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일의 건축, 경회루(7)

- 경복궁 경회루에 숨어있는 비밀코드

by jskim

경회루를 지은 건축가 박자청은 신분이 비천하다. 노비는 아니었지만 공신의 家人이라고 했으니 하인이나 집사 같은 일을 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는 정식 학문을 배운 사람도 아니고 학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종의 신분은 아니니 그의 파리 파리한 성격으로 일처리는 잘했는지 주인인 황희석의 눈에 들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궁궐 문지기는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다.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 경호원이나 경비병인데 신원 보증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황희석은 조선의 개국 2등 공신이니 간단히 추천만 하면 취직이 되었을 것이다.

궁궐지기가 되는 데는 황희석의 도움이 있었으나 이 또한 박자청이 성실하게 일을 잘해서 그리된 것이니 박자청은 자신의 노력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통시대는 신분제 사회라 신분을 넘어 출세하기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 이 경우 시대를 잘 만나거나 주인(멘토)을 잘 만나 운수가 대통일 때는 자신의 능력으로 삶을 개척할 수 있다.

박자청의 경우가 그러했다. 우선 시대를 잘 만났다. 조선이 무장인 이성계에 의해 건국되는 시기로 변혁의 시대였다. 고려에서 무시당한 계급이었던 무인이 출세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박자청은 두뇌가 명석해서 시류를 파악할 줄 알았다. 내가 어떻게 해야 출세할 수 있을까. 그런데 자신이 주인으로 모시던 황희석이 개국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 비록 하인으로 있으나 그의 눈에 잘 들면 미관 말직이라도 취직은 가능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당시 궁궐이라 함은 개경의 수창궁일 것이다. 1392년 7월 17일 이성계가 수창궁에서 왕으로 즉위했기 때문
이다. 1393년 박자청은 황희석의 추천으로 낭장이 되어 궁궐 경비병으로 들어갔다. 당시 궁궐 수비는 내시부가 맡고 있었다. 실록에 그가 내시 출신이라고 적은 것은 이 때문이다. 후일 내시부에 환관들이 임용되면서 내시=환관의 등식이 성립하지만 이때의 내시부는 무인들이 담당하고 있었으니 그들은 환관이 아니었다.

박자청은 낭장(병졸의 우두머리)의 신분으로 수창궁의 궁문을 여닫고 지키는 일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는 그냥 역사에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졸병의 일상사에 불과할 것이다. 아마 그의 운명이 평범했다면 궁궐 문지기에서 출발하여 왕자들 가명이나 군졸로 일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박자청이란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사건이 그를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했다. 1393년 어느 날 궁궐 정문에서 일어난 돌발적인 사건. 이 사건으로 인해 궁궐 문지기 박자청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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