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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 Sep 02. 2021

도시를 벗어나

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01

  난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서울에서 초중고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고 서울에서 10여년간 직장 생활을 했다. 나를 만든 건 장위동의 구불구불한 골목과 방학동의 푸르른 뒷동산, 종로와 청계천의 불빛과 도서관, 신촌과 상수동 골목 사이의 작은 카페와 책방들이었다. 캐리 언니에게 뉴욕 시티가 영원한 데이트 파트너였던 것처럼 나에게는 서울시가 내 배경의 전부였다. 그런 내가 서울을 떠나게 되다니. 이렇게 칼럼 제목이 바뀔지는 나도 몰랐다. 그것도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이유로 말이다.


  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이 나의 플러스 원이 되어 함께 하는데 이르기까지. 그 과정이 길다면 길었고 쉽지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 모든 길을 지나 나는 나를 만들어 준 서울을 떠나 이 곳 경기 남부로 자리를 옮겼다. 본가에서 짐을 빼는 날, 이사업체 기사님은 내가 내놓은 이삿짐 상자들을 보시고는 임용 시험에 합격해서 학교 따라 이사 가는 거냐고 물어보셨다. 나중에 정리하기 쉽게 하려고 두세 개의 상자에 임용서적이란 이름을 붙여 두었더니 미루어 짐작하시고 그러셨던 것 같다. 그거 아니고 결혼해서 이사하는 거라고 대답했는데 그렇게 답하는 내가 새삼 어색했다. 그전까지는 도무지 나에게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중요하지 지역은 별로 상관 없다고 난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래서 결혼 상대자로 고려해볼 만한 사람들을 거주 지역에 상관없이 소개받았다. 경기, 전라, 경상을 넘어 때로는 태평양을 건너기도 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게 나의 일이 될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잘 안됐던 건가? 내가 좀 더 공격적으로(?)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어필했다면 달라졌을까. 그렇지만 정말로 난 어디든 갈 맘이었다. 단, 그가 정말로 그럴만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생각해보면 결혼의 경우, 보통은 아내가 남편을 따라 근거지를 옮기는 게 대부분이지 않나 싶긴 하다. 물론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아는 결혼한 언니들이나 동기들만 해도 결혼 전까지 자신들이 터전으로 삼던 곳에서 결혼으로 남편을 따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반 이상이었다. 그런 면에서 여자 쪽에서 최대한 융통성을 갖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이제 그 상황을 내가 직면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 경기 남부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작은 동네다. 용인이라고 하면 에버랜드랑 민속촌 말곤 아는 게 없었는데 여기 와서 알고 보니 용인은 엄청 큰 시였다. 신도시로 알려진 수지와 이케아 매장이 있어 유명한 기흥이 모두 용인시에 속한다. 요즘 핫플레이스로 뜬다는 동백동도 용인에 있는데 우리 집에서는 한참이다. 우리 집은 그 큰 용인 중에서 유명한 쪽 말고(ㅋㅋ) 동쪽으로 조금 더 치우쳐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언덕 산을 하나 넘으면 어느 영화 때문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곤지암이다. 집 앞에 작은 도로가 하나 있는데 요즘 이곳 인근에 민자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라 이 작은 도로로 하루에도 대형 덤프트럭이 몇 대씩 왔다 갔다 한다. 이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나오는데 길에 인도가 없다. 걸어서 가려면 알아서 차를 잘 피해 가야 한다. 우리 전북 시골 외갓집처럼 말이다. 걸어 갈 만한 거리에 있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다. 우리 집을 하천과 대형 창고, 그리고 자동차 공업사가 둘러싸고 있다. 예전처럼 장을 보러, 아니면 커피를 사러 카페에 걸어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된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남편도 여기로 오기 전까지 내내 서울에서 살았다. 경기 남부로 오기 전에 남편은 출퇴근을 인천 송도로 해야 했지만 계속 신촌에 살았다고 한다. 우리 둘 다 이렇게 도시를 벗어나 살아 보기는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아직 우리는 아니, 나는 심정적으로 서울을 떠나오지 못한 것 같다. 아직은 차로 운전하며 근처를 오가는 것보다는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니는 게 더 편하고 용인중앙시장보다는 방학동 도깨비시장이 익숙하니까.


