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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Jan 17. 2017

남편과 아들

쓰고보니 좀 오글거리는군



우리 부부는 애들을 키우면서 서로를 많이 알게 되었던 것같다. 애들때문에 헤어지지 못한다고 하는 말은 결론 일뿐이고 실은 애들을 키우면서 서로를 깊게 이해하게 되어서 헤어질 필요가 없는 관계가 되어진다는 말이 맞는것같다.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인걸 함께 애를 키우지 않았다면 알 도리가 없었을거다. 내 남편은 누구랑도 다투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식당에서든 어디에서든 내가 불평하는 상황에서도 거의는 나를 말린다. 나는 그런 남편이 재미없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여의도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지금은 이사왔지만 그때는 근처에 살아서 자주 가던 곳이다.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앞서 가고 나랑 남편은 인라인을 타는 딸이랑 뒤에서 아들을 지켜보면서 따라가고 있었다. 아들은 한참 가다가 우리가 궁금했던지 자전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다가 바로 뒤에서 자전거를 타던 아주머니랑 부딪쳐서 넘어졌다. 아줌마는 예고도 없이 갑자기 멈췄다고 넘어진 아들을 나무라고 있었는데 남편이 수퍼맨보다 빨리 뛰어가더니 넘어진 아들을 일으키고 아주머니한테 화를 냈다. 어떻게 어른이 되어서 아이가 넘어졌으면 다친데가 없는지 살피는게 먼저지 아이를 혼내고 있냐고..멀쓱해진 아주머니가 자기도 자전거를 못 타는데 놀라서 그랬다고 하시면서 사과하셨다. 나는 그때 남편이 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사납게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봤다. 낯설었다.


아들이 중학생일때 베프 엄마한테 전화를 받았다. 그날 아들이 학교에서 여자애한테 맞고 울었다고. 아들한테 물어보니 여자애들 패거리중 한명이 아들을 좋아한다고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며 아들 팔목을 잡아 끌기에 뿌리쳤는데 여자애가 좀 아팠는지 나중에 리코더를 가져와서 앉아 있던 아들 머리를 내려쳤다는거다. 아들은 분하기도 하고 마주 때릴수도 없으니 눈물이 찔끔 났던가보다. 남편한테 상의를 하니 오늘로 끝나지 않고 나중에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만약 아들이 참지 못하고 여자애를 때리기라도 하면 큰 문제가 된다고 선생님한테 미리 얘기를 해놓으라고 했다. 선생님께 전화를 하니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나중에 전화가 와서 자기가 알아봤더니 아들이 먼저 여자애를 때려서 그렇게 된거고 별 일 아니니 걱정말라더니 수업이 있어 전화를 끊어야 한다면서 내 얘기는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얘기를 듣더니 남편이 선생님께 전화를 해서 선생님이 상황을 잘 못 파악하신 것 같으니 여자애 아빠 연락처를 주면 직접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겁이 난 선생님은 쉽게 알려주시지 않으려 하셨 남편은 하루 종일 고집을 부려 저녁쯤에야 연락처를 얻었다.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는데 나중에 들으니 여자 선생님은 좀 울먹이셨단다. 어쨌든 여자애 아빠한테도 둘이 문제가 있었다고 하던데 무슨 일인지 알아보시고 연락해달라고 말했는데 다음날 아침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그 아빠가 전화를 해서 자기가 딸한테 자세히 알아봤는데 자기 딸이 잘못했더라. 혼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단다. 선생님과는 다시 통화하지 않았고 아들은 이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른채로 상황은 종료됐다.


이런 일들은 진짜 예상밖이었다. 남편은 주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타입이라서 남한테 화를 내거나 실망하는 일도 드문 사람인데 애들일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니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봐도 용납이 안되는가보다. 이 사람은 아들이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상처 받으면 누구보다 사나워질 수 있고, 아들 일이라면 세상에 귀찮은 일이 없고(다른 아빠였다면.. 한대 맞았어? 뭐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갔을거다. 대체로 귀찮아서..), 120프로 주면서도 한가지도 돌려받 않으려는 그런 사람이라는걸 알게됐다. 


말로는 전혀 표현하지 않는 남편의 사랑이 이렇게 뜨거운 거였나? 알게됐고 애들도 그렇지만 나도 그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을 수 있었고 그 믿음은 사는 동안 이런 저런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큰 힘이 되어주었다. 사실 남편의 사랑을 믿는 아내는 남편과 싸울 일이 없다. 둘이 한편인데 뭘가지고 싸울건가..그러니 애들덕분에 남편의 사랑을 깨닫게 된 여자가 애들덕에 살고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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