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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Nov 16. 2021

도요새

십여 년 만에 아세티크 섬에 캠핑을 갔다. 아세티크 섬은 대서양을 따라 미국 델마바 반도 동부 연안에 위치한 메릴랜드주에 속한 섬이다. 청정 자연 생태계 보호구역으로 야생말과 사슴이 곳곳에 한가로이 돌아다니고 각종 야생화가 바닷바람에 춤을 추는 곳으로, 아이들이 어렸을 적 여름이면 가곤 했던 곳이다. 그곳에 가면 우렁찬 파도 소리로 부르는 시원한 바다뿐 아니라, 햇살에 반짝이는 잔잔한 물결이 유혹하는 만에서는 조개잡이도 할 수 있다. 배를 타고 나가 바다낚시도 할 수 있고, 예전에는 바닷가에 서서 낚시를 해도 운 좋으면 광어를 잡기도 했다. 그곳에 내륙에 갇힌 주, 콜로라도에 사는 친구네가 놀러 와 함께 가게 되었다.


그 친구나 나나 올해 막내인 둘째 아이를 대학으로 보내고 빈 둥지를 지키는 부부가 되어 자유로이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자 제일 먼저 함께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캠핑과 낚시를 좋아해 콜로라도에서 강 낚시를 종종 다니는 친구는 전부터 바다낚시를 가보고 싶다 했었다. 친구가 오기 전에 남편은 이곳 캠핑장을 예약하고 바다낚시를 전문으로 하는 낚싯배도 예약을 했다. 나는 멀미도 무섭고 낚시를 하기 위해 먹이를 달아야 하는데 만질 자신도 없고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친구네와 남편만 낚시를 나갔다. 홀로 남은 나는 바닷가로 나와 해변에 의자를 놓고 책을 한 권 들고 앉았다. 곧 나의 눈은 하얀 모래사장 위에 바삐 움직이는 것들을 쫓게 되었다.


자그마한 새가 몰려오는 파도를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흩어지는 바닷물이 남기는 모래사장에 기다란 부리를 박으며 무언가를 열심히도 찾는다. 곧 또다시 몰려오는 파도에 허둥지둥 뒷걸음질 치다 푸다닥 날개를 펴 하얀 모래사장으로 날아와 앉는다. 부리 끝에 자그만 게가 물려있다. 하얀 모래색의 반투명한 대서양 고스트 게 (Atlantic Ghost Crab)를 땅에 떨구고 그 도요새는 부지런히 뾰족한 부리로 쪼아댄다. 자신의 껍질로 제 생명을 지키려는 게의 노력은 허망히도 무너지고 도요새는 순식간에 속살을 쪼아 먹는다. 순식간에 귀신같이 사라져 숨는다고 이름 붙여진 고스트 게보다 더 빨리 움직여야만 자신의 배를 채울 수 있는 도요새.


저 작은 고스트 게를 얼마나 잡아먹어야 그 배를 채울까? 작은 도요새는 곧이어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모래사장 위를 어찌나 빠르게 걷는지 마치 두 발이 넷으로 보인다. 예전에 본 무술 영화 속의 도사가 발을 땅에 닿지 않고 움직이듯 그렇게 새의 발은 물을 쫓아, 또 물에 쫓겨 움직인다. 그런 도요새를 두고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 (Elizabeth Bishop)은 “세상은 안개고 섬세하고 광활하고 맑다. 파도는 더 높기도 낮기도 하나 그는 알 수가 없다. 그의 부리는 집중하고, 그는 몰두해 무언가를, 무언가를, 무언가를 찾고 있다. 집착하여 쫓고 있는 불쌍한 새!”라고 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저기 멀리 사다새 (Pelican)는 파란 하늘을 벗 삼아 출렁이는 물결 위로 유유히 흐르듯 날고 있다. 이따금 넓은 날개를 활짝 펴 높이 날아오르기도 하고 무슨 커다란 물고기를 잡으려 물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부리 밑에 축 늘어진 바구니를 달고 있어 많은 물고기를 저장할 수도 있는 사다새. 20세기 초 미국 시인 딕슨 라니에르 메리트 (Dixon Lanier Merritt)는 그의 5행 풍자 시에서 그런 사다새를 노래했다. “멋진 새는 사다새/ 그의 부리는 그의 배보다 더 많이 담을 수 있네/ 그의 부리에 담을 수 있지/ 일주일 동안 충분히 먹을 음식을/ 그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으면!”


저처럼 멋있게 나는 사다새와 달리, 도요새는 땅에 가까이 머무르며 살며 나는 모습도 어색하다 한다. 몰려오는 파도에 놀라 조금 날아오르는 것만 보아 어떻게 날아 어색하다는 표현이 붙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저토록 진흙에 부리를 쪼며 바닷물에 젖은 모래 위를 종종거리며 쉬지 않고 움직이는 도요새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려왔다. 그 작은 몸으로 부산이 움직이며 저보다 더 작은, 모래 속에 숨은 고스트 게나 소라를 잡아내어 부리로 쪼아대는 동작을 반복하는 도요새에 땀 흘리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 듯했다. 잠시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쉴 법도 한데, 도요새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끊임없이 움직인다.


쉴 새 없이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파도는 그저 무심하기만 하다.


미주 한국일보 2021년 10월 9일 자 주말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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