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91
신혼집을 마련하고 한참 집들이를 할 시즌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방 구경을 하다가, 똑같이 어느 한 방 앞에서 멈칫하고는 물어봤습니다. "너네 따로 자?" 그럼 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죠. "응! 너무 좋아~" 남편도 어느새 옆으로 와서 따로 자는 게 얼마나 좋은지 신나서 떠들었습니다. 그러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래도... 신혼인데..."라며 살짝 걱정스러워하는 반응과 "아, 그래? 편하긴 하겠다. 나도 해볼까?"라며 호기심 어린 반응입니다. 다들 의문을 가지던 방은 바로 침실입니다. 침실 양쪽 벽에 각자의 침대가 딱 붙어 놓여 있고, 침대와 침대 사이에는 베이지색 러그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사잇공간에서는 주로 둘이 딱 붙어 앉아 같이 밥을 먹거나 술 한잔을 하지요.
신혼집 전에 잠시 동거하던 시절, 그때의 저희는 퀸침대에 같이 잤습니다. 둘 다 잠귀가 예민한 편이라서 누구 한명이 조심스럽게 일어나더라도 한 침대 공간에 넉넉하지 않은 거리 탓에 일찍 잠을 깨거나 잠을 설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제주도 여행에 한 숙소 게스트하우스에서 싱글침대 2개가 있었고,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떨어져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날 아침, 저희는 깨달았습니다. 무슨 간증하듯이 "너무 잘 잤어." "나도 이런 느낌 오랜만이야!" "꿀잠이란 이런 건가" 라면서 상기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호텔침대의 매트리스나 침구도 아니었습니다. 이유가 뭘까, 열띤 토론 끝에 각자의 침대에서 따로 자서 그런 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계기로 신혼집이 생기면 침대 2개에 따로 자보자,까지 이어진 겁니다.
한 침대에서 자던 시절, 남편은 잠이 든 자세 그대로 자고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람이 잠버릇이 없구나'라고 생각했죠. 저는 잠버릇이 심했었습니다. 혼자 잘 때에는 분명 침대헤드에 머리를 두고 있었는데 밤새 180도 회전을 침대 밑에서 일어나거나, 꿈속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행위 예술을 한 건지 온 관절을 꺾은 상태로 기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아빠가 그 모습을 보고 엄마에게 "얘 어디가 안 좋은 거 아니야?"라고 말한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러는 저이지만, 남편이 깰 까봐 신경을 써서 그런지 그 당시에는 남편을 닮아 얌전해졌습니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저희의 예상대로 따로 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수면의 질이 급상승했습니다. 남편은 잠버릇이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가끔 먼저 잠에 든 남편을 보면 뒤척임도 있고 저만큼 다양한 자세를 취하진 않지만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있습니다. 관 속에서 팔다리를 묶인채 잠든 듯한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저 또한 다시 다양한 행위 예술을 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점 말고도 가까이 붙어 있을 때보다 서로의 얼굴이나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가까이서 보면 그 사람의 한 부분밖에 못 보지만, 큰 덩어리, 그러니까 전체를 볼 수 있다는 게 뭐랄까, 존재 자체를 본다는 느낌, 저에게 있어서는 그게 안정감을 주는 거 같습니다. 접사가 아닌 광각으로 보는 느낌이랄까요.
불편한 점도 있긴 있습니다. 옆에 있으면 같이 TV를 보거나 책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몰려오면 옆으로 돌아 굿나잇 허그나 뽀뽀를 하는 게 쉬운데, 따로 있다 보면 그게 어렵습니다. 둘 다 동시에 졸음이 쏟아질 때면 '당신이 이쪽으로 와라' 가위바위보도 하고 티격태격하기도 합니다. 1m 남짓한 거리가 왔다 갔다 뭐가 힘드냐, 싶지만 하루의 피로와 졸음이 우르르르 몰려 올 때 그대로 침대에 파묻혀 잠들고 싶은 순간이면 떨어져 있는 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남편이 한 달에 한두 번 코를 심하게 골 때가 있습니다. 한 침대에서 잘 때에는 이불을 살짝 뒤척인다거나, 남편의 베개를 살짝 움직이면 코골이를 멈췄습니다. 지금은 코를 골 때면 베개를 던져볼까? 이름을 불러볼까? 하다가 그러면 또 잠이 달아날까 걱정이 돼서 일어날 기운은 없어 한참을 뒤척이다 지쳐서 잠들 때가 간간히 있습니다. 뭐 이 정도에 장점에 비하면 아주 작디 작은 먼지 수준이긴 합니다.
베트남에서 살 숙소를 한참 알아보다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같이 자야겠는데?" 그 말을 듣고 두 눈이 똥그래진 남편에게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숙소 조건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아파트먼트 2. 투룸이상 3. 월세 60-70만 원 4. 침대 2개
위 조건에 딱 부합하는 숙소를 4-5곳정도 발견했습니다. 조건이 아주 좋습니다. 침대가 한 공간에 2개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 빼고는요. 그럼 한 침대가 넓은가...사진이라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닙니다. 분명 베개 2개씩 놓여있는데... 아무래도 따로 자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답답하게만 느껴지네요. 남편도 "쓰읍~"하고는 직접 찾아보겠다며 검색을 나섰지만, 결국 제가 찾은 곳이 제일 낫다는 걸 인정했지요. 다시 사이좋게 꼭 붙어 같이 자던가, 아니면 다른 공간에서 따로 자는 방법이 있습니다. 후자는 좀 아닌 거 같다는 게 지금까지의 합의사항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각자 일을 나가기 때문에 더 예민하고 수면의 질이 더욱 소중했던 거 일 수도 있으니 일단, 퇴사 후 직접 가서 경험해야 제대로 알 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그렇게 오늘 드디어 베트남 살고 싶은 숙소 4곳을 2박씩 예약했습니다. 주변 인프라도 살펴보고, 소음문제는 없는지도 보고, 무엇보다 둘이 같은 공간에서 잘 수 있을지도 보려고 합니다. 아, 벌레 문제도요. 부동산을 통해 바로 보고 살까도 했지만 장기로 사는 건데 겉모습만 보고는 결정하면 후회할 듯 싶어서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장기숙박이 가능한 숙소 4곳을 선정해서 경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과연 다시 한 침대에서 잘 수 있을까요. 다른 공간에서 자는 건... 평생이 지나도 싫은데 말이죠. 제가 살을 좀 빼서 부피를 줄여볼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듭니다. 바라건대, 직장인이라는 조건이 주는 예민함이기를, 직장만 관두면 어떻게 자든 수면의 질은 저절로 향상될거라는 기대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