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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Feb 26. 2016

전업주부의 압박감

살림

전업주부는 집안 일이 주 업무다. 애가 어릴때는 애보기가 추가되고 식구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간호업무가 추가되고 식구들의 온갖 심부름이 주부의 주 업무가 된다.


인터넷에는 살림으로 유명한 블로거들이 있다. 그녀들이 올려놓은 글을 읽을 때 나는 사법고시 합격수기를 읽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얼마나 다행스럽다고 느끼는지....마치 정작 나는 서울대 근처에도 못가지만 동생이 거기 다닌다고 자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낄 때랑 비슷하다.


사실 아이둘, 남편, 건사할 집이 있다면 할일이 없지는않다. 열거하려고 들면 끝도 없이 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일들 급박하거나 기한이 있을 때도 있지만 며칠동안 미루어도 별 문제 없는 일들도 많다.


아이들 닥달을 며칠 소홀히 하는것, 쇼핑안해서 냉장고 파먹기, 세탁기 안 돌려서 서랍안쪽에 묵혀 있던 속옷 꺼내 입기, 청소안해서 발바닥이 버적대면 다른 다리에 발바닥 비벼털기, 화장실에서 공중화장실 냄새 날때까지 모른척 버려두기 ( 그냄새를 가장 먼저 인지하는 사람이 주로 주부 자신이기에 별 문제 안된다). 이런 식으로 한동안 게으름 피울 수 있고 혹은 최소한으로 살림을 하는 경우에는 일주일에 한두번만 힘을 써도 다른 식구들은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도있다.


문제는 그 게으름이 계속 된다면 표시가 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아 숙제가 밀리고 마법의 항아리 처럼 끝없이 꺼내 쓰던 치약이며 샴푸며 소모품은 바닥을 드러내고 집안 곳곳에 덕지 덕지 때가 끼고 이제는 한바탕 청소기를 돌려도 전혀 개운치가 않다. 직장맘들이 이 정도 상태일까?


다행히 전업주부인 나는 게으름을 좀 피우다가도 어느날은 맘먹고 집안 곳곳을 반딱 반딱 윤을 내고 마트에 가서 카트 가득 물건을 사다 채운다.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내가 왜 이렇게 사나? 자책을 하기도 하지만(닥달하는 상사는 없다)  또 다음순간 내가 없으면 이 인간들은 어떻게 살까? 싶은 생각이 들어 내 존재가 스스로 고마울 때도 있다.


지난 20년 동안 그렇게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왔다.  직장맘들을 볼때면 내가 못하는 일을 하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고, 식구들 심부름이나 하고 있으니 내 인생에  죄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식구들 편하자고 나 편하자고 그렇게 마음만은 가끔 약간 불편하게 살아왔다.


이제 아이들은 컸고 여가시간은 많아졌으니 내 인생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실은, 찾고 싶다가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그런데 그 압박감은 자주 살림살이에 밀린다. 아무리 애들이 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내가 해주면 좋은 일들이 있다. 물론 내가 나를 찾느라고 바쁘면 굳이 안해줘도 되는 일이기는하다.


어제 아침에는 일어나자 마자 기숙사에 사는 아들한테 마트에서 물건을 주문해줬다. 항상 용돈 부족에 시달리는 아들은 내가 비용을 대면서 물건을 배달해주면 아주 고마워한다. 그리고 정신차리고 생각해보니 발렌타인데이라서 데이트 비용에 보태쓰라고 5만원을 송금해줬다. 이번에도 '굽신굽신' 이모티콘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요즘 방학기간이라서 딸의 삼시세끼를 챙기는데 어제는 김밥을 싸먹였다. 싸다보니 많길래 당직중인 남편한테 도시락배달을 했다. 그러는사이 이불들을 수거해서 욕조에 담궜다가 건져서 두번에 나눠 세탁기를 돌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바쁘면 아들 장봐주기도 발렌타인데이라고 신경쓸 일도 없었을테고 딸 식사도 김밥집에서 한줄 사다 때워주고 남편 도시락 배달 갈일도 없었을거다. 이불 세탁이야 1-2주정도 늦춰도 아무도 모를 일이고..


그런데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없고 식구들에게 그런 소소한 관심과 수고를 보태줄 때 정말 행복하다.   압박감에 마음이 불편하다가도 아들이 고맙다, 딸이 맛있다, 남편이 수고했다 한마디 하면 내가 그럴 수 있어서 진짜 뿌듯하다.  내가 이런 사람인데 뭐하러 맘 불편해 하는지 대체 모르겠(이번에도 닥달하는 사람은 따로 없다).그렇다면 그 압박감 개나 줘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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