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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 Sep 19. 2019

16 Sep : 당신이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모바일 보헤미안> 혼다 나오유키&요스미 다이스케 

451 면접의 공식 질문 

1.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세요

2. 자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위 같은 질문은 우연히 시작됐다. 함께 면접을 보던 선배가 위 질문을 해보자는 의견을 즉석에서 제안했고 당장 거쳐야 할 관문은 나머지 사람들의 '오 좋은데?' 라는 반응뿐이었다. 그렇게 우주만큼 거대하고 백지처럼 심플한 이 질문에 수 십명의 지원자들이 답했다. 애초에 대답이 얼마나 멋진지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내용에 집중도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답을 할 수 있는가 였다. 

'대학? 행복? 그것보다 중요한게 얼마나 많은데" 그래 맞다. 위 질문은 그것들이 특출나게 중요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그저 궁극적인 한 질문에 보편적 형태이기 때문에 선택했을 뿐이다. 그것은 무엇을 원하는가? 다. 본연의 모습으로 가장 많은 가치를 가진 20대 초반의 시기. 청춘의 시기에  아주 비싼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대학에 들어온 후 부터는 누구에게 위임할 수 없는 책임의 무게는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다들 대학에 가니까'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또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남과 같아보이고 싶은 욕망에 근거 했다고 자신의 선택을 이해해야 한다. 


제 대답은요..

그 중요성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답하지 못한다. 그럴듯하게 답을 해도 '그런 생각은 해본적이 없어서'를 꼭 덧붙인다. 누군가 지적하던 '어떻게 보면' 이라는 수식어와 같이, 날아오는 비판은 피하고 스스로의 답을 (답이 부족한 이유를) 정당화 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의 목적을 빗겨나간 방어기에  그 어떤 것도 피할 수 없다. 마치 허벅지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려 머리를 보호하는 격이다. 최상의 답은, 컨텐츠가 아니라 신나서 대답하는 바로 그 태도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분야의 이야기를 할 때면 극도의 흥분상태가 된다. 그래서 평소 조용하던 친구들도 특정 이야기에서는 얼굴이 벌개지며 목청을 높일 때가 있다. 수업 중에도 자신이 공부했던 내용이 나오면 기분 좋은 묘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질문을 늘 마주하고 사는 사람은 위 같은 질문을 했을 때 미친 사람처럼 이야기 한다. 면접장은 만난지 2분 채 되지 않은 사람들의 20년의 생애가 오고가는 TMI 난장판이 된다. 


그럼 너는?

청춘은 괴롭다. 대학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도 그랬다. 그리고 나도 괴롭다. 정신없이 유튜브를 보다 실수로 누른 홀드키에 화면이 꺼진다. 어두워진 화면에 얼굴이 비친다. 온라인 세상이 잠긴 화면의 어둠보다 "더 어두운건 내 미래다!"며 자조섞인 농담을 던진다. 나 역시 늘 잘못된 선택을 한다. 모든 경험에는 얻을게 있다고 믿는 나지만 잘못들어선 길은 있기마련이다. 길 조차 아니었던 경우도 허다하다. 밤마다 고통스러운 내일을 상상하며 잠이들고 그 예상은 늘 적중한다. 예견할 수 있는 고통을 겪은 원숭이가 그럴 수 없는 고통을 받은 원숭이보다 더 큰 충격을 받는다는 유명한 실험의 결과처럼, 자괴와 불안에 장악된 나의 방안에 또 다른 밤이 찾아온다. 하지만 고통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고민의 끝에 길이 있다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운 좋게 세상 빛을 보게된 우리는 생애 마지막까지 지켜야할 한 가지 임무를 타고났다. 바로 나자신 먹여살리기라는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것이다. 더욱이 생산 시스템의 기반이 분업화인 현재는 자급자족이 어려운 터라 직장을 가지거나 사업을 하는 등 돈을 벌어야 한다. 나날이 중요해지는 경제력 그리고 경제력이 제공하는 부수적인 가치들 그 때문인지 취업 시장은 전쟁터다. 그런 시류를 반영하듯 대학도 더이상 더 큰 학문을 하는 곳이 아니라 취업 준비 센터로 전락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기성 세대가 고안해 낸 사회적 시간이라는 가치에 알레르기를 가진 우리 세대. 밀레니얼이라는 이름으로 윗 세대로 부터 자유분방함을 인정받은 우리는 진정으로 그러한가? 사회적 가치를 따져볼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기는 했나? 의문이다. 자유롭게 살고싶다. 잘 생각해보면 자유로운 삶은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심소욕 불유구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고 하고자 하는 일들이 대게 기존의 질서와 부합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가치를 따를 것인가? 당신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하지만 '당장'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시간을 들여서 착실히 준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오씨도 나도 가장 자기답게 있을 수 있는 장소인 지금의 홈 플레이스로 이주하기 까지 약 15년이 걸렸다. 그 후 국경을 넘어 이동하며 사는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하기까지 다시 4~5년이 걸렸다. 모바일 보헤미안이 되는 데 2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셈이다.   


