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희는 시골에 오기 전 우리 집 막내 고양이었다.
5년 전 여름, 장마가 한창인 어느 휴일 아침이었다. 여느 때처럼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러 대문 앞 진입로로 나갔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사료 그릇 옆에 못 보던 종이 상자가 놓여있었다. 다가가서 상자 안을 보니 어린 고양이가 앵앵대고 있었다. 6개월이 채 안 돼 보였다. 간식 통조림이 뚜껑이 열린 채로 고양이 옆에 함께 있었다.
누군가 이 고양이를 두고 간 것이라 직감했다. 이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고민이 됐다. 이미 우리 집에는 여섯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었으므로, 더 이상 고양이를 들이지 않기로 아내와 합의한 터였다. 지금껏 고양이를 집으로 들인 건 모두 아내가 했으므로, 이 합의는 당시 점점 늘어나는 고양이를 못마땅해하던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상자 안 고양이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먹이만 챙겨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 한 곳에 그 고양이가 자꾸 들락거렸다.
다음날 장맛비가 세차게 내렸다. 상자 안에 있던 고양이가 걱정돼 우산을 쓰고 나가봤다. 그 고양이는 집 앞 골목 벤치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빗줄기 너머로 나를 보더니 앵앵대기 시작했다. 무사한 모습을 확인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비가 그치고 다시 아까 그 골목으로 나가 봤다. 그 아이가 여전히 골목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자, 나에게 총총 걸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집으로 발길을 돌리자 졸졸 따라왔다. 급기야 대문으로 들어와 마당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집안도 기웃거리며, 마치 집을 보러 온 손님 같았다. 이곳이 마음에 드는지 자리를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지금껏 내 손으로 고양이를 들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무엇에 홀린 듯 고양이를 안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뭐, 여섯이나 일곱이나.” 나는 혼잣말을 했다.
이렇게 복희는 우리 집 막내가 되었다. 내가 자진해서 고양이를 집으로 들이리라곤 상상도 못 할 때였다. 막상 고양이가 나에게 다가오자 나는 그 인연을 피할 수 없었다.
복희는 어린 고양이답게 이미 집에 있던 형, 누나들과 살갑게 지냈다. 형, 누나들도 복희가 싫지 않은지 자기 새끼 대하듯 했다. 그런데 복희가 사춘기가 되자, 성격이 까칠해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와 달리 함부로 자기 몸을 만지는 걸 싫어했다.
“그래, 너도 이제 다 컸으니까, 함부로 손대선 안 되겠지.”
그렇게 우리 집에 들어온 복희는, 지금은 집안에서 거의 볼 수가 없다.
시골에 오고 3년이 지난 지금, 복희는 하루 종일 마당이나 집 주변에서 지낸다. 지나가던 사람이 보면 길고양이로 오해할 수도 있다. 밥그릇도 앞마당에 따로 챙겨 놓는다.
집으로 그토록 들어오고 싶어 했던 아이가, 이제 집 바깥에만 있으려고 한다.
세월이 더 흐르면 너도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오겠지. 언제든 괜찮아. 우리는 늘 널 기다릴 테니까. 그게 가족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