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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8. 2020

낮의 새와 밤의 별

“별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숲 속 나무처럼 살아서 숨 쉬고 있다. 그리고 나를 지켜본다. 

(Not just beautiful, though—the stars are like the trees in the forest, alive and breathing. And they’re watching me.)” - 무라카미 하루키 


살아가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해가 있다. 돌이켜보면 2020년에 내겐 기이한 일이 많았다. 반백 년을 산 나이에 자연에서 신기한 일을 겪는다는 것이 내가 얼마나 자연과 동떨어져 살았나 반성을 하게도 된다. 3월 중순부터 코로나바이러스로 재택근무가 시작되어 날마다 온종일 집에서 보내기 시작한 후였다. 5월 들어 현관문 앞에 달아놓은 장식용 화환 위에 어느 새가 집을 짓고 알을 낳았다. 집 뒤 나무 위나 덱 밑에 새 집을 지은 것은 보았어도 매일 드나드는 현관문 위에 장식된 작은 화환 위에 제 살 곳을 짓다니 정말 멍청한 새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어미 새는 저만치 날아가서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무슨 새인지 알 수도 없었다.

새알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여주니 아메리칸 로빈 (American Robin) 새알 같다고 했다. 이상하게 알에서 부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미 새와 새끼 새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 후부터 날아다니는 새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어려서부터 새를 무서워해서 길에 비둘기만 있어도 피해 다니고 초등학교 가는 길엔 닭을 키우는 집이 있었는데 무서워서 빙 둘러서 학교에 가곤 했다. 크기를 막론하고 새라고 하면 피할 생각부터 하지 바라볼 엄두를 내지 않던 내가 새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유심히, 오래도록.

(1) 화환 위에 지은 새 집 안의 새 알, (2) 부화 후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는 모습, (3) Audubon 공모전을 수상한 아메리칸 로빈 사진

버지니아로 이사 온 후 이곳 주를 상징하는 새이기도 한 빨간 카디널을 보고 예뻐서 ‘새도 무서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구나’하고 처음 느꼈다. 하얀 눈이 덮인 나무에 앉은 빨간 새.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지지 않고 이겨내는 새라 크리스마스 카드에 자주 등장한다. 카디널은 보통 알을 열둘씩 낳아 미 원주민은 12를 행운의 숫자로 여기고 이 새가 행운을 불러다 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철새는 보통 추워지면 따스한 곳으로 이동했다가 봄에 돌아와 새로운 짝을 만나지만, 카디널은 부부의 연을 맺어 새끼도 함께 키우고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빨간 아빠 새는 열심히 다른 새들과 싸우기도 한다니 더욱 눈길이 갔다. 

(1) 덱 위 화분에 앉은 수컷 카디널, (2) 덱 난간 위 화초 위에 앉은 암컷 카디널, (3)  Audubon 공모전을 수상한 카디널 암수 한 쌍

카디널 외의 다른 새는 구분을 못 하다가 몇 해 전, 뒷마당에 앉은 파랑새를 처음 본 후 탄성을 질렀다. 이렇게 멋있는 새도 있구나! 간혹 마주칠 때마다 사진에 담아두려 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2019년 여름 콜로라도 로키 산맥 국립공원에서 파랑새의 사진을 찍고는 너무 기뻐서 파랑새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올 가을에는 어쩐 일인지 한 해 두어 번 밖에 보지 못하던 이 파랑새를 날마다 본다. 잔디 씨를 뿌려서인지 아니면 집에 머물며 정원을 가꾸고 야채를 길러 먹을 것이 풍성해져서인지 파랑새가 내 정원에 사는 듯하다. 9월의 마지막 날, 드디어 이 파랑새의 사진을 찍었다.

덱 위에 놓아둔 부추 화분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쪼아대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순간, 마침 고개를 들어 뾰쪽한 부리와 무언가를 응시하는 그 옆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동안은 내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뒷모습의 파란색이 인상에 남아 파랑새라고만 부르다가 이 새의 이름이 ‘블루 제이 Blue Jay’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새 종의 학명인 사이아노치타 (Cyanocitta), 그리스어로 파란색을 뜻하는 단어와 재잘재잘 떠드는 새를 뜻하는 단어의 합성어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1) 2019년 여름 콜로라도 로키 산맥에서 만난 파랑새, (2) 2020년 9월 덱 위에 찾아온 블루 제이, (3) Audubon 공모전을  수상한 블루제이 사진

