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윤정 Oct 24. 2021

15. '만종'의 농부처럼

한국에서 자라며 어린 시절 가장 눈에 익은 서양화 작품이 있다면 밀레의 ‘만종'이다. 저물어가는 노을빛을 배경으로 저 멀리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드넓은 들판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손을 모으고 고개 숙여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 어린 시절 엄마와 들르던 빵집이나 이웃집 액자에 걸려있곤 했다. 농업이 주산업이었던 한국인의 정서에 그 풍경과 함께 전해지는 익숙한 삶의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밀레라 불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화가 박수근(1914-1965)도 어린 시절 밀레의 ‘만종'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렇게 농촌의 풍경에 정서가 묻혀있는 한국인이지만, 나는 농사꾼만이 안다는 희열, 수확의 기쁨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자신이 씨를 뿌려 땀 흘린 노동의 대가로 얻은 수확을 거두는 기쁨.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산업화된 도시에서 나고 자라 큐비클에 갇힌 사회생활을 해온 터였다. 그래도 한국에서 작은, 급속한 성장을 하던 신생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며 새로운 사업,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개척해 나갈 때는 농사꾼의 기쁨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농사꾼이 씨를 골라 뿌리는 것과 같은 자율성이 있었고 햇살을 받아 쑥쑥 자라는 작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급속도로 성장해가는 사업을 보며 함께 일하는 이들과 기쁨을 나누곤 했다.

하지만, 말도 문화도 낯선 미국에서, 세계은행이라는 코끼리처럼 거대한 조직 속에서, 그것도 머리와 같은 지도부나 몸통과 같은 핵심으로 간주되는 GP도 아닌 머리와 몸통을 떠받치는 다리의 발톱과 같은 존재로 일한다는 것은 그런 희열을 느끼기 매우 힘든 조건이다. 그래도 다행히 PAT2 회계시스템을 개발하는 업무를 맡은 동안은 내가 그 기능을 디자인해 테스트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희열이 있었다. 하지만, 도미니카 공화국과 같은 몇 국가의 성공적인 시행 이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그 업무가 흔들리기 시작해, 나는 중년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다니엘 H 핑크 (Daniel H. Pink)는 그의 책 <언제 (When)>에서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때’에 대해 말했다: “직업이 도전과 자율성을 제공하지 않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이직을 고려하십시오.” 블록체인을 만나 그 투명성을 기반으로 책임과 공정함이 보장되는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꿈이 없었다면, 나는 좀 더 일찍 세계은행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2017년부터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해온 몇 가지들이 점차 구체화되고 일 년 여만에 하나둘씩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추진했던 해외송금의 경우는 비트코인, 이더 혹은 XRP와 같은 암호화폐를 보유하지 않고 송금을 위해 중간 매개체로만 이용할지라도 세계은행이 이를 이용한다는 것만으로도 국제 정치와 금융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한 법률팀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반 채권 발행의 경우는 브라이언이 이끄는 채권 발행 운영부서에서 블록체인 랩과 호주의 커먼웰스은행, 마이크로스프트 등 외부 파트너들과 연계하여 착실히 진행해 나갔다. 2018년 8월 23일, “세계은행이 호주 달러 1억 1천만에 달하는 첫 글로벌 블록체인 채권을 발행하다"는 제목으로 공식적인 발표가 나갔다. 이 채권의 이름은 Bond-i(반다이)로 붙여졌는데, 이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제공하고 호주 채권 발행에 중추적 역할을 한 CBA에서 호주의 가장 유명한 바닷가 이름인 Bondi에 Blockchain Operated New Debt Instrument (블록체인으로 운영되는 새로운 채권)이라는 의미를 더한 것이다.

Bond-i에 앞서 몇몇 실험적 블록체인 기반 채권 발행이 있었지만, 법적 효력을 지닌 첫 글로벌 채권 발행이라는 상징성을 넘어 성공적으로 자산의 토큰화를 실현하여 토큰 경제를 향한 이정표를 남겼다는 점에 나는 더 의미를 두고 싶다. 자산의 토큰화는 비트코인이나 ICO를 통한 네이티브 토큰(Native tokens)뿐 아니라 기존의 실물자산을 디지털 토큰화할 수 있다. 이는 자산의 가치와 소유를 투명화할 뿐 아니라 법적 등기 및 기타 계약의 이행 등을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해 효율화하고 거래 비용을 낮추고 유동성을 증대시키는 등 많은 혜택을 가져올 수 있다.

