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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Dec 18. 2019

조종사와 만날 확률                   

인연과 소통에 대하여

                                

조종실에 들어가려면? 조종사가 조종실 안의 모니터로 문밖의 상황과 얼굴을 인식하고 열어줘야만 가능하다. 승무원이 조종실 밖에 설치된 카메라 방향으로 '스마일' 하면 문이 열린다. 미소는 열려라 참깨다. 또한, 위급 상황을 포함하여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방법으로 번호로 된 암호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 안은 가장 아늑하고 고요한 기내의 유일한 공간이다. 승무원들은 북적거리는 기내에서 조금도 조용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화장실 말고는. 조종실을 방문하면 편안하게 잠시 앉아서 조종사와 진지한 인생 이야기까지 나눌 수도 있다. 승무원보다 기본 10살에서 20살은 많은 인생 선배에게 비행 경험을 듣는 건 행운이다. 그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의 기술이었다. 조종실에 들어가면 조종사들의 뒷모습과 넓은 비행기 창문으로 하늘 전체가 보인다.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내 어떤 우연과 인연이 떠올랐다. 2001년 여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진로를 생각해본 나는 고민이 깊어지고 깊어져 이제 고민도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홍콩 여행을 갔다. 그때부터 삶에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새로움을 꿈꿀 때 외국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삶이 바뀌려면 장소가 가장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숙소는 침사추이에 있는 YMCA였다. 여성 6인실 도미토리룸으로 가격과 위치 면으로 최선이었다. 어떤 사람들과 같은 방을 쓰려나 조심스레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다. 놀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니 외국 할머니 한 분이 잠을 자고 계신다. 내일 아침에 인사해야지. 아침 일찍 관광을 위해 나서다 같은 방 할머니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할머니 옆에는 할아버지와 젊은 한국인이 있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방을 쓰던 이 청년도 한국에서 왔다며 소개해 주고는 노년의 커플은 홍콩 사람들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는 자신을 조종 훈련생이라고 소개했다. 국내 항공사 조종사 선발 과정 최종 합격하여 입사 전 홍콩으로 여행을 왔단다. 항공사의 취업 과정을 이야기하며 승무원은 전 세계를 지루할 틈 없이 다니는 재밌는 일이라고 했다. 조종사를 만나게 될 일을 하게 될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는 반드시 태극 마크가 그려진 국적기를 타는 훌륭한 탑건 같은 조종사가 되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이미지를 남기고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메일로 아주 가끔 안부만 전하다 연락이 끊어졌다.

그 후로 3년 동안 승무원이 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했다. 마침내 외국 항공사 승무원이 되어 두바이에 가게 되었다. 홍콩 여행에서 내 존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비춰주는 만남으로 인해 꿈이 생겨 중동까지 왔다니. 비행은 낯설고 외국은 경이로워 한동안 문화 충격 속에 들떠있었다. 좀처럼 차분해지지 않던 세상 구경도 차차 적응되어갔다.

두바이 사막 기후는 항상 더워서 어느 날부터 스케이트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바이에서도 시원하게 달릴 만한 빙판을 찾아냈다. TV에서 본 김연아 선수가 했던 동작을 따라 해 보려고 바보짓을 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아이스 스케이트장은 나만의 쿨한 아지트가 되었다. 비행에서 있었던 일들에 이해와 공감을 받는 데는 동료들과의 수다가 최고다. 어디를 갔다 왔는데 다음 비행은 어디고, 우리가 여기서 언제까지 비행할지 모르겠다며 있는 대로 징징거렸다. 숙소는 좋은데 룸메이트가 안 맞아서 불편하다며 온갖 이야기를 해댔다. 더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스케이트장으로 오랬더니 잠이나 더 잔단다. 내가 스케이트를 타며 3바퀴 도는 동안 푼수처럼 혼자 떠든 걸 누군가 들었는지 말을 걸어왔다.

“한국 분이세요?”

내 통화 내용에는 온갖 한풀이와 회사 욕을 하고 있었는데 어디까지 들었을까. 자신은 대한항공 조종사로 두바이에 2박 3일 비행을 왔다고 했다. 스케이트 타는 게 취미라 검색해서 와보니 조용하다며 나 보고는 이곳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묻는다. 3년 전 홍콩에서 만났던 예비 조종사가 떠올랐다. 나도 대한항공에서 조종사 중에 아는 사람 있는데. 혹시 OOO 아시는지….  “어! 저 이번 두바이 비행, 말씀하신 그 부종사와 함께 왔어요.!”