지난 주말 워싱턴포스트 주말매거진에 실린 한 에세이에 새에 대한 신기한 내용이 있었다. 작가는 D.C.에 살면서 종종 길고양이 얘기를 재미있게 쓰는데, 큰아이가 고양이를 입양해 데리고 온 후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나는 이 작가의 글을 즐겨 읽게 되었다. 이 작가의 이웃 톰은 간혹 길고양이 ‘버스터 Buster’가 다치거나 하면 자기 집에서 돌봐주는데,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작가는 종종 톰과 버스터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버스터가 어디선가 크게 다쳐 톰의 집에 와서 그가 병원에 데리고 가 수술을 받게 하고 돌보아 준 일, 그리고 그 후로 버스터는 고마움의 표시로 죽은 쥐나 새를 톰 집 앞에 놓고 가곤 한다는 등등. 힘겹게 잡은 자신의 먹이를 톰에게 주는 버스터의 마음과 그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받고 기겁을 하는 톰의 모습을 익살스럽고도 생생하게 전달해서 작가의 글솜씨를 부러워하며 읽곤 한다.

이번 글엔, 작가가 산책하다 톰이 자기 집 앞 포치에 앉아 마킹버드 (Mockingbird)의 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을 그렸다. 새들이 막 톰을 쪼아대며 못살게 구는데도 톰은 그런 새들을 내쫓지도 않고 받아주고만 있어, 이상해서 쳐다보고 있자니 톰이 그에게 소리쳤다. “버스터가 아무래도 마킹버드 새 한 마리를 죽인 거 같아! 죽은 새를 보진 못했지만, 그 녀석은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니까!”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동안 작가의 글을 통해 버스터를 알게 되어 그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작가는 버스터가 톰 집에 사는 것도 아니고 전에 다쳤을 때 병원에 데리고 가서 수술시켜 준 적이 있고 간혹 아프거나 날씨가 너무 안 좋으면 찾아오곤 하는 관계일 뿐인데 어떻게 새들이 그 관계를 알고 톰에게 원한을 갚는가 신기해했다. 죽을 뻔한 고양이를 자기가 살려놓았으니 그들의 원망을 들어줄 책임이 있다고 새들의 쪼임을 감당하고 집 앞에 앉아있는 톰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나는 마킹버드가 도대체 어떤 새인가 찾아보았다. 학창 시절 읽었던 미 고전소설 <To Kill a Mockingbird>가 ‘앵무새 죽이기'로 잘못 번역되어 나는 이제까지 마킹버드가 앵무새인 줄 알고 있었는데 동네에 앵무새 무리가 한 남자를 쪼아대고 있는 것이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위키피디아에 보니, 마킹버드는 한국말로 흉내지빠귀 또는 입내새로 불린다. 배 쪽은 하얗고 등과 날개는 회색의 조그마한 새다. 각종 새의 보존을 위해 일하는 Audubon 사이트에 보니, 노랫소리가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둥지를 지키는데 매우 용감해서 자신보다 훨씬 큰 고양이나 심지어 사람에게도 공격을 한단다. 이렇게 작은 새도 누구에게 원한을 갚을 것인가를 안다고 생각하니, ‘신의 눈은 어느 곳에나 있어 악한 자와 선한 자를 지켜본다'라고 한 잠언 15장 3절이 떠오른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잔디 씨 뿌려 놓고 새들이 와서 다 쪼아 먹는다고 속상해하지 말아요. 새들이 누가 그 씨를 뿌렸는지 다 안다고.”


외부 사진 출처:

https://www.audubon.org/news/10-fun-facts-about-american-robin

https://www.audubon.org/field-guide/bird/northern-cardinal

https://www.audubon.org/field-guide/bird/blue-jay


<파랑새를 끌어들이는 7가지 방법>

1. 파랑새는 먹잇감인 곤충을 찾을 수 있는 넓게 펼쳐진 공간을 좋아한다.  

2. 파랑새가 집짓기 좋아하는 공간인 죽은 나무나 죽은 가지를 가능한 한 남겨둘 것.

3. 겨울철에 파랑새는 베리와 각 과일류를 먹으니 그런 나무와 관목을 심을 것.

4. 마실 물이 있는 곳을 좋아하니 작은 물 쟁반이나 분수를 놓을 것.  

5. 봄에서 가을까지 파랑새는 땅에 기어 다니는 벌레를 잡아먹고 사는데 땅에 살충제 등의 화학물질이 섞여있으면 위험하니 화학비료나 살충제를 쓰지 말 것.  

6. 고양이는 집 안에 가둬둘 것. 매해 고양이가 수백만의 새들을 죽인다.  

7. 애완용 조류의 먹이로 쓰이는 애벌레들을 제공할 것. (블루제이는 땅콩과 같은 너트 종류를 좋아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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