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손을 베었다.
남의 말과 글들을 충실히 받아 적는
순하고 해맑은 얼굴의 느닷없는 공격
칼날도 아니면서 매섭게 날카롭다
함부로 구기고 찢어서 버린 것들의 반란
하얀 내장을 칼처럼 벼린 연약한 고슴도치
제 목숨을 담보로 성가시게 그어댄다
유순한 것을 유순하게, 선량한 것을 선량하게
귀하게 대하는 법을 몰랐던 나의 오만함이
순결한 눈 위에 붉은 얼룩을 남겼다.
우주를 휘돌아 귀하게 온 너일 텐데
비수를 품도록 성나게 해서 미안해
그게 어떤 것이든 함부로 대하지 말 것
연약함이 뾰족해지기 전에 애틋하게 포옹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