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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Sep 08. 2020

무언가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호박 (2)

"네 장미를 그렇게 소중하게 만드는 건 네가 장미를 위해 쏟은 시간이야. (It is the time you have wasted for your rose that makes your rose so important.)" - 생텍쥐베리 <어린 왕자>


날마다 아침에 나가보면 호박잎과 꽃이 몇 개씩 사라지고 없었다. 다람쥐나, 토끼, 사슴이 와서 먹고 가는 듯했다. 특히 꽃은 남아나질 않았다. 분명 꽃이 맛이 있나 보다 싶어 찾아보니, 한 웹사이트에 사람도 먹을 수 있는 꽃 중에서 가장 좋은 다섯 꽃 중 두 번째로 호박꽃이 올라있다. 암꽃은 열매를 맺어 키워야 하니 수꽃을 골라 튀김옷을 입혀 튀겨 먹거나 버터에 살짝 볶아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히게 좋다고 한다. 활짝 핀 노란 호박꽃을 예쁘다고만 봤지 한 번도 식용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자연 외에는 생계의 수단이 없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새삼 신기해하고 있다. 수꽃을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호박꽃의 암수를 비교한 것을 찾아보니, 수꽃은 덩굴에서 곧바로 뻗어 나가고 암컷은 줄기 근처의 밑 부분에 작은 열매가 부어 있다. 당장 뒷마당에 나가 내 두 호박의 꽃을 살펴보았다. 짐승들이 먹어 치우지 못하도록 주변에 마늘 조각도 흩어놓고 자연 성분으로 만들어진 동물 구충제를 사다 뿌려놓았더니 다행히 꽃이 남아있다. 하지만, 모두가 수꽃이다. 암꽃이 없이 수꽃만 있으면 어떻게 열매를 맺나? 싱싱한 초록 잎과 샛노란 꽃을 보며 두 호박 덩굴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긴 하나 열매를 맺어 가을에 수확하는 기쁨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일이었다. 

1. 인터넷에서 수꽃과 암꽃을 비교한 사진을 찾았다. 2 & 3. 나의 두 호박덩굴에 달린 꽃봉오리들

수꽃만 피는 건 무슨 이유인지, 암꽃을 어떻게 피울 수 있는지 또다시 찾아보았다. 호박뿐 아니라, 오이, 수박 등 비슷한 꽃을 피우는 덩굴은 먼저 수꽃을 피운단다. 수꽃이 먼저 피어 꿀벌을 꽃가루 경로로 유도하기 위함이라니 이 또한 얼마나 신묘한 설계인가. 아직 어린 호박 덩굴이면 수꽃만 피어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적이라니 천만다행이다. 열매를 맺을 암꽃을 피우기 위해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충분한 영양분과 햇빛, 물이 잘 공급되어야 한다. 너무 더운 땡볕이 내리쬐거나 물과 영양이 부족해 호박 덩굴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니 사람과 별다르지 않다. 

암꽃을 피우는 일이 이처럼 시간이 걸리고 뿌리와 줄기의 충분한 영양을 요하는 것임을 날마다 호박의 꽃을 확인하며 배우고 있다. 암꽃이 핀 후, 수분(受粉)을 할 수 있는 단지 4~6시간 동안 벌이나 나비가 날아와 수꽃의 꽃가루를 암꽃에 전달해주지 않으면 암꽃은 힘없이 땅에 떨어지고 만단다. 그러니, 혹 벌과 나비가 수고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암꽃이 피면 붓을 들고나가 수꽃의 꽃술을 따다 암꽃에 대어 수분을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날마다 암꽃이 피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힘겹게 열매를 맺은 후에도 알맞은 햇빛과 물을 공급받으며 45~55일 동안 성장해야 그 생의 사명을 다할 수 있다.

내 호박 덩굴은 아직 수꽃만 피우는 단계이니 사람으로 치면 이제 십 대 말 정도 된 건가. 한 유튜버는 수꽃이 여덟 송이 정도 피면 암꽃이 하나 나오니 수꽃을 잘라내면 암꽃이 생기는 걸 앞당길 수 있다고 팁을 주었다. 당장 가위를 들고 뒷마당으로 나섰다. 꽃봉오리가 제법 크게 오른 수꽃과 어제 활짝 피었다 시든 수꽃을 잘라내었다. 튀김을 만들 생각에 데이릴리 꽃도 몇 송이 따왔다. 얼마 전, 데이릴리 꽃봉오리를 튀겨먹는 영상을 본 후 시도해보았는데 튀김이 정말 맛있었다.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그 맛은 이제까지 맛본 어떤 튀김에도 견줄 수 없었다. 이번엔 꽃송이 안에 집에서 키운 고추와 부추를 치즈와 섞어 넣은 새로운 튀김을 시도해 보았다.

바삭한 튀김을 한 입 물었다. 부추 향과 매콤한 고추, 부드러운 치즈 맛이 더해진 그 맛은 말로 다 형언할 수가 없다. 푸른 하늘과 바람결에 살랑이는 초록빛 나뭇잎을 바라보며 이 맛을 즐기자니, 아주 오래전 교과서에서 배운 상춘곡(賞春曲)이 떠오른다. 자연 속에서 한가로움 속 참다운 즐거움을 閑中眞味 (한중진미)라 노래한 시.  한가로움 속에 시간을 들여 이렇게 자세히 바라보기 전까진 암호박꽃 하나를 피우고, 호박을 추수하기까지 많은 자연의 섭리와 협력, 그리고 시간이 걸리는 일임을 미처 몰랐다. 

조지 오키프의 <Jimson Weed 1934>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너무나 바빠서 꽃을 볼 시간조차 없다. 아무도 꽃을 보지 않는다. 너무나 작아서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고 무언가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잡초라 불리는 꽃도 커다랗게 그려 그 아름다움을 인식시켜준 조지 오키프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정원에서 키워 먹을 수 있는 가장 좋은 5가지 꽃>

1. 금련화(金蓮花) 또는 한련(旱蓮)화 (Nasturtiums): 영어명은 '코를 막다 (nasus tortus)'라는 뜻으로 꽃에서 후추와 같은 매운 향이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명은 잎이 연꽃잎을 닮아 '땅에서 자라는 연꽃'이란 뜻으로 한련화 혹은 황금색 꽃이 아름다워 금련화라 한단다.

2. 호박꽃

3. 제비꽃 (Violets)

4. 보리지 (Borage)

5. 금송화 (Calend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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