  이 칼럼의 레퍼런스인 SATC에 비슷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전 시즌을 통틀어 캐리의 남자들 중 단연 아메리칸 드림맨인 에이든. 시즌 4의 한 에피소드에서 그는 뉴욕 외곽 지역에 자기 시골집을 하나 마련하고는 거기서 주말을 같이 보내자고 캐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전형적 도시 여자인 캐리는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사랑의 힘으로 겨우 승낙을 하고 마침내 도착한 시골집. 에어컨도 없고 휴대폰도 잘 터지지 않는 그곳을 찾아 오는 건 다람쥐들 뿐이고 그들의 방문에 캐리는 비명을 지르며 기겁을 한다. 결국 적응이 안 돼서 중간에 뉴욕으로 다시 되돌아오기도 한다. 캐리는 잠깐 주말만 지내러 가는 거니까 돌아오는게 가능하지만 나는 시티에 돌아갈 집이 없다. 여기가 내 집인 걸. 여름이라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이런저런 이름 모를 벌레들을 비명을 지르며 쫓고 잡을 수밖에. 


  여기서 지내면서 다시 생각난 건 호주에서의 삶이었다. 영어 배운다고 무작정 떠났던 호주 시드니에 도착한 내가 정작 살았던 곳은 시드니 다운타운이 아니라 트레인으로도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외곽 업타운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화려한 저녁의 삶을 누리던 나에게 오후 5시 이후 모든 곳이 문을 닫는 외국의 가정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은 한동안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거기에서 내가 찾은 삶의 낙은 먹고 살아야겠기에 어쩔 수 없이 터득한 요리 실력, 그리고 가끔 다운받거나 빌려봤던 영화, 한국 예능 프로그램, 미드 같은 것들이었다. 지금도 거의 비슷하다. 자연스럽게 내가 식사 담당이 되었기에 요리 실력을 날로 벼리니 할 줄 아는 요리 가짓수가 늘었다. 인터넷만 있으면 언제든 접속 가능한 넷플릭스와 왓챠가 무료할 즈음에는 단짝이 되어 준다. 호주에서의 시절을 생각하면 업그레이드가 확실히 됐다.


  얼마 전, 지난하고 무료하기만 한 줄 알았던 여기에서의 생활에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밤에 남편과 산책을 하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서울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는 이렇게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구나. 그리고 며칠 후 새벽. 이른 새벽에 나간 남편이 하늘에 별이 엄청 많이 떴다고 말해주어 바로 밖으로 나가보았다. 쏟아지는 별들이 내 마음에 날아들었다. 성능 좋은 아이폰이 있어 얼마나 감사했던지. 바로 사진으로 그 별밤을 남겨두었다. 낮에는 우리 집 창문을 뒤덮을 정도로 생명력 넘치는 야생 풀들과 여름을 보내는 매미들의 가열찬 울음소리가 함께 한다.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복숭아색에서 자몽색이 되었다가 보라색으로 변하는 자하(紫霞)의 시간을 여기서는 직접 마주할 수 있다. 회색 빛 아파트와 빌딩 숲, 그리고 고층 사무실들을 밝히는 형광등 불빛들과는 전혀 다른 풍경들이 여기에 있다.  


  서울을 떠난 삶을 이제 겨우 두 달 보름을 살아 본 내가 도시와 여기의 삶을 비교한다는 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월든으로 떠난 소로가 말했던 것처럼 여기에서 이전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즐거움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다. 이 곳에 머무는 동안 도시를 벗어나 찾을 수 있는 보물들을 더욱 발견해가는 시간들로 채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월든>을 읽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나의 <월든>을 완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 날들은 결국 나에게 매직아워로 남을 것이다. 


+ 물론, 여전히 나는 연남동의 리스본포르투가, 해방촌의 스토리지와 고요서사가, 상수동의 앤트러사이트가 그립다. 



# 조용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런 생각에 빠져 있자니, 자연 속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 그리고 집 주변을 에워싼 모든 소리와 풍경 속에, 실로 달콤하고 너그러운 우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갑자기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를 지탱하는 대기처럼 무한하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친근한 감정이었다. … 자그만한 솔잎 하나하나가 공감으로 확장되고 부풀어 올라 내게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황량하고 쓸쓸하다고 말하는 장소에서조차 내게 친근한 어떤 것이 존재함을 확실히 느꼈다. 내게 피를 나눈 친족처럼 느껴지거나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반드시 인간이거나 이웃 사람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내게는 그 어떤 장소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 고독, <월든>, Henry David Thor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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