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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Aug 06. 2018

당신의 특별함

비행기에서 특별한 날 만들기

Make someone's day, 비행기에서 특별함을 선물하다.



뉴욕 비행을 가는 날이다. 승무원들은 비행기 문의 위치를 기준으로 자신의 업무 구역을 정한다. 

내 포지션은 L3. 왼쪽의 3번째 도어 오퍼레이터(Door Operator)를 맡았다.

탑승 시작이다. 기내 좌석 사이에 서서 좁은 복도를 걸어오는 승객들을 기다린다. 승객들은 과자와 사탕을 양손과 어깨에 나누어 든 것처럼, 각자 자신이 맡은 짐을 들고 기차놀이를 하듯 일렬로 걸어온다. 비행기 안 통로는 폭이 1m 정도 되는 철도길 같다. 중간 좌석에 앉는 승객이 자리를 잡고 짐을 올릴 때면 뒤따라오던 승객들이 일제히 멈춘다. 고개를 옆으로 내밀며 앞사람들이 왜 안 가나 바라보는 모습이 트래픽 잼(Traffic Jam)이다.

내가 서 있는 곳에 승객이 오면 난 재빨리 몸을 틀어 좌석에 나를 밀착시키고 빠져 나온다. 다른 빈 좌석으로 팩맨 게임처럼 요리조리 이동한다. 

유니폼 블라우스가 땀으로 등에 밀착된다. 빨간 모자에 붙어있는 실크 스카프도 얼굴에 붙는다. 

모두 착석을 하면 보딩(Boarding)을 마친다.


나는 은쟁반에 뜨거운 타월을 담아 양손 가득 받쳐 들고 이코노미클래스 갤리가 있는 비행기 꼬리에서 서비스가 시작되는 비행기 중간 허리까지 걸어 나온다. 다른 동료와 함께 나란히 양쪽 통로를 레일삼아 발뒤꿈치를 들고 우아하게 앞으로 향한다. 승객들이 주목한다. 나는 승객과 눈을 마주치면서 타월을 하나하나 나누어준다.

그때 우아한 50대 중년 여성이 업그레이드로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려면 가격이 얼마인지 조심스레 묻는다. 업그레이드 비용에 대한 답변을 메모지에 적어 알려드리자, 몇 배나 비싼 가격에 놀라 당황하신 표정이다.


“너무 비싸서 나 같은 사람은 퍼스트 클래스를 평생 못 타 보겠네요. 저도 젊었을 때 승무원이었어요.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어서 이코노미에서만 잠깐 근무를 하다가 비행을 그만 두었는데 오랜만에 비행기를 탔네요. 퍼스트 클래스에 한 번 타보고 싶은데….”


나도 이제 전직 승무원이 되었지만, 승객으로 퍼스트클래스를 타본 적이 없다. 

승무원들이 승객이 되어 비행기를 타면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서비스는 어떤지, 갤리에서 무엇을 하는지. 일하는 승무원들의 마음과 상황을 눈과 마음으로 너무 잘 헤아리게 된다. 나도 50~60대가 되면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 시절이 그리울 것이다.


승객의 마음에 깊이 공감한 나는 “손님, 제가 퍼스트 클래스 저리가라 할 만큼 특별한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제가 동안이라 신입처럼 보여도 비행 경력이 꽤 오래 되었어요. 오늘 제게 특별한 승객으로 모실 기회를 주세요. 괜히 좌석에 비싼 돈 쓰지 마시고, 그 돈을 즐거운 여행과 멋진 선물을 위해 사용하시는 건 어떨까요?”

나의 진심이 담긴 솔직히 말에 승객은 크게 웃었다.

‘아, 돌려 말하는 나의 센스! 나도 여우가 다 됐네.’


승객들 대부분이 잠이 들거나 지루해질 때쯤 에미레이트 항공의 가장 인기 있는 기내 서비스가 있다. 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목에 걸고 승객들의 소중한 추억을 포착하는 사진작가로 변신한다. 기내에서 잠을 못 이루는 승객들은 구름과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달리는 비행기 안에서 낭만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빨리 뽑기 위해 입김을 호호 불거나 흔들기도 하면서 사진이 선명해지는 순간을 승객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사진의 색상과 형태, 그리고 표정까지 서서히 나타나면 모두들 신이 난다. 난 포토 프레임에 끼워 네임 팬으로 내 이름과 메시지를 남긴다.


에미레이트 유니폼의 트레이드 마크는 태양을 상징하는 빨간 모자다. 

모자에 붙어 있는 흰 스카프를 목에 한 번 두르고 끝을 살짝 접어 넣으면 사막에 부는 바람처럼 주름 모양이 만들어진다. 유니폼 색깔도 사막의 모래처럼 베이지다. 내 빨간 모자와 함께 레몬을 넣은 홍차를 가지고 함께 승객에게 다가간다. 상큼한 레몬 향기가 퍼지면 주변 승객 분들이 향이 좋다며 나른한 눈빛으로 내게 말한다. 

“저도 레몬 홍차 한 잔 주실래요?”

‘능숙하고 친근한 서비스와 마음까지 헤아리는 섬세함에 감동을 받았다’며 회사에 내 이야기를 담은 감사 편지가 매니저를 통해 전달되었다. 나는 승객들 모두 행복하게 성공한 미래의 퍼스트 클래스 고객이 되거나, 우리 항공사의 열정적인 팬이 되기를 바란다. 


비행에서 ‘누군가의 특별한 날 만들기’ 미션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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