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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4. 2021

14. 국민이 중앙은행을 신뢰하지 않아요!

디지털 기술로 진행 중인 4차 산업 혁명은 기술을 가진 선진국들의 독점을 가속화하며 부의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며 정보통신 및 기존 산업의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은 더욱더 뒤처지게 될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가 있었다. 기술의 공급이 선진국에서 제공해야만 이루어질 거라는 선진국의 오만함이 빗어낸 오판이든지, 혹은 투명성을 지닌 이 신기술의 보급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부정적인 시각을 키우기 위함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불신과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들, 그 수요가 가장 큰 그런 곳에 기술의 공급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그들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엔 항상 선한 의지를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이 선한 이가 다섯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 그 다섯이 없어 결국 멸망하긴 했지만, 역사상 대부분의 경우 그런 선한 이들이 있어 인류가 이제까지 생존해 온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탈출시킨 이들처럼. 민중을 위한 공공기관이 권력을 쥔 자들의 배만 불린다는 의심과 끊임없이 드러나는 부정부패가 일상인 곳에서 살아가는 경우, 많은 이들이 그러한 부패한 삶에 물들어 살지만, 그렇기에 선한 몇몇은 더욱 절실히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쓴다. 그리고 그런 노고가 새로운 길을 만든다.


1988년에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클리트가드(Robert Klitgaard)는 부패를 조장하는 요소들을 “부패 공식(corruption formula)”으로 C = M + D – A (부패 Corruption = 독점 monopoly + 재량 discretion - 책임 accountability)으로 요약한 바 있다. 즉, 부패는 경쟁이 없는 곳에서 권력을 쥔 이가 재량껏 선택할 수 있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곳에서 번식한다는 것이다. 많은 선한 이들이 부패의 문제에 맞서 이러한 요소들을 줄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는데, 예를 들면 세계은행에 근무했던 이들이 뜻을 모아 1993년에 독일에서 국제투명성기구(TI:Transparency International)를 세워 각국의 부패지수를 발표하고 여러 국제기관과 연계해 각 사회에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투명성과 책임, 청렴을 증진하고자 애쓰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투명성을 증진하여 부패에 맞서 싸우는데 기여해오고 있다. 1989년에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W3)을 창시해 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팀 버너스리 경(Sir Tim Berners-Lee)은 2009년 웹 파운데이션을 세우고 공공의 선과 기본권을 위해 오픈 웹을 추진하며 오픈 데이터 바로미터(Open Data Barometer: ODB)를 통해 각 국의 정부가 책임, 혁신 및 사회적 영향을 위해 얼마나 데이터를 게시하고 어떻게 그 데이터를 사용하는가를 측정해 발표한다. ODB의 그러한 노력은 정부의 오픈데이터 도입을 돕기 위해 원칙과 좋은 사례를 마련한 오픈 데이터 차터(Open Data Charter: ODC)로 이어져 2013년 G8 국가의 서명 이후 2015년 UN총회에서 채택되어 국제 ODC가 되었다.

2015년 멕시코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국제 ODC가 창립된 후, 멕시코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열린 정부 구현에 애써왔다. 2017년에 공공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블록체인 콘테스트 Blockchain HACKMX를 개최해 한 대학 팀에서 개발한 공공 구매를 위한 공개입찰제에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한 블록체인을 도입한 사례를 채택했다. 각국마다 정부의 역할이 커지고 정부 예산의 상당 부분이 공공 구매에 쓰이는데, 부패로 인해 새어나가는 돈이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것을 감안할 때 정말 적절한 사례인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자료로 OECD 국가들의 정부 일반 경비가 총 4조2천억 유로에 달하고, 그중 ⅓ 정도가 공공구매에 쓰인다. 공공건설비용의 10-30%가 부패로 새어나가는 것으로 추정한다.


