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城, 쇼우와 62년 - 복거일 저
조선인 히데오는 시를 좋아하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를 쓰며 한 가장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30대 후반의 회사 중견 사원이다. 제법 큰 회사로서 그는 직무에 충실하고 중요한 부문을 담당하며 사내 업무 특성을 잘 파악하면서 일 처리를 제법 꼼꼼하게 처리하고 부하 직원도 충실하게 챙기는 동시에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온건한 인상을 풍기는 중역이다. 가정 또한 충직한 남편이자 자상한 가장이기도 하다. 상사의 신임과 주위 사람들과의 건전한 관계를 맺으면서 때때로 저녁 퇴근길 술 한잔에 인생 단맛을 보며 낭만과 풍부한 정서 표출로 심금 어린 시를 쓰는 작가이기도 한 평범한 도시민이다.
시대적 배경은 현대이나 사회 정치적으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쇼가 62년, 즉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지 않고 계속 일본의 식민지 상태로 있는 상황이다. 조선이란 지역 이름과 일본은 내지로 표현된다. 이야기의 사건이나 상황 묘사는 사실 현대 사회 속에서 일어난 것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있다. 주인공 히데오도 자신은 일본 조국에서 태어난 일본인으로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성인이 되고 직업인으로 활동하면서 일본인이라는 신분에 추호도 의심이 없었다. 당시 조선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고 도시 빈민촌 구석의 판자촌에서나 연로한 노인들의 언어에서 한국어를 조금씩 느낄 수 있을 뿐 사실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전무한 상황이고 조선 나라 자체가 잊힌 일본 제국 천하인 세상이다. 히데오는 자신의 조상은 조선인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한국어 및 그 역사, 나라의 존재 자체를 전혀 모른다.
큰아버지 댁 방문으로 조상의 내력과 자신의 본명, 일본 제국보다 깊은 역사와 전통, 찬란한 문화, 독특한 한글이 민족혼을 담고 있는 서적 등을 처음 접하고서 인생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조선의 한글로 자신의 시상을 표현하고픈 간절한 소망을 점차 강렬하게 마음속에 품게 된다. 조선의 산사에서 소공스님으로부터 만해 한용운의 임의 침묵과 유고집을 건네받고 충격에 휩싸인다. 너무나 고매하고 가슴속 깊은 폐부까지 심금을 울려주는 아름다운 님의 침묵의 시, 나라에 대한 절절한 애정 표현 등에 매료된다. 일정 기간 동안 회사 출장지에서 틈틈이 찾아간 대학 도서관에서의 한국 고서들을 복사하면서 한국 문화에 젖어들며 자신의 뿌리에 대한 확신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점점 강렬해진다. 한국의 얼과 글을 시로 살리고 싶다. 내지 일본인과의 차별적인 대우와 군국주의 정치 사회를 점점 더 혐오하게 된다. 조선인은 어떠한 천재성을 지녔더라도 최고의 영예를 누릴 수 없으며 회사 내에서도 승진이 더디고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없는 일본의 제국적인 사회 속의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뼛속 깊이 통감하게 된다. 겉은 일본인으로서 일본 문화와 사상의 영향 속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생활하고 어울렸으나 내면의 감정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조선인이라는 뜨거운 감정이.
그러나 히데오는 조선 민족혼을 좀 더 연구하고 깨달아서 단지 시로써 그 혼을 이어가고자 하였으나 출장 후 본가로 들어오면서 수색당한 가방 속 조선 역사물 복사 책들로 사상범으로 체포되고 유치장에 갇혀서 두 달 동안 정신 교화 교육을 받게 된다. 사상범 경력은 있으나 개종된 사상범으로부터의 교육을 받으면서 조선 나라에 대한 감정이 더 철저해지고 더 강렬해짐을 느낀다, 일본에 충성한다는 선서로 풀려나지만, 내면에 흐르는 피와 사상은 더 강해진 자신을 느끼며 집에 돌아오나 아내가 일본인 헌병한테 능욕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결국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 헌병을 살해하고 일본 통치에 있는 조선을 떠나 임시정부가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상해로 도주한다. 신망받는 평범한 일본 사회인에서 자신의 뿌리와 조국을 찾아가는 실향민으로 변모하여 삶의 터전을 탈출한다.
일본은 세계 3위권에 드는 최강국으로서 군부 통치하에 독재정치를 실시하고 있으며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지식인들이 불평을 쏟아내고 인민 평등 이념의 사회주의자들도 간간이 섞여 있어 비상 통제를 펼치고 있다. 육군 세력의 쿠데타로 정치 권한이 이양되고 천황은 실권이 없는 나약한 위치이며, 만주와 중국 본토를 계속 침략해 들어가기 위한 전쟁을 위해 젊은이들은 군대에 징집되어 훈련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작가는 해방 후 이어지는 한국의 정치 사회가 마치 일제 식민지하의 정치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비유하고 있다. 일본의 문화와 사회 특성, 군부 통치, 자유 억압 등의 80년대 한국 사회를 여전히 일본 식민지 아래의 통치로 비유하고 있다.
또한 주인공으로 하여금 진정한 민족의 삶, 주체적인 민족의 혼 등을 일깨우고 싶었으리라. 사회 깊숙이 침투하는 서양의 문화를 배척하고 조선의 민족혼과 얼을 강조하고 진정한 자유와 애국지사들의 애국심을 상기하고 싶었으리라.
역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간다. 깊은 전통과 얼과 혼이라는 단단한 뿌리를 깊게 박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살이 붙여지며 더욱더 풍성한 가지로 뻗어나가는 것이 발전적이지 않을까. 무분별한 흡수보다는 취사선택하여 한 요소씩 더 가미하게 되고 단단한 기반 위에 몸체를 살쪄가면서 다듬어져 견고하고 튼실하게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참다운 세계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후손들의 역할이 아닐까.
민족의 혼이 고조선, 삼국시대, 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로 찬란히 이어져 내려왔음을 주인공 히데오는 느꼈으리라. 그러한 조선의 삶을 갈구했으리라. 사라진 조선어를 멋진 시로써 살려내리라는 각오로 상해로 떠나는 히데오의 인생 새 출발이 너무나 거대하지만 미미한 출발이 불씨가 되어 조국 회복의 길로 안내하는 인도자의 꿈, 비명 속에서 민족의 혼과 얼과 글과 말을 살려내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바로 희망임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