한적으로 특정한 날만 입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거의 입지 않지만,  인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인, 또는 아프리카인들은 화려한 색상의 전통 의상을 일상적으로 입는다.


"자히브?" 나는 즉시 그에게 전화를 걸어 블로그에 올라온 사례에 대해 물었다. 전화 반대편에서 인도계 억양의 아주 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화를 걸기 전에 인트라넷에서 그의 사진을 먼저 봤는데, 그의 인상이 아주 강했다. 짙은 갈색의 곱슬머리에, 짙은 피부, 커다란 눈, 날카로운 코, 강한 턱선과 두터운 입술. 강한 인상에 비해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에 놀랐다.

"네, NLP 툴을 개발하는 팀이 있습니다. 재무부 직원과 현재 회의 일정이 잡혀 있는데요. 혹시 재무부서 내 퀀텀팀에서 일하는 치앙을 아시나요? 그녀도 비슷한 사례를 가지고 우리 팀에 접근해서 회의 일정을 잡았습니다. 치앙과 얘기하면 모두 함께 만날 수 있겠네요."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내 사무실과 같은 층의 반대 편에 있는 치앙에게 갔다. 치앙 역시 하루 일과를 일찍 시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던지라, 미팅 일정 없이 대화를 나누기에는 이른 아침이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그녀 자리에 다가갔을 때, 그녀는 비뚤어진 자세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른 아침인 지라, 네 개의 책상이 마주 보는 열린 칸막이 사무실에서 그녀는 혼자 일하고 있었다.

"굿모닝, 치앙, 잠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있나요?" 

나를 향해 돌아서며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그녀는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이 꽤 행복한 듯 반겼다.

"그럼, 어쩐 일이죠?"

나는 그녀에게 NLP 사례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내게 친절하게 설명했다. 

"네, 저희 팀원 중 일부는 신용 등급 모델링을 위해 자연어 툴키트 (Natural Language Toolkit: NLTK)와 파이톤 (Python)을 사용하여 기계 학습 (Machine Learning)을 탐구해 왔어요. 세계은행 IT부서 내에 AI 팀이 생겼다고 듣고는, 우리는 그들과 협력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재무부의 다른 부서에 있는 몇 명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치앙은 재무부 내 포트폴리오 위험 및 실적 평가를 하는 계량분석 팀에서 세계은행 직원의 연금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연금팀과 채권을 발행하고 부채를 관리하는 자금팀과 일해왔는데, 그들과 함께 NLP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를 파악했다. 뉴스, 연구 또는 시장 보고서와 같은 자료를 읽고, 텍스트를 추출하고, 정보를 데이터베이스 형식으로 저장하여 추가 분석을 수행하는 것이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었는데, 이들의 요구는 본질적으로 내가 필요로 하는 것과 같았다. 일 년이 넘도록 매일 몇 시간씩 블록체인과 핀테크에 관한 뉴스와 보고서를 읽고, 정보를 걸러내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분석을 하고, 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해온 터였다. 

"당신이 재무부서 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 일을 추진해 온 것을 알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저도 비슷한 필요를 느껴 AI팀 자히브에게 연락했더니 당신과 회의가 잡혀있다고 언급했어요. 재무부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내 말에, 치앙은 흔쾌히 함께 만나서 논의하자며 회의 일정을 알려주었다.


몇 주 후에 재무부 직원 몇 명과 자히브와 그들의 매니저인 스텔라를 포함한 IT부서 AI 팀원 몇 명이 재무부 회의실에 모였다. 재무부 건물은 세계은행 본관에서 일곱 블록 떨어져 있고, IT 직원 대다수가 본관과 재무부 건물 사이에 있는 다른 건물에 배치되어 있었다. 

스텔라가 먼저 AI 팀을 소개했다. 

"지난해 블록체인 랩을 출범한 이후 올해 초 AI 랩을 추가해 합쳐서 '이노베이션 랩'으로 결합했습니다. 자히브가 AI 팀을 이끌고 있는데, 먼저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움을 받아 글로벌 프랙티스(Global Practice: GP) 재무 관리 팀을 위해 개발한 시제품을 발표하고 난 후, 재무부의 요구에 대해 논의하도록 하지요."

