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8
이전 글에서 내 인생의 '후회는 없다'라고 생각했던 시기에서 지난 과거에 대한 후회가 시작된 계기는 바로 그때의 남자친구, 현 남편의 직언들 덕분이었습니다. 동호회에서 남자친구를 만났고 그의 고백으로 시작된 연애였습니다. 달달하고 평화로운 날들만 계속될 줄 알았습니다만, 들켜버렸습니다. 저의 밝고 낙천적인 모습 뒤에 숨겨진 현실을 말이죠. 빚이 늘어났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살아보려 하시다 고금리 이자의 대출을 쓰게 된 부모님의 빚까지 같이 해결해야 했던 시기가 하필 그와의 연애시기였습니다. 데이트를 하다가도 전화를 받으러 후다닥 뛰어나가기도 하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생각하다가 대화에 마가 뜨기도 하고, 별 일 아닌데 울컥하면서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빠와의 대화를 듣게 된 남자친구는 어떻게 된 건지, 무슨 일인지 물었죠. 저는 저항 없이 모든 걸 다 내뱉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부끄러운 줄도 몰랐습니다. 왜냐면, 전 젊고 능력 있고 시간이 길어질 뿐 어떻게든 해결할꺼니까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남자친구와 저의 집안 사정은 달랐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저에 대한 안쓰러움을 내비치기도 하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찡그린 눈썹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가족이라는 생각도 하는 거 같았습니다. 저는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습니다. 우리의 연애에 있어서 이건 전혀 문제 될 거 없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말이죠.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흘러가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후 연애를 하면서 자신처럼 '수박'과 '무한도전'을 좋아하는 저를 운명이라 여겼던 남자친구는 저의 행동에 '틀리다'를 붙였었습니다. 저는 '다르다'라고 아무리 말해도 고집불통이던 그는 그랬습니다. 자기표현이 확실하고 호불호가 강한 시원시원한 면이 좋았습니다. 유쾌하고 재밌었습니다. 이 모든 자기 생각과 같다는 전제한 거였던 거지요. 눈썹이 자신의 고집만큼 진한 그는 '연인'이라고 해서 다른 기준을 적용하거나 허용범위가 더 넓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갈등이 없는 연인이 어딨겠습니까? 저는 갈등의 '원인'만 논했으면 했지만, 그는 그렇게 시작하다가도 싸움을 최고조에 이르면 저의 경제상태를 언급했습니다. '난 결혼을 생각하면서 늘 사귄다', '왜 빚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거냐', '난 그 상태였으면 동호회 활동도 연애도 하지 않았다' 장소가 기억합니다. 맥도널드 2층이었지요. 저는 붙잡았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원망 섞인 말로 시작해서 '한번 더 기회를 달라'로 끝났었습니다. (이때가 제일 독하게 말했는데, 정말 헤어지려고 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그때는 나의 경제상태가 나의 한 부분으로 평가될 수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걸로 내 인생을 평가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지나간 일이고 해결하고 있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고, 부모님도 살려다 보니 그런 건데, 왜 이걸 이해할 수 없는 거냐고, 말이죠. 그래서 약간의 오기로 더 붙잡았습니다. 난 감히 이걸로 평가할 수 없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말이죠. 이 때도 후회는커녕 '널 후회하게 만들어줄게'라고 생각했었네요.
그다음은 그의 집에서, 그다음은 이사한 그의 집 앞에서 같은 패턴은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기까지 했지요. 눈치채셨겠지만, 그 시간 동안 저는 큰 성과가 없었습니다. 아예 변화가 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뒤늦게 가계부도 쓰기 시작했고, 지출을 통제하려 했고, 부모님에 대한 지원도 끊었지요. 하지만, 빚은 다달이 갚고는 있었으나 이미 벅찬 상태였고, 저축은 꿈도 못 꿨으며 그 와중에 4번의 이직을 했었지요. 그는 저에게서 책임감 없는 모습을 보았고, 그 모습에서 미래를 함께 할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아무리 같이 있을 때 재밌고, 좋아도, 그리고 사랑해도 아닌 건 아니었다고... 그러고 보면 그 입장에서는 꽤 많은 기회를 준 것이죠.
그는 헤어지고 난 뒤에 모든 스치는 단발머리 여자가 저로 보였다며, 다시 잘해보자고, 너무 마음 아프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너와 함께하고 싶은데 앞이 깜깜한 거 같아서 그랬다고 그렇게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름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싸움도 줄어들고 편안하고 익숙해질 때쯤 '결혼'이야기가 나왔고, 그때 정말 오랜만에 남자친구가 저에 경제상황을 물었습니다. 연애 5년차,남자친구 32살,제가 33살이었습니다. 최소 2년은 더 있어야 했습니다. 빚만 다 갚기까지만 하는 기간이었고 돈을 모으려면 더 긴 시간이 필요했지요 . 사치를 부린 적도 없고, 일을 쉰 적도 없고, 부모님에 대한 지원도 끊고, 부업까지 했었지만 생활비와 함께 그 많은 빚을 갚아가는 길은 길고 길었습니다.
다시금 냉정한 한 마디를 들었습니다. '이대론 결혼할 수 없다',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정말 충분히 열심히 방법을 찾은 거냐'라고 말이죠. 어쩌면 저도 모르게 해이해져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와 보낸 시간은 두터운 신뢰와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루어져 있고, 지금 나도 노력이란 걸 하고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말이죠. 기다려줄 거라고 말이죠. 그리고 한마디 덧붙여했습니다. '왜 그걸 다 혼자 감당하면서 사느냐'라고요. 남동생도 어엿하게 취직해서 월급 받고 오히려 저보다 더 잘 벌고 있었습니다만, 왜인지, 남동생에게 이 짐을 주기는 싫었습니다. 그러다 똥줄이 탄 저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미안하다고, 근데 나 좀 살려달라고 말입니다. 동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동생은 제가 그렇게까지 버거울 줄 몰랐다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숨통을 트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짐을 나눴습니다.
나중에서야 남자친구가 말하기를 모든 걸 다 감당하려는 장녀의 책임감이, 이거 저거 많은 걸 하고 싶고 또 잘하는 저를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다고요. '빚'을 빨리 없애고 제발 '자유'로워 졌으면 했다고요. 진심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곁에 있었고, 그런 그와 결혼하면서 억눌린 제 삶이 점점 피어났습니다. 서울의 봄 은 그제야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애증의 서울을 떠나 어디로 어떻게 가게 될지 모릅니다만, 그와 함께라면 어디든 따뜻한 '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떠나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