돌이켜보면, 1947년 첫 채권 발행부터 암묵적으로 지켜진 세계은행의 월가를 통한 채권 발행 관행을 파괴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채권 발행을 글로벌 시장에 선례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빈곤과 세계가 직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새로운 기술 도입하고자 한 김 용 총재 재임 기간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2019년에 1월에 김 용 총재의 사임 이후, 당시 미 대통령 트럼프의 선출로 부임한 데이비드 말파스 (David Malpass)는 총재직에 오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은행의 예산 삭감을 위해 기본적인 기능 외 부가적인 기능은 재검토할 것이라 했다. 명목은 비용 절감이었지만 ‘미국 우선주의, 미국의 이익만을 고려한다'는 정책의 실행자로 부임한 그*였다. 1993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로 월가의 베어스턴(Bear Stearns)이 망할 때까지 베어스턴의 수석 경제학자로 일했던 그는 아마도 월가의 힘, 즉 미국의 이익을 약화시키는 결정을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자산 운용 시장의 생태계 변화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컨소시엄을 구축하거나 혹은 적절한 컨소시엄에 참가하고자 하던 나의 노력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 파생상품 거래소에서 선물시장에 블록체인을 도입하고자 하는 파일럿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2018년 초부터 프로젝트를 처음 알고 접촉을 시도했지만, 내부적으로 의사결정을 거치는데 수개월이 걸리고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거래소가 요구하는 기밀유지 협약(non-disclosure agreement:NDA)을 체결하기 위한 법률팀의 검토와 서명까지 또다시 수개월이 걸려 2018년 말이 다 돼서야 계약을 체결하고 2019년 초부터 실질적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한국과의 일도 열리게 되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블록체인을 적극적으로 테스트하고 있는 중앙은행과 한국은행을 연계시켜 함께 일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폐쇄적이고 무관심해 보이던 한국에서 조금이나마 문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었다. 2018년 8월, 듀크에서 석사과정을 일 년 마치고 세계은행에서 여름 인턴으로 일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대학 후배와 IT부서에서 일하는 대학 후배 JY와 함께 점심식사를 할 때였다. JY는 그동안 나와 함께 몇 차례 한국은행과 협력을 모색해온 터라, 반갑게 말을 꺼냈다. 

“그동안 선배님이 애써 오시던 거, 결국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한국 금융위와 한국은행 등 금융 관련 전반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김 국장이, 그동안 그렇게 모임에 불러도 한 번도 안 나오던 그 양반이 결국 저한테 도움을 요청해 왔어요. 정부에서 파견 나올 때 2+1으로 나와서 의례히 그렇듯 당연히 3년을 머물거라 생각했는데, 2년이 끝나가니 한국 정부에서 이곳에서 실적도 없는데 들어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답니다. 그래서 이 양반이 부랴부랴 저한테 전에 제안하던 그 건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달라고 해서 진행될 듯합니다.”

JY는 세계은행과 IMF의 한인 직원협회 회장으로 일해와서, 한국 정부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특히 김 용 총재 재임 기간 동안 한국인의 채용을 늘리기 위해 한국 정부와 함께 애쓰고 있었다. 수더분한 인상에 진한 경상도 악센트가 남아있는 JY의 그 말이 너무나 반가웠다. 

“정말?! 진짜 잘 됐네.” 반색하는 내게 JY는 이어 말했다.

“저희가 금융위에서 주관해서 핀테크 관련 워크숍을 주최하는 것을 기획하는 것을 도와 달랍니다. 제가 조만간 김 국장하고 자리를 마련할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JY와 나는 김 국장을 만나 구체적인 논의를 한 후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난 일 년 가까이 한국과 핀테크 관련 협력을 모색해 왔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나 한국은행 핀테크 팀이나 무슨 연유인지 관심을 보이지 않아 왔는데, 2018년 가을에 들어서며 꽁지에 불이 타 내달리는 김 국장에 붙들려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2018년이 가기 전에 행사를 치르려 바쁘게 준비했지만, 미국에서 일하는 세계은행 본사의 경우 추수감사절이 있는 11월 말부터 12월은 연말 휴가 시즌에 들어가는 때인지라 결국 금융위가 주관하는 행사는 2019년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 세계은행의 한국사무소와도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한국사무소에서 금융규제 등 금융위와 일해온 직원이 내게 2018년 12월 초 한국에서 열리는 인공지능 콘퍼런스를 연계해주어 한 세션을 맡아 초빙받아가게 되었다. 세계은행에서 AI 기술을 도입해 적용한 사례들을 나누기 위해 서울 드래건 시티에 도착했다. 콘퍼런스가 서울 드래건 시티 내 컨벤션센터에서 열려서 그곳과 연결된 노보텔 호텔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곳에 도착하고 보니 1994년부터 2년간 출퇴근하던 신용산 지하철역에 가까운 곳이었다. 삼일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 연수를 받던 기간이었다. 

