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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Jan 09. 2022

꿀알바 찾아 위잉 위잉

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05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했던가. 누군가는 우리의 존재 의미를 호모 라보란스, 일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또한 그 ‘일’이라는 것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경제적 가치로 등가 교환될 수 있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겠다. 그리하여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먹지 말라는 강요가 아니라 먹을 수 없다는 절박과 위기에 가까운 것이다. 줄어가는 통장 잔고가 그것을 쉼 없이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나도 중간에 몇 번 잠깐씩 일을 쉬었던 적이 있긴 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작년 한 해는 새로운 시작으로 인해 일을 하지 않고 오롯이 1년을 보냈다. 나에게는 거의 처음 겪는, 일 없이 보내는 시간이었다. 상반기에는 실업 급여가 그나마 숨통을 터 주었지만 하반기부터는 다시 일을 찾는 것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2020년 하반기 동안 전전하였던 알바 월드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30대 후반에 무슨 알바냐 싶겠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용인으로 옮겨 오면서 처음에는 하반기부터 다시 학교 일자리를 구해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실제로 어느 한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연말에 남편의 근무지 변동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기에 무조건 연말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것이었다. 봄 방학 폐지에 코로나 상황이 겹쳐 대부분의 학교들은 12월을 모두 채우거나 내년 1월로 넘겨 2학기 마감을 하는 추세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 달 이상 용인에 거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출퇴근을 강행해야 하거나, 어쩌면 계약기간까지 일을 할 수 없어 중도에 그만두어야 하는 국면을 맞게 될 것이 뻔했다. 학교에도 어려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먼저 이런 나의 상황을 얘기했더니 채용 관리자이신 다른 분들은 괜찮을 거라고 하셨지만 해당 학교 교장선생님은 난색을 표하셨다. 결국 계약서에 내 이름 쓰고 사인까지 한 마당이었으나 이는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냥 혼자 집에 앉아 있자니 심심하기도 하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겠어서 열심히 알바를 찾아보았다. 용인 집이 워낙 외진 곳이라 차로 출퇴근도 쉽지 않을 것 같고 코로나 상황을 감안하여 재택 알바를 열심히 찾아봤다. 전에 했던 화상 한국어 강의도 괜찮을 것 같아서 좀 알아봤는데 마땅한 자리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있는 알바나 교정, 교열 관련 알바들도 열심히 찾아보았다. 그건 집에서도 일하는 게 가능하고 일거리를 메일로 주고받으면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데이터 가공, 정제 알바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다, 인공지능이다 해서 그런지 AI 관련 일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가공 및 정제 알바였다.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 일거리가 주어졌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은 기계로 수집한 논문 자료의 모든 문장들을 AI 학습용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문장 내 어절 수를 조정하고, 맞춤법에 맞게 고치고, 특수문자, 한자, 영어를 잘 식별할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데이터를 다듬으면 되는 것이었다. 데이터 정제 알바가 끝나갈 무렵, 다른 알바를 하나 더 알게 되어서 겸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AI 학습을 위해 데이터 제작이었다. 다른 점은 이건 음성 데이터 작업이라 주어진 대화를 파트너와 녹음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화문 녹음이기 때문에 시간을 정해 파트너와 온라인으로 만나서 함께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이렇게 8월 말부터 시작해서 지난 12월 초까지 나는 알바 두 탕을 뛰는 전업주부+재택알바생으로 지냈다.  


