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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보고 Dec 02. 2023

애증의 서울 떠나기-1

D-90

서울의 달

   

    저의 서울살이의 시작은 대학 졸업 후 2011년, 서울에 한 대형병원에 간호사로 취직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신규간호사로서 생활은 정해진 알고리즘 따위는 없었고, 늘 예측불가했으며, 저의 무능력함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3교대에 병원업무만으로도 벅찬데, 위원회, 행사, 연초/연말 파티, 발표모임, 회식까지... 지금 생각해도 숨이 턱 막혀옵니다. 일을 하면서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으면, 어떤 말에도 상처받지 않았으면, 그저 그렇게 주는 돈만 바라보면서 기계처럼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생각납니다. 신규시절 혼자 못다 한 업무를 하고 새벽녘에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 나 그만두면 안 될까?... 너무 힘들어..."  엄마는 말했습니다. "그래도... 버텨야지 어떻게 하겠니..." 전화를 끊고 주저앉아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릅니다. 전 그만두면 안 됐습니다. 저의 가족의 '희망'이었으니까요. 김건모의 '서울의 달' 가사처럼 참 외롭고 처량한 날이었습니다.

    오늘 밤 바라본 저 달이 너무 처량해, 너도 나처럼 외로운 텅 빈 가슴 안고 사는구나.

    

    서울에는 참 놀거리가 많습니다. 특히 밤에는 더더욱 술집부터 클럽까지 참 크고 화려한 그곳에 사람들은 모입니다. 그곳에 외로움과 처량함 따위는 없어 보입니다. 저 또한 그곳에서 병원에서의 쪼그라드는 나를 잊고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면서 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어떻게 원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냐고, 그저 지내다 보면 괜찮아진다고, 무뎌진다고, 그렇게 그냥 쇼핑하고 놀고먹고 마시면서 사는 게 인생이라고, 그때의 서울은 저에게 그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원치 않은 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책임감이라는 감옥 속에 저를 가두어 놓은 채로 나 자신을 내버려 둔 채 의지할 것을 찾아 헤맸죠. 종교도, 남자도, 술도, 연말 보너스도, 효과가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저에게 희로애락을 주었고 꼭 살아있는 듯했거든요. 그러다 한 번씩 몰려오는 공허감과 함께 '난 왜 이러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고, 심리상담 끝에 나부터 찾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3년의 생활을 끝으로 병원을 나왔습니다.


서울의 봄


      오늘 아침 일찍 조조영화로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길고 긴 독재정권이 끝나고 당연히 올 거라 생각했던 서울의 봄은 결국,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다루지만 인간의 다양한 군상들을 볼 수 있어서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지금은 과연 '봄'이 온 걸까, '하나회'는 정말 사라졌을까,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죠. 군대가 아니라 사회, 조직,심지어 개인 안에서도 다른 행태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다가, 제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까지 대입시켜봤습니다.


    3년의 임상 간호사 생활을 끝내고, 저는 제 삶의 운전대를 가족이 아닌 제가 온전히 잡으며 살기 바랬고, 완전한 독립을 꿈꿨으며, 어릴 적 꿈을 이루길 바랐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이후 한참 동안 저에게도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꿈만 좇느라 현실을 보지 못한 치우친 생활로 2년간의 방황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을 때의 심정이 잘 표현된 노래 정은지의 '서울의 달'입니다.

서울의 달, 달을 보며 서울의 달, 너를 불러본다. 사랑을 하고도 사랑이 맞는지
내 오랜 꿈들이 날 기다려줄까. 내가 그 어디쯤 있는 건지.
그 누구도 말해준 적 없어. 빛나는 네게 물어, 물어본다.




서울의 봄을 보고 서울의 달까지 생각이 이어져 글을 쓰게 되었네요. 아직도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꽤 긴 서울에서의 이야기를 오늘 이후로 천천히 풀어볼까 합니다. 한 에피소드에 이야기를 끝내는 게 계획이었지만, 계획대로는 아니어도 계속 나를 꺼내는 게, 계속 써 내려가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합니다.

D-100부터 꾸준히 매일 쓰는 걸 습관화하려고 좀 무리해서 시작한 저만의 프로젝트입니다. 남편도 많이 걱정하더군요. 100일간 쓸 게 있을 거 같냐고... 사실 오늘은 좀 후회가 되었습니다.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넷플릭스 드라마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저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그래도, 해봐야지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 꽤 많이 쏟아져 나오네요. 쓸 게 없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나 봅니다.

부족한 글쟁이의 글을 읽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힘이 됩니다. 저도 모두를 응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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