이런 우연이. 대한항공 조종사가 몇백 명인데, 거기서 딱 한 명 안다. 하필 그 사람이 오늘 두바이에 있다니. “지금 연락해볼까요? 무척 반가워하시겠어요.”

몇 년 만에 반가운 목소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냐며 너무 신기했다. 그때 취준생이 정말 승무원이 되었냐며 대견해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누니 세월이 한순간이다. 우리가 언제 또 이날의, 이 모습으로 살아볼 것인지 기약을 할 수 없어서 다시 만날 기약은 하지 않았다. 인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임을 알고 있는 듯했다. 어느새, 나는 비행 7년 차가 되었다. 내 여권에 한 번도 도장이 찍히지 않은 곳, 샌프란시스코다. 미취항 노선이라 휴가를 내 여행으로 갔다. 5일 동안 버클리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미국 유학을 향한 마음을 버렸으면 좋겠는데, 비워야 하는 그것이 바로 내가 제일 원하는 바였다. 이룰 수 없을까 봐 늘 아쉽고, 버릴 수 없어 애틋했다. 그 마음이 진짜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샌프란시스코 쏘울 트립’으로 카톡 프로필을 업데이트했다.

갑자기 익숙한 이름으로 카톡이 왔다.

“혹시 샌프란시스코 세요? 저 어제 비행을 왔는데 저녁에 돌아갑니다. 지금 어디세요?”

홍콩에서 만났던, 두바이에서 다시 보았던 그 대한항공 부조종사다. 그와 외국에서 세 번째 우연한 만남이었다. 미국에는 50개 주와 1개의 특별 구가 있다. 어떻게 시공간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겹치게 되었을까? 약속도 한 적 없고 만나자고 기약을 한 바도 없었는데 도대체 이건 무엇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9년의 세월 동안 3번째 우연한 만남이었다. 함께 핫케이크가 유명하다는 맛집을 찾아 브런치를 먹고 몇 시간 후 그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에게서 일에 대한 확실한 열정 동기와 성숙한 직업의식을 보았다. 그 조종사가 떠난 후로 난 학교 탐방 미션을 마쳤고, 즐겁게 여행도 하며 내 삶을 열심히 살아갔다. 승무원과 조종사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다.

기나긴 비행 중 조종사에게 내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 있겠냐는 신뢰의 문제다. 승객들도 같은 마음이다. 신뢰하지 못하면 하늘을 나는 고철 덩어리의 원리를 알아도 믿을 수 없이 불안하다. 항공사 승무원들은 비행 전, 브리핑(Briefing)한다.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승무원들이 서로 대면하는 얼굴을 익히는 첫자리다. 그때 서로 오늘의 비행이 어떨지 분위기를 짐작한다. 조종사들이 멋있고 유머로 승무원들을 편하게 대해주면 비행기 전체가 화기애애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목소리, 표현 방식, 듣는 태도에서 적극적인 소통과 공감을 보이면 비행 팀이 가족이 된다. 좋은 조종사는 자신의 의견은 분명히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적극적으로 듣는다. 상대방과 의견이 다를 경우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태도라 자유롭게 의견을 내도록 돕는다. 반대로 권위적이고 무뚝뚝한 조종사들도 있다. 그러면 정말 비행기 전체에 군기가 바짝 들 거로 생각하지만, 분위기가 경직되어 사무장이 스트레스를 받으니 승무원들도 모두 긴장하여 더 실수하는 때도 있다. 비행의 위계질서는 Chain of Commender라고 하는데 계급이 체인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홍콩, 두바이, 샌프란시스코. 내 꿈을 지속하기 위한 터닝포인트라는 3번의 생장점마다 3번의 만남도 있었다. 어쩌면 그가 탄 비행기의 레이다에 내 꿈의 행적이 잡힌 건 아닐까. 그 조종사는 아직도 분명 승객들과 승무원들 사이에서 따뜻한 소통을 하며 세계를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내가 비행을 마친 후로 4번째 확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안전 비행하고 건강하세요. 다음번에  만날 확률이 있다면 놀라운 이야기를 듣기로 해요.”




140개 도시를 비행했던 경험으로

현재는 도예가로 흙과 글을 빚습니다.

알고 보니 무대 체질이라 강연을 합니다.

sarahm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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