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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푸는 밤

by 레알레드미

혼을 빼는 보고서를 만들다

문득 내 무너진 노동의 자존감이

오타 난 문서 속에서 길을 잃었네.

밥줄을 잡혀하는 일이라지만

내 청춘의 시간들을 이 일터에서

고된 노동도 놀이라고 생각하며

수많은 문서에 세공한 고단한 땀방울들

승진의 푯대에서 희망이 나부낄 때마다

결승점이 보이지 않아도 달음박질했었네.

이제 귀밑머리 허연 늙은 나이에

젊지 않은 자신의 무능을 타박하며

검은 먹구름 몰고 오는 희미해진 눈가가

끝내 서류 더미로 촉촉해질 무렵

희망 고문으로 노동을 착취한 세상을 향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밑바닥에서

아직도 이렇게 무능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인간의 예의를 저버린 상사의 타박과

굴욕을 견뎌야 하는 현실에 절망하네.

헛되고 헛된 노동의 시간이라 적었지만

무슨 미련인지 열심히 일한 자신을

차마 지우지 못해 이 모양이 꼴이면서

축 늘어진 그림자 홀로 포장마차에 들러

술잔에 넘치는 누구의 울음인가 나를 취하게 하네.

어둠을 헤매는 갈지자걸음 위로 달빛조차 숨은 밤

아주 작은 보통보다 더 작아진 어깨는

더 깊어진 한숨과 더불어 어깨동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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