부패지수가 남미에 결코 뒤지지 않는 동유럽에서도 디지털 기술 도입을 통해 부패와 싸우고 국민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이 일찍부터 있어왔다. 2018년 3월에 IMF가 “디지털 십자군(Digital Crusaders)”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우크라이나의  “프로조로.판매(ProZorro.Sale)” 사례가 실렸다. 낮에는 펀드매니저였고 밤에는 민주화 운동가였던 올레크시 소보레브(Oleksii Sobolev)가 민주화 운동가들과 국제투명성기구, 또한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로저 마이어슨(Roger Bruce Myerson)과 협력해 탄생시킨 프로조로.판매는 활용되지 않는 공적자산을 경매해 파는 프로그램이다. 그 이름이 상징하듯, 검은색 망토에 가면을 쓰고 독재자와 악당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던 ‘조로(Zorro)’처럼 부패에 맞서 싸우고 국가 및 공유 자산을 투명하고 빠르고 효과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2016년에 시작되었다. 

오픈 데이터 기술을 도입해 은행 부실 채권에서 고철에 이르는 공공 자산의 악명 높은 불투명한 판매에 투명성을 제공하는 전자 경매 시스템을 만들어, 시행 후 첫 13개월 동안 이 시스템이 2억 1천만 달러를 처리했다. 이는 그전 5년 동안 기존의 민영화 판매로 모은 금액과 거의 맞먹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이런 성공적인 도입이 이루어진 것은 극도에 달한 부패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축출돼 결국 망명 길에 오르고, 한편으론 IT에 유능한 인재들이 많은 것이 결합된 산물이다. 


내가 중앙은행 외화자금관리 시스템의 회계부문을 맡아 일한 PAT2 프로젝트의 경우, 컴퓨터 코딩은 외주를 주었는데 그때 선택된 회사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있어 2011년 두 차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함께 일했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키예프 외곽에 인공호수, 골프장, 동물원 등을 갖춘 거대한 저택을 짓고 부정축재에 몰입한 데다, 2013년 11월에 유럽연합 NATO와 인연을 끊고 러시아와의 경제의존을 천명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유로마이단 시민혁명으로 2014년 2월 야누코비치를 추방한 후 유럽연합을 지지하는 세력이 다시 부상했다.

그때 민주화운동을 하던 소볼레프는 국유 기업 구조 조정을 돕는 무급 자문 직책을 맡았고, 펀드매니저 일을 포기하고 동유럽 국가를 계속 괴롭히고 있는 뿌리 깊은 문제인 부패와 싸우는 데 자신의 비즈니스 기술을 투입했다. 프로조로.판매가 처음 시행되던 2016년, 우크라이나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에서 176개국 중 131위를 기록했다. 프로조로.판매의 성공적인 도입과 풍부한 인재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는 적극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공공 분야에 도입할 것을 모색해, 2017년 말에는 십여 명의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세계은행 블록체인 랩을 방문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경제를 투명화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와 실행 가능성 등을 논의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국회의원, 중앙은행 테크놀로지 관련 이사, 학계, 사회단체 등등 사회 전반을 대표할 수 있는 구성원이 단체로 방문해 회의장에 모였다. 세계은행 블록체인 랩은 실질적인 블록체인 도입에 가장 앞서가고 있던 재무부서와 각국의 정부 기관을 직접 상대하는 GP의 우크라이나 담당 부서를 회의에 초대했다. 우크라이나 방문단을 대표해 국회의원이 말했다. 다른 방문객도 그러했지만, 국회의원은 번듯한 양복을 차려입지 않고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면 학생으로 볼 수도 있는, 상당히 젊은 남자였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은행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거의 100% 현금 경제죠. 시중 은행뿐 아니라, 말하기 창피한 얘기지만 중앙은행은 더욱 믿지 않습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크고 중앙은행을 부패한 정권의 꼭두각시로 보기 때문이죠. 비자나 마스터와 같은 국제 금융사의 수수료가 높아서 상인들은 카드 도입도 하지 않습니다. 현금 경제이다 보니 탈세, 부정, 지하 경제 등등의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통해 기존 금융기관의 수수료, 접근 가능성 등의 문제없이 디지털 경제로 가는 길을 모색 중에 있습니다.” 


