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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Oct 05. 2016

가짜를 위한 변명



나는 어린 장미다.

5월의 햇살 속에 꽃망울을 살짝 터뜨린

여리여리한 분홍 장미.



내가 사는 정원에서 우리 장미는

꽃 중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다른 꽃들은 우리의 아름다움에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고,

우리들의 달콤한 향기로

나비와 벌들은 매일 축제를 벌였다.



그러나.....



나보다 먼저 피어나 화려한 꽃태를

자랑하는 언니들도

꽃잎에 생긴 점이며 주름이

무척 신경 쓰이는 이모들도

몇 장 남지 않은 꽃잎을 붙잡으려

애태우는 할머니들도

한결같이 부러워한 또 다른 장미가 있었다.



그녀는 주인집 거실의 화병 속에 앉아서

늘 우아한 모습으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이 집에 온 지 이미 석 달도 훨씬 넘었다는데

색상도 모양도 흩트러짐 없는 고운 꽃잎의 자태며

벌레 먹은 흔적조차 없는

파르르 윤기가 나는 잎이며

모두가 말하는 최강 동안의 모습이었다.



우리 중에 아무도

그녀의 향기를 맡아본 이는 없지만

분명히 그 향기 또한 완벽할거라고 수군거렸다.



아무렴,


 

주인이 각종 영양제며 보톡스에 철저한 관리까지

해 줄텐데 저 정도의 미모를 유지하는 건

당연하다며

질투하고 시기했다.



비가 오면 그저 처량히 비를 맞아야 하고
뜨거운 태양열이 쏟아져도 피할 수 없어서,

꽃잎이 망가지고 색이 변하는 우리의 아픔을

그녀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들고 나오는 쓰레기봉투 안에서

그녀의 모습이 발견되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꼿꼿이 줄기를 세운채

영원히 시들지 않는 장미의 이름으로,

우리들의 '뱀파이어 동안 미인'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장미 정원의 생명력 넘치는 꽃송이들과 꿀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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