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윤선 Nov 13. 2019

승무원이 돈을 많이 벌거라는 착각.

연비 좋은 승무원의 돈 마인드

외국에서 비행을 9년이나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우선 돈을 많이 모았을 거로 생각한다. 안 쓰고 모았다면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겠으나, 세상 진귀 명기한 물건들과 눈에 보면 다 갖고 싶은 아름다운 물건들로 넘쳐나는 세상을 돌아다니는 직업이다.

승무원의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를 약간 부풀려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에겐 많을 수도 생각보다 적을 수도 있는 월급을 공개하자면 이렇다.

승무원 급여 기본급 150만 원, 시간당 비행 수당 15000원, 100시간 비행은 하면 150만 원.

이코노미 클래스 신입 때 받은 월급은 한국 돈으로 300만 원 정도였다. 거기에 현지에 도착하면 나라의 물가에 맞춰 호텔 측정 비용에 따라 현지 돈으로 체류비가 주어진다.

피, 땀, 눈물 모든 액체를 쏟으며 번 돈은 비행기에서 기름 쏟듯 다 어디에 썼는지 빨리도 증발해버렸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 전체 연료의 50%를 소모한다. 이륙 시 모든 엔진은 중력을 극복하기 위해 Full로 가동되어 하늘을 날아오르게 한다. 일단 이륙에 성공하면 순항이다.

비행 3년 차가 되어서야 난 겨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쉽게 버는 돈은 없다는 걸 안 것이다.

승무원들은 공주병, 된장녀, 씀씀이가 헤프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나, 내가 아는 그녀들은 아무리 좋은 걸 봐도 사지 않고, 집에서 밥해먹고, 알뜰하게 열심히 돈을 모았다. 부잣집 금수저들이었다면 아예 승무원이 되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힘든 육체노동의 결정체인 비행을 하지 않아도 우아한 승객이 되어 차라리 편하게 비행기 타고 여행 다니면  되는 것이다.


종잣돈을 모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절약이다. 견물생심이라고 돈을 못 모으는 이유는 지출이 많아서다.

'어맛~ 이건 꼭 사야 해.' 이런 마음이 자주 든다며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가지기엔 월급으로 감당이 안 된다.

조금만 더 참으면 내 삶도 종잣돈의 힘으로 이륙할 수 있는데 엔진이 다른 곳에 연료를 낭비해버리면 어떻게 이륙하며 나아갈 수 있겠는가. 사치하느라 돈을 쏟아부으면 많이 벌어도 소용없다. 더 벌어도 계속 부족하게 될 것이다.



소비에 대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습관을 지닌 알뜰한 승무원 언니가 생각이 난다.

지금으로부터 10년도 훨씬 넘은 일이다. 내가 두바이에 처음 갔을 때, 친한 선배 언니와 ’와피시티‘라는 쇼핑몰에서 만난 적이 있다. 식사를 마치고 언니는 차를 최근에 샀다며 나를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이 언니는 두바이에 오자마자 차를 샀구나. 다른 승무원들은 그냥 회사 버스나 택시를 타고 다니는데. 여기서 오래 살 건가 보다. 어떤 차일까? ‘나도 참 그런 거로 궁금해하다니 웃긴다고 생각하면서 언니를 뒤따라 비싼 외제 차 전 시장 같은 주차장을 걸었다. 국산 차인 아반떼 근처로 방향이 다가왔다. 한국 사람이니 아반떼구나 하며 차를 향해 조수석으로 가려는데 그 차가 아니란다. 알고 보니 그 옆에 있던 폭스바겐 골프였다.

“어머, 언니 골프네요!”

나는 간사하게, 순간 실망했던 기분이 왜 환해졌는지. 유럽에 가면 유독 많이 보던 차로 유럽 대학생들의 로망 카라고 불린다. 뒤태가 빵빵한 젊은 이미지의 상징이었다.

독일 뒤셀도르프 거리에서 독일 할아버지가 빨간 골프를 타고 스웨터에 멜빵바지를 입은 모습이 참 세련되보인 기억이 났다.