그 회의 후 몇 달이 지나, GP의 우크라이나 담당 부서의 마크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파일럿 시험을 하는데 참여할 수 있겠느냐며. 블록체인 랩, 마크, 그리고 내가 만나 어떻게 일을 진행할 것인지 의논했다. 회의를 소집한 마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중앙은행과 세계은행 내 랩과 재무부서를 연계하는 역할을 맡고 랩에서는 그들이 개발한 시스템의 기술적 검토와 평가를 맡아주시고 금융 앱을 많이 다루는 재무부에서 사용자 테스트를 한 후 피드백을 주는 정도의 업무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랩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레이가 말했다. “제가 랩에서는 코디네이터 역을 할 수 있고, 사용자 테스트는 IT부서에서 재무부서를 지원하는 피터와 재무부의 윤정이 맡으면 될 것 같네요. 기술적 검토는 IT부서 내 시스템 전문가를 따로 지정하겠습니다.”

피터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한 번도 이렇게 크로스 유닛으로 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일을 하면 제가 쓴 시간을 할당된 내부 코드에 적어 넣어야 하는데, 이 일의 코드는 어디서 받나요?”

“좋은 지적이네요. 저도 제게 주어진 코드 외에 이 일을 하려면 코드가 필요해요.” 나도 피터를 거들었다. 지구가 하나의 행성이지만 그 안의 많은 나라가 한정된 자원 혹은 권력을 두고 서로 다투는 것처럼, 세계은행은 한 기관이지만 그 안의 많은 부서들이 분리된 예산과 자원을 두고 다투었다. 마크가 답했다. “제가 우크라이나 담당이고 제게 그 예산과 코드가 있으니 일이 시작되면 코드를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우리는 e-hryvnia (UAH)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고, 2018년 6월 11일 우크라이나 중앙은행 팀과 화상회의를 가졌다. 중앙은행 팀장은 강한 동유럽 악센트로 굉장히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저희가 내부적으로 구상한 것은 아니고, 이 기술을 가진 우크라이나 회사에서 저희에게 기술을 제공할 테니 디지털 화폐를 시도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서 시작됐습니다. 4월에 계회 안을 마련했는데,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고 시중은행이 상인과 일반인에게 공급해 개인 간 일대일 송금, 물품 구매, 은행 거래 등 모든 거래를 아주 적은 비용으로 거의 실시간으로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이 파일럿 테스트를 통해서 기술적 검증뿐 아니라 법적 틀과 거시경제적 효과, 새로운 금융과 비즈니스 인프라 등을 검토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두세 달 내로 테스트를 마치고 올해 안에 검토보고서를 마칠 예정입니다.”

중앙은행과의 첫 화상회의 후 몇 주가 지나 중앙은행 기술팀에서 그들이 제공하는 디지털 화폐 지갑이 준비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메일에 포함된 웹사이트에서 계좌를 연 후 연락을 하면 중앙은행 담당자가 우리의 테스트를 위해 소액의 eUAH를 입금해 줄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이른 아침, 피터에게서 전화가 왔다. 

“윤정, eUAH 월릿(wallet)에 계좌 열었어요?” 아직 못했다는 나의 대답에 피터는 흔쾌히 말했다. “지금 시간 괜찮으면 제가 갈게요. 계좌 열고 바로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에 같이 연락해요. 그래야 P2P 송금 테스트를 해 보죠.” 

우리가 근무하는 워싱턴 D.C.와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이 있는 키예프는 일곱 시간의 시차가 있어, 이른 아침에 서둘러 연락하지 않으면 다음날까지 기다려야 했다. 피터는 자신의 랩탑을 들고 왔고, 우리는 내 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 작은 회의실에 들어섰다. 전면이 유리로 된 사각형 빌딩의 동쪽 코너에 위치한 그 회의실엔 오렌지빛 아침 햇살로 가득 차 있었다. 검은색 블라인드를 내린 후,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빛을 받아 반짝이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마주 앉았다. 피터와 나는 그들이 보내준 웹 주소를 입력해 전자지갑을 확인하며 말했다.