미국으로 떠나온 후 한국을 여러 번 다녀오긴 했으나, 모두 가족 방문을 위한 개인적인 것이어서 짧은 시간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모자라 서울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었다. 20여 년이 지나 이곳에 다시 오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났다. 당시 삼일회계법인 빌딩이 우뚝 솟아 있고 빌딩 담장을 끼고 재래시장 골목 입구에 떡볶이에 어묵국, 김치전, 튀김 만두 등을 팔던 포장마차 분식집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근처의 고등어 무조림이 유난히 맛있었던 음식점 생각도 났다. 하지만, 대체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주변 풍경은 건물 앞 쪽 도로가엔 오래된 작은 가게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고 길 건너편 주변도 모두 낡고 초췌한 모습이었는데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삼일회계법인 맞은편 쪽으로 예전에 버스터미널이었던 지역을 재개발하여 큰 호텔 세 개와 컨벤션센터, 큰 쇼핑몰을 연결하여 서울 드래건 시티라 불리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에 보니, 예전에 용산 미군기지 골프장이었던 곳이 커다란 용산가족공원으로 조성되어 그 안에 커다란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서 있었다. 안타깝게도 공식적인 업무를 마치고 바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어서 공원과 박물관을 찾아갈 시간은 없어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2018년에 그렇게 시작된 한국에서 핀테크와 관련된 나의 지식을 나누는 연사로서의 경험은 2019년으로 이어졌다. 2018년 가을부터 기획했던 한국 금융위 주최 행사가  2019년 5월 ‘한국 핀테크 위크’라는 이름으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에서 열려 국제 연사로 초빙되어 갔다. 5월 중순이었지만 아침부터 햇살은 한여름 대낮 못지않게 강렬했는데, 거대한 유선의 DDP 빌딩의 행사장은 지하인데 내려가는 입구는 동선을 최대한 끌어내도록 디자인되었고 땡볕이 내리쬐는 거리엔 나무 한 그루, 흙 한 줌도 보이지 않아 콘크리트 사막을 걷는 듯했다. 나는 다행히도 지하로 내려가는 길로 가는 중에 건물 안 엘리베이터를 찾아 단거리로 행사장에 닿을 수 있었는데, 국제 연사 발표 시간에 내 뒤를 이어 발표할 싱가포르 연사는 발표 직전 헐레벌떡 들어와 내 옆에 앉더니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입구를 못 찾아서 한참을 헤매느라 늦었습니다.” 

‘해외 각국의 핀테크 도입 현황 및 협력 사례’라는 제목으로 그 행사에서 발표하는 것 외에도, 나는 한국 방문 기간 동안 이메일이나 화상으로만 소통을 해오던 많은 이들과 만남을 가졌다. 한국 정부가 블록체인 기반 ESG 채권을 발행할 수 있을지 싶어 세종시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기획재정부를 방문해 채권 발행 부서와 회의를 하고, 금융위와 한국은행을 방문해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고, 블록체인 혹은 인공지능 관련 몇 민간단체와 기업과도 회의를 가졌다. 

2019년엔 여러모로 한국과 많은 일을 함께 하게 되었다. 2019년부터 내가 한인직원협회 회장직을 맡게 된 후 한국의 IT기술을 세계은행의 여러 프로젝트에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IT기술의 활용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세계은행 내 한인 직원과 한국 정부에서 파견 나온 이사실의 비서관을 비롯해 여러 부처 직원이 정기적으로 모여 정보를 나누고 논의를 했다. 첫 모임에서부터 좋은 안건들이 제기되었다.

“세계은행 한국사무소는 정체성이 없이 성장을 못하고 동남아 작은 나라에 설립된 사무소보다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서  IT강국인 한국의 기술을 잘 연결해 그 정체성을 확립하면 사업 확장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 참석자가 입을 열자, 모두가 한 마디씩 더했는데 그중 JY가 말했다. “세계은행 연례 총회 때 ‘코리아 데이’나 ‘코리아 코너' 같은 특별 전시를 해서 한국의 IT기술이 세계은행의 여러 사업부서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면 어때요? 연례 회의 때는 인도네시아가 자국의 관광산업을 홍보했고 얼마 전 연말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비슷한 행사를 했잖아요?”

