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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 Pisces Feb 16. 2021

맛의 기억

로워 퍼시픽 하이츠-웨스턴 에디션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두 번의 이사, 세 곳의 집과 만나게 되었다. 


처음 도착했을 땐 팬데믹 이전이라 오래된 집의 방한칸에 욕실을 셰어 하는 가격이 다른 도시에서는 원베드룸 혹은 투베드룸을 구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집을 해도 크게 문제는 없을 정도로 나름 괜찮은 곳들만 본 것 같은데, 최종 선택은 내 욕실이 있고, 회사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이고, 가구랑 침구까지 갖춰져 있는 집이었다. 회사 지원금 외에 내 돈을 매달 500달러씩 추가로 내야 했는데 차비와 가구 등을 생각해 단기계약으로 해서 들어갔다. 무엇보다 가족이 사는 집의 방한칸을 내주는 것이라서 소셜 크레디트 없는 갓 도착한 외국인 입장에서는 편리한 부분이 있었다. 


부시 스트릿에 위치한 집은 광둥 성 출신의 가족이 사는 집이었는데, 80대 노부부와 매우 동안인 50대 딸, 9살 된 강아지가 살고 있었다. 강아지의 존재는 이사 온 날에서야 나타났는데 내가 강아지를 좋아해서 다행이었지. 


보스턴에서 태어난 그 집 딸은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하고 인형회사에 오래 다니다가 북경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고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서는 조경 디자인을 하는 미적 감각과 약간은 creepy 한 부분도 있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식당을 운영한 노부부는 매일 오랜 시간 거의 하루 종일 요리를 했고 홍콩에 유독 애착이 있던 나에겐 광동의 흔적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100년이 넘은 목조주택의 내 방은 원래 dining room이었는데 옛날 집이라 dining room도 문이 있어서 매우 큰 방으로 사용이 가능했다. 


 

 퀸사이즈 침대와 옷장, 커피 테이블과 소파와 테이블을 놓고도 충분한 공간이었다. 팬데믹 전에는 2주에 한번 클리너가 와서 청소를 하고 침대 시트까지 갈아주었다. 사실 작은 저 다이슨 전자제품에 마음을 뺏긴 듯. 


이렇게 보면 괜찮아 보이나, 밤에 불을 끄고 잔 적이 없을 정도로 뭔가 무서운 느낌이 있었던 곳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오쏘몰을 3개월치 가지고 와서 매일 하나씩 먹었다. 

외국 집 치고는 작은 집에서 나의 느낌을 온전히 가진 한순간이란 매우 귀한 것이었다. 위층 3명의 아이가 뛰면 샹들리에가 흔들렸는데도 집주인들은 아무 말 안 하고 오직 잘 지내는데만 집중했다. 

집주인은 취침 전에 부엌 커피메이커에 원두와 물을 넣어두고, 그 누구든 일등으로 일어나는 사람이 버튼만 누르면 바로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했고, 나는 내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매일 원두 버튼을 눌렀다. 아침마다 매우 진한 커피를 내려 크림을 넣어서 한잔 마시는 시간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고, 특히 팬데믹 이전에는 저렇게 진한 커피를 한잔 마시고 팔로알토, 버클리 등지로 출장을 가는 날도 있어서 더욱 신선한 기억이다. 


집세가 비싸고 소음이 심하고 뒤뜰에 지나치게 무성한 나무와 미국에 드문 대나무 숲이 바로 옆에 붙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스산한 소리가 나는 등 뭔가 괴기스러운 특징이 많아서 다른 집을 찾아 나오고 다른 세계를 보게 되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 또 다음 인연을 만나야 해서 그렇게 연결되었던 것 같다. 3개월 계약기간을 다 채우고 2달을 더 있다가 이사를 나왔는데, 끝까지 친절했던 노부부와는 달리 그 언니는 친하게 지내다 서운해서인지, 아니면 더 이상 돈을 지불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인지 뒷모습이 달랐다.  

1층인 집 내 방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면 이렇게 대형 화분들이 있었다. 


이사 온 다음 날 그 집 언니가 베이 지역을 보여준다고 하여 같이 차를 타고 나섰다. 부시 스트릿을 따라 차를 타고 오면 이런 모습이 나온다. 왼쪽은 차이나 타운의 입구이고, 오른쪽은 명품 샵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스트베이 지역을 달리던 중에 찍은 랜덤 한 사진. 예전 윈도의 메인 화면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곳이 근처에 있었다. 

식물들을 파는 곳에 도착. 특별할 것은 없었고 식물이 많은 곳이었다. 

들판에 드문드문 나무가 서있는 모습. 소도 풀을 뜯는다. 

묘목상에서 바라본 이스트 베이의 모습. 

이 언니는 과거에 화려한 삶을 살았는데 뭔가 그 과거에 얽매여 있었고 같이 있는 시간 동안 과거 이야기만 계속했다. 묘목상은 애교인데 고철상, 재활용 더미가 있는 곳을 유독 자주 찾아간 언니였다. 

