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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처음인 우리

보이지 않는 폭력

by Sarah Hwang

나의 부모님은 첫째인 나를 끔찍이도 여기셨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하고, 학급 반장이 되고, 선생님과의 관계도 잘 챙겼던 아이.

부모님이 학교에 오실 때면, 나는 늘 "으쓱한 자랑거리"였다.


그런 내가 사춘기가 되면서 변했다.

공부보다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아졌고, 방에 틀어박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못마땅해했고, 섭섭해했다.


"왜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걸까?"
"왜 친구를 더 좋아하면 안 되는 걸까?"
"왜 꼭 가족과 저녁을 먹어야 하는 걸까? 나는 배도 안 고픈데."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우리는

전형적인 사춘기 자식과 부모의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대학에 가고 졸업할 때까지 그 관계는 이어졌다.




나의 첫 부모 노릇


내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위 ‘미국 놈’"이다.

나의 10대 시절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미국에서도 자식 교육에 헌신적인 부모는 얼마든지 많다.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인종과 국적을 가리지 않고, 사춘기 자식과의 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제 주립대에 진학할 예정이다.
이제 막 사춘기를 벗어난 시기이지만, 그동안 크게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고작 아이 하나 키워봤다고 자녀 교육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나는 부모가 되고 나서도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부모가 되고 나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아이를 키워보면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맞다. 그런데, 동시에 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아진다.


우리는 아이를 잘되게 한다는 이유로,
더 나은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핑계로,
부모의 욕심을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이입한다.


사춘기 때 부모와 사이가 멀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성적과 진로다.


어렸을 때 잘하던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성적이 떨어지면,
속이 타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맞벌이 부부였던 우리는
1년에 3만 불(약 4천만 원)짜리 사립학교에 아이를 보냈다.
비싼 학비를 내며 기대했던 건 좋은 교육과 안정적인 미래였지만,
아이는 선행학습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 정도 학비를 내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넌 왜 제대로 안 하니?"


나는 아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이유로
점점 더 아이를 몰아붙였다.


숙제할 때마다 붙잡고 앉혀놓고, 제대로 못하면 소리 지르고,
그러다 서로 눈물 콧물 범벅이 되고.

그런 시간이 몇 달이 지나고,
아이는 급격히 나와의 대화를 줄였다.

말수는 줄었고, 말투는 반항적이 되었고, 행동은 거칠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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