그렇게 해서 한국 사무실과 이사실, 그리고 세계은행 내 여러 한국 직원을 연계해 코리아 데이를 준비해 나갔다. 게다가, 한국에 가서 여러 곳을 방문하고 온 후로 이런저런 협력 가능성을 타진해 오기도 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은행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진행하고자 하는 의사를 비쳐왔다. ‘한국은행에서 매년 한 번씩 외부 인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하는데 올해는 주제를 전자금융시대에 맞추어 <분산원장기술 생태계와 전자금융의 미래>로 잡았습니다. 한 세션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11월에 공식 초청장을 받고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지난해에 인공지능 관련 발표를 할 때 한국말로 발표를 해달라고 하여, 내 모국어인 한국말인데 하고 강단에 올랐는데, 막상 영어로만 써오던 단어들을 한국말로 무어라 할지 몰라 당황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장소도 한국은행 내 어느 회의실에서 할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호암 아트홀이었다. 한 대학 교수가 사회를 보고, 내가 첫 강연을 하고, 암호화폐 지갑 및 블록체인 개발업체인 아톰릭스 랩의 한 이사의 발표가 이어진 후, 서울과학기술 대학교의 교수의 발표에 이어 마지막으로 질의응답 및 종합 토론으로 마치는 순서였다.

오후에 시작하여 반나절 동안 치러지는 이 행사를 위해, 나는 열네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날아갔다. 행사는 2019년 12월 18일, 크리스마스를 정확히 일주일 앞둔 때였다. 행사 다음 날, 겨울방학을 시작하는 아이들과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어 행사를 마치자마자 다음 날 아침 다시 태평양을 건너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한국은행에서 잡아 준 ‘더 플라자 호텔'에 들어서니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방에서 내다보니 서울 시청 앞 서울 광장에도 색색의 불빛이 반짝이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었다. 

행사 당일, 관람석이 가득 찼다. 나는 ‘분산원장기술 생태계의 발전 가능성'이란 제목으로 세계은행에서 진행 중인 사례들과 세계 각 국의 주목할 만한 중앙은행 혹은 공공분야의 사례를 나누었다. 행사를 마치고 내게 다가와 명함을 내밀며 질문을 한 대다수가 언론 매체에서 온 이들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행사를 준비해 온 한국은행 담당자들과 발표, 토론자 등 십여 명이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오늘 행사를 녹화하려 했는데, 행사장에 문제가 있어 녹화를 못 했습니다. 정말 좋은 강연이었는데 녹화를 못해 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과 나누지 못해 정말 유감입니다.” 행사를 준비해 오던 한국은행의 팀장이 말했다. 우리는 한 일식집의 기다란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성공적인 일정을 마친 것에 축배를 들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한국에선 암호화폐하면 무조건 사기성 ICO를 떠올리고 그래서 진척이 없습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아톰릭스 랩의 장 이사가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하여 말했다.

“그러게요. 분산원장기술과 블록체인은 코인 없이도 사회의 유익을 위해 많은 곳에 활용될 수 있는데, 한국에선 코인에 너무 집착해 있는 것 같아서 제 발표는 코인과 무관한 공공 분야의 사례들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제 세션 암호경제(Crypto-Economy)에서 말했듯이, 앞으로의 경제는 비트코인에서 구현되었듯이 보상체계를 갖춘 코인이 주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장 이사가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나는 앞에 앉은 한국은행 직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코인과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가 공존하리라 보는데, 하루빨리 한국은행이 추적 가능한 디지털 화폐를 발행해서 공공 기관의 구매 및 모든 공적 거래를 모든 시민이 감시할 수 있어서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를 이루길 간절히 바랍니다.” 나의 말에 모두 “맞아요!”를 외치며 건배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울의 불빛에 겨울 밤하늘은 영롱했다. 나는 '만종'의 농부처럼 두 손을 모으고 잠시 서있었다. 


        * 말파스 총재의 미국 우선주의는 최근의 행보에서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코비드-19 팬데믹이 계속되는 가운데 백신이 없어 많은 생명을 잃고 경제가 마비되어 고통받는 나라들을 대표해 남아공과 인도에서 백신의 지적 재산권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제안을 했으나, 말파스는 “혁신과 연구, 개발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https://www.brettonwoodsproject.org/2021/07/malpass-makes-world-bank-a-pariah-with-opposition-to-trips-waiver/     

작가의 이전글 14. 국민이 중앙은행을 신뢰하지 않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