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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2. 2023

빨래 제대로 하기

내 생애 첫 빨래는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엄마가 새로 사준 빨간 쟈켓을 입고 한껏 멋을 내고 학교에 간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붓글씨를 좋아하는 분이셨다. 반 아이들 모두 방과 후 매일 한 식간씩 남아 먹을 갈고 붓글씨를 써야 했다. 먹을 갈기 전 난 행여나 먹물이 소매나 옷에 튈까 싶어 쟈켓을 벗어 의자 뒤에 걸어 두었다. 선생님은 항상 먹을 갈기 전 자세를 반듯이 하고 정신수양을 하듯 눈을 감고 생각을 모으라고 하셨다. 그리곤 먹을 직각으로 쥐고 정성스레 팔이 아프도록 갈아야 했다. 내 뒷자리엔 반에서 제일 키가 큰 두 남학생이 앉아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먹을 가는 대신 먹물이 든 통을 사 와서 선생님 몰래 먹물통에 붓다가 쏟는 바람에 내 빨간 쟈켓에 온통 먹물이 튀었다. 그날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 몰래 쟈켓을 손으로 빨았다.


“애 기저귀는 순면 기저귀를 쓰고 빨 때도 다른 세탁물 하고 같이 세탁기에 빨면 안 되고 손빨래를 해야 한다.” 첫아이를 낳기 전, 친정엄마는 장만한 기저귀를 가져다주며 당부하셨다. 백일잔치를 마치고 미국에 오는 짐을 쌀 때도 엄마는 그 기저귀를 챙겨주셨다. 한국에서 애를 낳아 미국에 오기까지 넉 달간은 집에 상주하며 애를 봐주시는 분이 기저귀까지 빨았으니 그 일이 고된 줄 미처 몰랐다. 미국에 와 처음엔 차도 없어 홀로 애와 집에 갇혀 지냈다. 미국에선 하기스와 같은 종이 기저귀를 쓴다는 것조차 모르고, 날마다 아이의 기저귀를 욕조에 쪼그리고 앉아 빨았다. 아이를 위한 것이었는지, 당부하며 챙겨주신 엄마 때문이었는지, 내 미련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족의 빨래를 책임지게 되었다. 미국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게 되며 나는 아이의 면기저귀를 포기했다. 그리고 빨래는 내게 마지못해 해야 할 엄마의 의무가 되어, 일주일에 한 번 드라이클리닝용 빨래를 제외한 후 모든 빨래를 세탁기 가득 넣고 돌렸다. 항상 시간이 부족했던 난 색깔별로 또 옷감별로 나누어 빨아야 한다는 친정엄마의 빨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도 무시했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세탁기도 없이 손빨래를 한 후 빨랫줄에 널어 햇볕에 말리고 말린 옷이나 이불감을 다듬이질해 주름을 폈다. 미국에선 세탁기를 돌린 후 젖은 빨래를 드라이기에 넣으면 빨래가 다 마른 후 “띵" 소리를 내며 알려준다. 너무나 편한 세상이 되었다고 엄마는 말하지만, 난 그렇게 마른빨래를 꺼내 차곡차곡 개어 옷장에 챙겨 넣는 것조차 제때 못하고 세탁방에 마른빨래가 쌓여 있곤 한다.


2021년 여름, 막내는 대학으로 떠날 준비를 하며 내게 빨래에 관한 질문을 늘어놓았다. 새로 살림을 차리는 새색시처럼 수건, 침대보 등등 여름내 가지고 떠날 것을 알뜰히도 챙기고, 떠나기 전 주말에 함께 코스트코에 갔을 때 세제를 모아둔 칸을 샅샅이 돌아보며 어느 세제를 사야 하냐며 물었다. 그때까진 그저 세일하는 세제를 사곤 했던 난, 기숙사에서 오가며 빨래를 할 아이를 생각하며 낱개 포장된 세제를 골라 주었다. 아이는 또한 빨래할 때 세탁기 설정하는 것도 알려달라고 했다. 그냥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되지, 뭐 빨래하는 법까지 배울 필요가 있냐? 순간 난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막내가 떠나기 전에 아이를 위해 환경 문제를 인식하며 빨래 제대로 하는 법을 찾아보았다. 검색을 하다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세탁기 빨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에 따르면  가구당 평균 세탁기를 한번 돌릴 때마다 41갤런 (155리터)의 물을 쓴다고 한다. 드라이기는 평균 가정의 전체 전기소모량의 6%를 차지하고. 제한된 수자원의 낭비나 에너지 소모로 탄소배출을 높여 환경을 파괴하는 것 외에 빨래 세탁은 심각한 수질오염의 원인이기도 하다. 세제의 독성뿐 아니라 한번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70만 개가 넘는 미세한 플라스틱 섬유가 합성 의류에서 배출되는데, 우연히 그것들을 섭취한 수중 동물들은 그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 


아이들 옷은 찬물에 빨면 때가 안 빠진다고 더운물에 빨라고 한 친정엄마의 조언도 무시하고 여러 옷감의 옷들과 모두 함께 빠느라 찬물 세탁을 해 왔었다. 내 바쁜 삶으로 인해 혹은 게으름으로 인해 선택한 찬물 세탁이 친환경 세탁법임을 알게 되어 그나마 위안이었다. 세탁기 전기 소모량의 90%가 물을 데우는 데 쓰인단다. 친환경 세제개발을 위해 애쓰는 Proctor & Gamble과 같은 회사들은 찬물에서도 때를 잘 뺄 수 있는 세제 기술을 개발해 찬물에 빨아도 찌든 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단다. 게다가, 피와 땀과 같은 단백질 얼룩은 찬물로 빨아야만 제거되고, 찬물 세탁은 옷감의 손상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대학으로 떠나는 아이를 위해 세탁기 빨래 방법을 요약했다. 가능한 한 빨래 횟수를 줄일 것 – 빨기 전에 한 번 더 입을 수 있는지 볼 것. 가능하면 합성섬유가 아닌 자연소재 옷을 선택하고, 친환경 세제를 사용할 것. 세탁기는 찬물 빨래로 설정해 돌릴 것. 빨래양이 적을 경우는 물의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물의 양을 조절할 것. 드라이기를 돌리지 않고 말릴 수 있는 것들은 가능한 한 자연적으로 말릴 것.


자연 건조를 언급하며 두 해 전 겨울 한국을 방문했을 때 건조대를 마루에 펴시고 빨래를 널던 엄마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잠자리에 누워 들었던 리드미컬하게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는 때때로 아직도 내게 자장가처럼 들려오곤 한다. “빨래란 무엇일까. 빨래란 오지 않은 날들을 향해 꾸는 꿈같은 것이 아닐까. 어제라는 시간이 묻히고 온 먼지와 얼룩을 지워내고 내일이란 시간을 향해 산뜻하게 나아가는 희망이며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게는 할 수 없는 수고”라고 김용미 수필가는 「빨래」에서 썼다. 친정엄마는 그 고된 수고를 가족들의 내일을 위해 사랑으로 감당해 내셨고 그 사랑은 내게 빨랫줄에 나란히 널려 햇살을 받으며 바람에 살랑이던 옷들과 다듬이질 소리의 추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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