마운틴뷰 시내 

이날 마운틴 뷰 crepevine에서 먹은 크레페 요리. 맛은 그저 그랬는데 사실 돈으로 엮이지 않은 관계였다면 종종 이런 식사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재미있었을 것 같다. 

이스트베이를 둘러서 산타 클라라 지역으로 넘어오면서 도로의 모습. 

디자인 디스트릭트를 통해 다시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들어오던 모습

늘 냉장고에 있던 닭고기 요리. 

늘 냉장고에 있던 돼지고기 조림 요리. 이걸로 볶음밥, 면요리 등 만능 요리를 하셨다. 


하이라이트는 이사온지 얼마 안돼 있었던 음력설이었다. 

요리를 하는 부녀의 모습. 할아버지가 모든 요리를 다하고 언니는 세팅을 했다. 

아름다운 세팅이었다. 

주로 치킨스톡을 활용해서 만든 수프

스프링롤

해산물과 고기, 야채를 각각 따로 볶아서 로메인 잎 위에 얹어먹는 요리이다. 

평소 못 보던 식기와 커트러리들로 예쁜 식탁

이렇게 싸서 먹으면 갖은 재료들이 훌륭하게 어우러지는 맛이었다. 물밤이 사각 하게 씹히면서 전체적 조화를 잘 잡아준다. 

대를 이어져 내려온 해초라고 한다. 건조한 해초 더미를 계속 대를 이어 가지고 오면서 특별한 날에 불려서 사용하는데, 직접 생선살을 다져 만든 어묵을 해초로 감싸서 튀겨낸다음 팽이버섯과 함께 낸 요리이다. 

조개를 중국 간장 소스로 볶은 요리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 들어가야 좋다고 얼굴이 나온 닭요리를 내오셨다. 닭요리에 핏기가 보이는 점은 조금 그러하지만 흥미로운 요리였다. 
차이니즈 브로콜리, 가이란 요리. 홍콩에서도 아주 좋아했다. 


가운데 돼지고기 요리는 광동요리 중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다. 바삭한 껍질과 탱글한 속살의 만남. 저 요리는 가게마다 맛이 달랐는데, 최고 버전은 홍콩 세레나데 레스토랑 
던지네스 크랩요리. 이 게는 살이 많은데 맛은 꽃게나 킹크랩이나 영덕대게보다는 못하다. 


귀한 손님에게 딱지를 낸다고 하면서 나와 이 집 며느리에게 하나씩 주셨다. 
이 디저트는 코코넛워터, 아몬드 버터, 치아시드 등을 이용해 젤라틴으로 굳힌 가벼운 디저트


두 번째 집으로 이사 가서는 두 명의 다른 언니들과 지내면서는 이러한 풍요로움은 부족했지만 또 다른 부분의 재미와 발견과 고민이 있었다. 거기선 나머지 룸메들은 커피를 안 마셔서 아침마다 프렌치 프레스로 내린 커피를 마셨고, 이제 나만의 스튜디오로 이사 온 지금은 매일 내가 좋아하는 원두를 머신으로 연하게 내려 마신다. 좋은 원두의 맑은 맛을 즐기다가 오늘 저녁 불현듯 첫 번째 집에서의 코스트코의 쓴 원두에 크림을 넣어 마시던 커피가 생각나서 그렇게 한잔을 만들어 글을 쓰고 있다. 


저 커피와 함께 미국 식빵 참 맛없다고 느꼈던, 그러면서도 오묘한 매력이 있었던 orowitz의 버터밀크 브레드 한 장에 달지 않은 유기농 아몬드 버터만 바른 토스트가 부시 스트릿 집에서의 아침식사에 대한 기억이다. 


처음 저 집을 떠날 땐 그동안 너무 집세를 바가지를 쓴 것 같아서(-그다음 집은 지은 지 10년 된 모던한 집의 더 넓은 욕실 마스터 베드룸을 450달러 저렴하게 들어갔다. 팬데믹 이전 가격이었다.) 모두 잊고 싶었는데 지나고 보니 처음 와서 신기했던 하나하나의 일상은 추억이 되었다. 나름 다정하게 지낸 일상도 의미가 있었고, 미국 가정의 가구 배치 방법은 특히 인테리어 업자이던 그 언니의 감각을 보고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두꺼운 카펫 문화, 베개 4개 쓰기, 침대 시트와 속 시트, 듀벳 커버를 모두 갖추고 2주에 한 번씩 교체하는 시스템을 내 공간을 갖게 된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계산이 빤한, 그러면서도 늘 다정하게 행동했던 그 집 언니와는 달리, 집 어른들은, 특히 80대에 매일 요리를 하는 할아버지는 그저 음식을 해서 먹어라고 하시기에 바빴고 나는 그 음식들을 매우 좋아했다. 이러한 맛의 기억이 독특한 100년 집 방 한 칸에 매달 2200 달러라는 거금을 내고 층간 소음에 시달리고, 세든 사람은 쪽문으로 다니라는 이상한 규칙에 대한 나쁜 기억을 덮어버리기도 한다. 


좋은 기억이 강해지는 것을 보니 이미 아주 과거가 되었나 보다. 


  어느 날의 풍성한 아침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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