 “ 작아도 묵직하고 연비가 좋은 차로 시작하려고, 중고로 샀어.”

그 차를 운전하는 언니의 옆모습이 차에 대한 마인드 때문에 더 감각 있어 보였다.

 우리는 주차장을 쓩하고 쇼핑몰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올라 신나게 달렸다.     

 

몇 해 전, 한국에 정착해 나도 차가 필요했다. 그때, 연비가 좋다는 골프가 생각이 났다. 이동이 많은 나에게 유럽의 거리를 활보하는 듯한 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나라면 중고 골프와 새 아반떼 중에 어떤 걸 갖고 싶은지? 한국에 와보니 중고차로 골프가 역시 인기였다.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마치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묻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사람처럼. 인터넷과 지인들에게 차에 대한 질문을 퍼부어댔다. 내가 누군가에게 관심 있을 때 하는 행동이다. 무슨 차를 살지 답은 이미 마음속에 있었다.

난 골프를 선택했다. 그때 언니가 탔던 그 차가 내겐 로망이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타고 싶은 로망카가 있지 않은가? 그걸 꼭 한 번쯤은 타게 되어있다. 하하 난 처음으로 골프를 몰았다. 마치 자유로운 젊은 새댁이 된 기분이었다.

차체가 작고 가벼워 동작이 빨랐다. 연비가 좋아 적은 기름값으로 원하는 대로 멀리 갈 수 있다. 차가 크면 무거워서 움직이는데, 힘이 필요해서 기름을 많이 먹는다. 사람도 키와 덩치가 클수록 많이 먹듯이. 차는 연료가 남아도 저장하지 않는데, 우리는 에너지가 남으면 지방으로 저장하는 게 문제지만. 내 차는 엔진이 움직이는 횟수인 RPM이 좋아서 빠른 속도로 달려도 안정감이 느껴졌다.


승무원은 연비가 좋은 직업이다. 콤팩트한  달팽이처럼 가방에 최소한의 물건만 넣고 가볍고 편리하게 어디든 공간 이동이 쉽다. 집과 차와 귀중품은 두고 다니기에 원하는 대로 최대한 멀리 다닐 수가 있다. 건강한 심장이 있다면 안정적인 심박 수 상태로 많은 여행에도 경제적 부담이 없다. 잘만  유지한다면 50살까지 누릴 수 있다.

직업은 자동차와 다르게 엔진의 크기에 따라 금액이 정해지지 않아 콘텐츠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그러면 내가 살기로 한 인생, 어떻게 경제활동을 지속해서 자립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계속 일했는데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걸 위해 더 모으고 현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벌기만 해야 한다고? 내가 차고 넘치게 많은 잔재주를 다 줄 테니 큰 목돈으로 바꿀 수 있다면? 석사 학위 3개를 딴 사람이 있었다. 대단하고 부럽다고 하니, 그럼 뭐하냐고 차라리 1개의 박사 학위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끝도 없이 원하고 만족이 없는 삶 앞에서 우리는 뭔가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남에서 일을 마치고 택시 대신 지하철과 버스를 탔다. 오는 길에 많은 음식점이 많았지만 다 물리치고 집 앞에까지 참고 왔다. 순간 지하철역 앞에는 빨간 오뎅 냄새가 나서 침이 고였다. 뜨겁고 흐느적거리는 어묵을 삼키니 한국에서의 시작이 정말이지 너무 뜨거워 뱉기도 삼키기에도 힘들었다. 열심히 일하고 덜 쓰면 정말 모일까?


부자 되는 습관은 근성에서 나온다. 연비가 좋은 외국에서의 직장 생활은 합리적인 소비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하마터면 젊은 날 욜로나 한탕주의에 빠져 돈과 시간을 낭비하며 하나도 못 모을 뻔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앞날을 위해 아껴둔다. 연비가 나쁜 차들은 사치와 허례허식으로 유지비가 많이 들어 실속 없음을 신입 승무원 시절, 에어버스를 타며 깨달았다.




이전 08화 외국에서 사는 3가지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