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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보고 Nov 30. 2023

씽씽이와 이별하기

D-92




서른둘에 배운 자전거

    

    어릴 때 네발 자전거를 도둑맞은 이후로 어째서인지 제 인생에 자전거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월세살이 중이던 집안 사정과 그저 동거인으로 존재하던 아빠와 가정을 꾸리고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던 엄마, 밖보다 안이 편한 제 성향 등의 여러 사정들이 모여져 만들어 낸 결과였겠지요.


     헬멧과 팔꿈치, 무릎보호대를 차고 완전 무장을 한 채로 긴장한 얼굴로 두발 자전거에 오르고 뒤를 보면서 "아빠, 절대 내가 놓으라고 할 때까지 절대 놓지 마!"라고 소리치는 여자아이와 "그럼, 일단 앞만 보고 달려!"라고 하는 아빠, 신이 나서 앞만 보고 타다가 "아빠! 나 잘 타지?"라고 힐끗 뒤를 보고 아빠가 손을 놓았음을 깨닫고 놀라서 넘어지는 장면은 없습니다. 굳이 아빠라고 쓰는 이유는 어린 시절 '아빠'는 같이 사는 동거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시절의 아빠를 좀 원망해보고 싶었습니다. 서른둘이나 됐는데도 이러는 거 보면 그때의 내가 참 징하게 '아빠'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로 지금은 사이가 좋습니다.하핫)


    스무 살 때 남자친구에게 자전거를 배울 뻔했습니다.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싸웠거든요. 앞만 보고 페달을 굴리라는 데 자전거에 올라가는 것부터 겁이 나는 데 그게 될 리 가요. 페달을 몇 번 굴리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전 넘어지고... 이러면서 배우는 거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배우기 싫어졌습니다. 한동안 자전거 꼴도 보기 싫더군요.


     10여 년 간 자전거 없이도 살 수 있었고, 특별히 타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한 채 지내왔습니다. 그러다가 TV프로그램 '1호가 될 수 없어'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자전거를 알려주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아내 분이 저보다 나이가 많았음에도 처음 자전거를 타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자전거를 타는 데 성공했고 쌩쌩 잘 타는 모습과 그 분의 표정이 나오는데 굉장히 신나고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렇게 서른둘이 돼서 그때의 남자친구이자 현 남편에게 자전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나의 첫 자전거, 씽씽이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걸 좋아합니다. 제 첫 자전거 이름은 '씽씽이'입니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씽씽'이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의 입모양이 좋아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씽씽이는 2년 전 신혼살림 마련하면서 커플 자전거로 저에게 왔습니다. 남편의 자전거는 '쌩쌩이'라고 붙여줬지만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출퇴근용을 겸할 거라 전기 자전거로 구입했지요.


    2년째 함께하고 있는 씽씽이는 제 출퇴근길이 지루하지 않게 해 줍니다. 매일이 똑같지 않게 해 줍니다. 계절마다 날씨마다 달라지는 나무와 꽃들을 보고, 어제와 달라진 바람을 맞으며 온몸으로 변화를 느낍니다. 열심히 운동하는 어르신들, 춤을 추는 사람들, 꽃을 찍는 사람들, 자전거나 보드를 배우는 사람들, 스치는 다양한 사람들을 훔쳐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좋은 건 도림천의 오리들을 보는 것입니다. 물이 많을 때면 얼굴을 풍덩 물속에 집어넣고 엉덩이만 빼꼼 나온 채 버둥대는데 그 모습이 쇼츠 영상이었다면 좋아요 백만 개를 날려주고 싶을 만큼 귀엽습니다. 물이 말라서 없을 때나 장마 소식이 있을 때면 남편과 둘이서 오리들 걱정도 하곤 했습니다. 웃을 일이 없는 그런 날에도 오리들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면서 굳어있던 내 근육을 느끼며 웃지 않은 하루를 되돌아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제일 좋은 점은 지하철을 타면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입니다. 출퇴근길 지하철은 우르르르 줄지어 타고 탄 이후에 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내 두 다리 주변과 머리 위와 지하철 천장 사이뿐이지요. 불특정다수와의 어쩔 수 없는 밀착을 하려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생각해야지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우르르르 내리고 난 다음에도 잠시의 휴식 없이 앞으로만 나아갈 수밖에 없고요. 요즘 같은 겨울에는 씽씽이를 탈 수 없어서 오랜만에 이 경험을 하는 데 매번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네요.


    씽씽이와도 곧 이별이네요. 괜히 비 올 때 귀찮다고 안 들여놨던 게, 비둘기 똥 자주 맞게 한 게 미안해지네요. 영하의 추위가 조금 벗어나면 씽씽이와 출퇴근을 하면서 2년간의 추억을 돌아보고 행복감을 가득 채우고 떠나볼까 합니다.  


+ 자전거 배우길 참 잘했다.


    자전거를 배우고 삶이 10배는 더 풍성해졌습니다. 자전거가 주는 속도감과 자유로움이 좋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전거를 즐겁게 탈 수 있는 이유는 그때의 남자친구이자 현 남편이 다정함을 장착하고 저를 어린아이처럼 알려주고 지지해 주고 저의 속도를 기다려주었기 때문이 큽니다.  그러고보니 어릴 때 아빠와 같이 그리지 못한 그 장면을 남편이 대신 해준 셈이네요. 그 모습에 남편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커져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요즘도 먼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도 가끔씩 제가 잘 따라오고 있나 돌아보고 멀어지면 기다려리는 남편입니다. 이런 남편이기에 퇴사 후 우리 단 둘만의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전거 이야기에서 남편에 대한 고마움으로 끝나게 되네요. 제 삶을 풍성하게 해 준 남편에게 감사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저도 그의 삶에 풍성하게 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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