세계은행의 인사체계와 조직도는 지난 수십 년간 여러 번 바뀌어왔다. GP라고 부르는 현재의 구조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은행을 이끌었던 김 용 총재의 주도로 지리적 영역을 기반으로 한 기존 구조의 중복된 업무를 없애기 위해 도입되었다. 많은 진통을 겪으며 도입된 이 변화 후, 세계은행은 14개 영역*과 5개 교차 솔루션(Cross-Cutting Solutions) 영역**을 포함하는 GP 외에 재무, IT, 예산 및 회계와 같은, 세계은행 전체를 지원하는 부서로 구성되어 있다. GP는 ‘인-네트워크 (In-Network’)로 회원국들과 직접 거래하는 은행의 주요 업무로 간주되고, '아웃-오브-네트워크 (Out-of-Network)'으로 불리는 지원 부서들은 배후에서 GP 업무를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GP에 세계은행 내 권력 및 자원이 우선적으로 부여되어왔다.

자히브가 발표한 플랫폼은 꽤 인상적이었다. GP 재무 관리 팀은 매년 4천 건 이상의 방대한 양의 감사 보고서를 받아서 처리해 왔다. 이들은 보통 단기 컨설턴트를 고용하여 문서를 검토하고 프로젝트 평가 및 다음 단계의 의사결정을 위해 관련 정보를 추출했는데, 이러한 수동 프로세스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었다. AI와 NLP를 통해 대량의 문서를 자동으로 요약하고 핵심 정보를 추출할 뿐 아니라, 위험 영역 분석, 지리를 나타내는 지도, 패턴 인식, Q&A용 챗봇 등 부가 가치도 더해 회의에 참석한 재무부 직원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자히브는 또한 머신러닝(ML)이 프로세스에 대한 교육 및 모델 구축에 도움을 주었고 프로세스를 개선하기 위한 피드백 루프를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감탄을 금치 못하며 우리의 유사한 필요성을 언급하자, 스텔라가 말했다

"재무부 내 여러 팀에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케이스를 저희 업무에 추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재무부와 랩 사이에 코디네이터로 한 사람을 지정하여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윤정이 그동안 저희와 함께 블록체인의 여러 사례를 진행해 온 만큼 이 AI 코디네이터도 윤정이 맡았으면 합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옆에 앉은 치앙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미 재무부 내 다른 부서 사람들과 머신러닝 사례를 의논해 왔고 계량 수학자로 그녀가 나보다 더 나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재무부 직원이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동안 스텔라와 그녀의 팀은 떠나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스텔라가 재빨리 일어나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본관에서 열리는 다른 회의에 서둘러 가야 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우리의 회의록을 공유하고 추후에 다음 논의를 위에 회의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녀를 따라가며 말했다. 

"스텔라, 당신이 머무를 시간이 없으니 잠시 당신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저를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AI 일에는 계량분석 팀 직원이 더 많이 참여하고 있고 치앙이 머신러닝을 더 많이 연구해 온 데다 기술적으로도 계량 수학자라 저보다 더 낫습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후, 허리를 굽혀 내게 속삭였다. 그녀는 동유럽 몰도바의 중앙은행 출신이었는데 키가 180센티미터도 넘어 나는 그녀를 올려다봐야 했다. 

"윤정, 시간이 없어서 간단히, 솔직하게 말할게요. 난 치앙과 함께 일할 수가 없어요. 그녀는 지난 몇 달 동안 이 케이스로 우리와 함께 일해 왔는데, 난 그녀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한 시간 동안 회의를 하면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을 반복하기만 하고, 우리는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어요. 윤정을 곤란하게 해서 미안한데, 하지만 재무부와 우리 모두에게 올바른 결정이기에 재무부에선 나서는 이가 없는 듯해서 제가 나섰어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녀는 안으로 들어서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닫힌 문을 바라보며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미운 오리 새끼가 되어 홀로 남겨진 듯 나는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서성이고 있었다.


* (1) 농업, (2) 교육, (3) 에너지, (4) 환경 및 천연자원, (4) 금융 및 시장, (6) 거버넌스, (7) 보건, 영양 및 인구, (8) 거시경제학 및 재정 관리, (9) 빈곤, (10) 사회, 도시, 농촌 및 Resilience (11) 사회보호 및 노동, (12) 무역 및 경쟁력, (13) 정보통신 기술(ICT) & (14) 수자원


**  (1) 기후 변화, (2) 취약, 분쟁 및 폭력, (3) 성 불평등, (4) 지속 가능한 일자리 & (5) 민관 협력(Public-Private Partnership: P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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