두 가지 알바를 하면서 배운 점들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우리가 AI에게 학습시켜야 할 내용들이 굉장히 다양하고 많다는 것이었다. 내가 눈으로 섭렵한 논문 자료의 주제들은 역사, 문화, 언어, 교육, 경제, 테크놀로지 등을 총망라하는 매우 다양한 것들이었다. 이렇게나 다양한 분야, 다양한 주제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새삼 놀라웠다. 우리나라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이 지인짜 많으며, 이런 것까지 연구하는구나 싶었다. 대화문도 마찬가지였다. 인간관계에서부터 전문 의료 의학 분야까지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서로 생각하고 말하며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나의 생각과 대화의 범위가 얼마나 협소했던지 새삼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한 번은 대화 주제가 여행이어서 다양한 나라와 도시의 이름과 여행 명소가 쏟아졌던 적이 있었는데 대화 녹음을 마친 파트너와 코로나라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는 판국에 해외여행 다녀온 기분이었다며 그날의 작업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작업의 효율과 숙련에 대한 것이었다. 전적으로 내가 혼자 작업의 모든 것을 통제하여 작업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작업물의 질이 곧 나에 대한 평가가 되어 보수로 직결되는 것을 제대로 목도할 수 있었다. 아, 물론 마감을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처음에는 방법을 잘 몰라서 작업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다. 이 많은 자료들을 다 읽고 처리하는 게 가능할지 의심스러웠다. 그만둬야 하는 건가 생각도 했다.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할까, 도저히 납품 기한에 못 맞출 것 같은데 어떡해야 하지, 그래도 한다고 했는데 어떡해서든 하긴 해야지, 라는 생각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첫 납품 기한을 못 맞췄던 걸로 기억한다. 의뢰받은 데이터의 절반 정도를 먼저 끝내서 담당 매니저님에게 전달하면서 눈물의 이메일을 보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기한에 다 못 끝낼 거 같다고, 죄송의 눈물 아이콘을 주르륵 붙여 보냈더니 담당자님이 괜찮으니까 다 끝내서 보내라고 다독여주었다. 그래서 다시 눈에 불을 켜고 작업을 했다. 차차 눈에 익어가고 나름의 방법을 터득하게 되자 작업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엑셀 파일 정리 스킬도 조금 더 늘었다. 막판에는 마감 기한에 맞춰 작업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녹음 알바도 마찬가지였다. 실수 없이 원 테이크로 음성파일을 만드는 게 편하니까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발음이 뭉개지거나 집중력이 흐려져 대화문을 잘못 읽거나 실수하는 일도 많았다. 막판에는 거의 오류 없이 녹음을 마치게 됐고 실수를 해도 자연스럽게 대화문을 만들어 이어가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역시 실패는 창조의 어머니인 것이지. 


4개월 동안의 투알바생으로 지내보면서 프리랜서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를 고민하는 것으로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과연 나는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사실 글 쓰는 일도 프리랜서긴 한데. 물론 많은 것들을 배우긴 했지만 그만큼 손해를 봐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 나는 알바의 대부분을 나인 투 식스가 아니라 파이브 투 에잇(오전) 또는 나인 투 미드나잇(오후)으로 일해야 했다. 이는 파트너와의 시간을 조정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때로는 마감을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남편은 이건 초과근무 아니냐면서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몇 번을 내게 되물었다. 이런 극단의 시간 사용이 나의 급여에는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회사 다니는 게 낫다고 하는 거지. 다른 하나는 보수 문제였다. 녹음 알바의 경우, 계약서에 지급 일자가 명시되어 있었지만 정산이 익익월로 된다는 것을 한창 작업이 진행되고 나서 알려주었다. 난 익익월이란 말도 그래서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 아니.. 일을 해서 작업물이 나왔는데 정산을 두 달이나 지나서 해준다는 게 말이 돼?? 그러나 어쩌겠나, 그렇게 한다는데. 어쩔 수 없지. 안 그래도 고용 자체가 불안한데 지급의 불안정성까지 묻고 더블로 가는 이런 일을 맘 편하게 버티면서 업으로 삼기가 쉽지만은 않겠다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선불로 먼저 받는다면? 이것도 불편할 걸.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나의 정신력과 목과 허리의 긴장도와 작업 시간을 갈아 넣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꿀알바를 찾아 위잉 위잉 날아다닌 결과, SATC의 캐리처럼 사는 삶은 정말 판타지라는 걸 난 이번 기회를 통해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칼럼 하나 쓰면서 마놀로 블라닉 스트래피 샌들을 몇 켤레씩 사고 뉴요커로 살아갈 수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한 문장 당 내가 얼마를 받고 일했는데.. ㅠㅠ 이 일을 하면서 읽은 이다혜 작가의 <프리랜서로 일하는 법>이라는 책이 잠깐 프리랜서의 일상의 맛을 본 나에게는 참 좋은 설명서가 되어 주었다. 책의 부제가 ‘나를 지키며 지속 가능하게 일하는 태도의 발견’이라 붙어있는데 이는 프리랜서라는 직업,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나를 지키며 지속 가능하게 일하는 태도를 잘 배운다면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어떤 일을 할 것이냐 보다는 어떻게 일할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제 새롭게 나는 다시 일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도 어떻게 일할 것인지 더욱 고민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 자신과 나의 사람들을 지키면서 일을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의 새로운 터전인 이곳에서 허락해주시기를 기도한다. 언젠가 또 만나자, 알바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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