“어, 사용자 이름과 패스워드, 전화번호만 넣으면 계좌를 열 수 있네. 아무런 신분 확인을 안 하는데?! 전화번호만 있으면 누구나 계좌를 열 수 있는 거네!” 그들의 전자지갑은 초기의 코인베이스, 바이낸스 등도 그랬듯이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 없이 누구나 로그인 아이디를 받을 수 있게 디자인돼 있었다. 

“어, 정말 그렇네요. 러시아 마피아들이 여러 대포폰을 가지고 가명으로 여러 계좌를 열어서 자금 세탁하기 그만이겠는데요!” 피터도 덧붙였다. 지하 경제가 활성화된 나라에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영화 속 이야기가 상상이 아닌 현실인 터였다.

나는 테스트 검토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하며 피터에게 말했다. “나중에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에 보고할 수 있도록 우리 공용 폴더에 이 테스트 코멘트 파일을 저장할 테니 피터도 문제점이나 개선사항을 찾으면 이 한 문서에 저장하도록 해요. 내가 지금 막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것을 지적한 것을 넣었어요. 이제 다음 테스트를 하려면, 우크라이나 직원에게 함께 전화해서 우크라이나 전자돈을 받아야죠?” 

우크라이나 직원은 마치 우리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자마자 답을 했다. 전화기를 들고 있는 동안 100 UAH가 내 계좌에 나타났다. 미화로 4달러가 조금 안 되는 돈이었다. 돈이라는 게 장부에 적힌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은색 빛으로 출렁이는 한여름 아침 햇살이 속삭이는 듯했다. 

“제가 먼저 송금을 할게요. 그리고 윤정이 받은 돈을 제게 다시 송금하는 것으로 P2P테스트를 시작하죠.” 

피터가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본 채로 내게 말했다. “어, 수신자 이메일을 입력하고 금액을 넣은 후 송금 버튼을 누르니까 검토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송금이 나가네요!” 피터는 내게 송금하며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0.98 eUAH가 내 계좌에 더해졌다. 

“송금이 와도 금액이 더해질 뿐, 송금을 받은 것을 따로 고지해 주지는 않네요. 그래도 속도는 엄청 빠르네요. 사용자가 거의 없고 거래량이 적어서 그런가... ” 

나는 피터에게 대꾸하며, 다시 테스트 검토문서에 코멘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테스트를 시작했다. PAT2 외화자산 회계 모듈을 개발할 때처럼, 우크라이나에서 개발한 시스템을 나는 테스트를 하고 문제가 있는 것을 지적해 시스템 개발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문서에 요약, 설명해 주어야 했다. 나는 또다시 이름없는 병사가 되어 전진해나가고 있는 듯했다. 이것이 헛된 발걸음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PAT2를 개발할 때도 끊임없는 테스트와 결함을 지적해 수정하며 완성해가는 과정이 참 길고도 험난했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건 참으로 드러나지 않는 많은 이의 노고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듣고 보았던 아마리우스의 말과 환한 웃음을 기억하며 이또한 완성된 후엔 누군가의 고된 삶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으리라 꿈꾸며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했다.

월말이 되어 한달간 일한 시간을 각 업무별로 나누어 IO코드에 입력할 때가 되어 나는 마크에게 또다시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에 할당된 코드를 물었다. 하지만, 마크가 보내준 코드에 나의 시간을 입력하니 시스템 에러 메시지가 나왔다. 직원들의 타임시트를 담당하는 인사부서에 문의하니, 아웃-오브-네트워크 부서인 재무부 직원은 인-네트워크에 지정된 코드를 사용할 수 없다 했다. 이곳은 누구를 위한 은행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각자, 각 곳의 권력 다툼에 분열된 나라에 가서는 함께 일해야 함을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은 분열된 세계은행을 바라보며, 이곳에 대한 나의 신뢰는 무너져내렸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도끼는 그저 물리적 피해를 입히지만, 파괴된 믿음은 영혼에 상처를 남긴다. 중앙은행을 신뢰할 수 없다고 탄식한 우크라이나 사람들 마음이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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