만일 여러분이 20대라면 '20년'이라는 세월은 터무니 없이 길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기술의 극적인 발달 덕분에 그 기간은 절반 이하로, 아니 3분의 1 이하로 떨어질 게 틀림없다. 현실에서는 이래저래 답답하고 고민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것에 지지말고 '자기자신을 잃지 않는 노력'을 계속하기 바란다. 


라이프 스타일을 우선 순위에 두라

삶을 디자인 하라. 

당신이 살고싶은 곳은 어딘가?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모바일 보헤미안이 제시하는 바는 이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을 먼저 정하고 그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일상의 많은 부분이 기계적으로 작동한다. 사는 곳은 직장 근처, 결혼 시기는 직장이 안정되면,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은 일이 없는 날. 자신이 그 직업을 위해 태어났다고 할 만큼 커리어에 관심이 지극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원하는 삶과 일을 분리하고, 가능한한 피하고 싶은 일상과 짧고 간헐적인 일탈로 그 균형을 맞추려 한다. 하지만 압도적인 비율로 삶을 구성하는 일상에서의 불만족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일상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채워라.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고 혼다와 요스미는 말한다. 직장을 갖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 쏟았던 노력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며,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라이프 스타일 자체를 직업화 하라고 말이다. 과거에는 이것이 불가능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랩탑 데스크탑 등 전자기기로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유튜브나 핀터레스트 등 자신의 재능 혹은 개성을 드러낼 창구도 많아졌다. '그건 그사람들이 잘나서 하는 이야기지' 라는 냉소도 통하지 않는다. 분야에 따라 기술의 난이도와 그 노력이 상이하겠지만 모바일 보헤미안에서 제시하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다.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프로그램을 개발하든 컨설팅을 해주든 상관이 없다. 그래서 이들이 말하는 모바일 보헤미안이 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하고 그 대부분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탐구하는데 소요된다. 


여러분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을 하며 살아가기에 적합한 장소는 어디인가? 회사와 가까운집에서 출퇴근 하는 편리한 환경을 버리면 위험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공포는 진짜인가? 그 리스크는 절대적인가? 그저 억측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기 바란다. 


나는 꽤 그들의 방향성에 공감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생은 장기전이기 때문이다. 당장 눈 앞에 놓여있는 퀘스트들은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하지만 그 넘어의 진리를 볼 수 없다해도 확실한 몇가지는 인생은 아주 길다는 것과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수 백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당장은 길이 없어 막막할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내 개성에 맞게 기존에 고안된 길이 있을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그 꿈에 도달하기 까지 수 십년이 걸린다 해도 그 성취는 무엇에 비할 바 없이 값진 것이다. 나도 당장 이들처럼 살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의 매 순간은 그들의 빅 퀘스쳔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옛날이 좋았다" 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만일 여러분 주변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리를 두기 바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도 앞으로도 흥미진진할 테니까 말이다. 미래의 세계는 혼란스럽겠지만 그만큼 재미있을 것이다.



모바일 보헤미안으로 살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되었다.
기술이라는 무기도 얻었다.
남은 것은 여러분의 결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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