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습하거나 비가 오면 간혹 집 안에 민달팽이가 눈에 띈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하나나 둘이 거실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민달팽이는 달팽이와 달리 나선형 모양의 딱딱한 집이 없다. 민달팽이는 맨몸 그대로 자신을 노출하고 있는 셈이다. 멀리서 보면 제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아주 천천히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듬이를 앞뒤 좌우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바닥을 쓸 듯이 나아간다. 멈춰 있는 듯하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움직일 때마다 몸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모양이 마치 젤리 같다.
나는 한동안 민달팽이를 무심하게 바라봤다. 그러다 어느 날이었다. 민달팽이가 거실 벽에 접착제처럼 붙어있는 모습을 봤다. 평소와 달리 색깔은 거무튀튀했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냥 스쳐 지나쳤는데, 다음날에도 같은 자리에 그대로 붙어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 살펴보니, 민달팽이가 바짝 마른 채로 굳어 있었다. 죽은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사체는 마치 말린 멸치 같았다. 파리채로 살짝 밀었더니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 심장도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작은 생명이 이 집의 건조함을 견디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묘하게 서늘했다.
그 뒤로 집 안에서 민달팽이를 보면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민달팽이를 발견하면 우선 일회용 비닐장갑부터 낀다. 민달팽이에게 다가가 비닐장갑을 낀 손가락 위로 올라오게 한다. 민달팽이를 손가락 위에 올린 채 앞마당으로 나가서 촉촉한 흙 위에 놔준다.
민달팽이를 보며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달팽이가 얹고 다니는 집을 ‘짐’으로 생각해 ‘달팽이가 민달팽이로 진화’한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민달팽이가 자기 보호를 위해 집을 만들어 ‘민달팽이가 달팽이로 진화’한 것인지.
나는 ‘달팽이가 민달팽이’로 진화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집이라는 짐을 벗어버린 민달팽이가 달팽이보다 더 자유로워 보인다. 어쩌면 내 안의 짐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그 작은 생명에 비쳐 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