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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Dec 17. 2016

아이유 콘서트 2016 in 홍콩

"24 Steps" and more than that!

콘서트가 시작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도 바쁜 걸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인파를 따라서 홍콩섬 완차이에 있는 홍콩 컨벤션 센터(Hong Kong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re)의 Hall 5BC에 이르렀다. 두 달 전에 가까스로 티켓을 구했는데, 이미 특정 카드사를 통해 선판매가 된 후 남은 티켓 중에 좌석 배치도만 보고 고른 자리라서 내심 어떨지 궁금했다. 스태프의 도움으로 겨우 찾은 필자의 자리는 다행히 무대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아이유(IU)는 그녀로 인해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대표적인 한류 스타이다. 홍콩에도 아이유를 좋아하는 분들이 아주 많다. 한국에서 팬미팅이나 콘서트가 있을 때마다 당연스럽게 비행길에 오르는 홍콩인 팬을 한 명 알고 있는데, 그 친구도 오늘 여기 어딘가에 와 있을 거 같았다.


아이유가 홍콩을 방문할 때마다 각종 신문에도 대서특필된다. 지난 몇 년간은 화보 촬영, 뮤직 페스티벌이나 쇼케이스를 위해 종종 홍콩을 다녀갔다. 아이유 특유의 까끌거리는,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은, 목소리가 중국풍의 노래에도 아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해인 2015년, 아이유가 홍콩 콘서트에서 부른 헤이팁까이(희첩가, 囍帖街)를 듣고 난 후였다. 당시 홍콩 언론과 원작곡자는 아이유에게 타고난 외모와 목소리 그리고 노력까지 겸비한 "천사의 목소리"라고 극찬을 했었다.


   

그리고 2016년 12월 16일 그녀가 "24 Steps"라는 단독 콘서트로 다시 홍콩을 찾아왔다. 작년보다 더욱 커진 규모였다. 이전 콘서트에서 아이유는 무척이나 수줍고 낯을 가리는 소녀(?)의 이미지였는데, "스물셋(Twenty three)"이라는 곡을 발표한 이후 그리고 24살이 되는 해를 보내며 맞이하는 첫 해외 콘서트인 만큼 뭔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아이유 홍콩 콘서트 2016의 포스터 (이미지 출처: TicketHK)


콘서트장 안을 둘러보니 삼삼오오 앉아있는 젊은 남녀들, 부모님 손을 잡고 온 아이들, 그리고 왠지 열혈팬들이 아닐까 주목되는 서너 명씩 몰려다니는 남성들의 그룹. 이미 기대로 부푼 것 같은 뜨거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모든 조명이 꺼지면서 화려한 라이브 뮤직이 시작되었고 홍콩분들이 좋아할 만한 강렬한 레드 조명들이 춤추기 시작했다. 무대 중앙의 대형 스크린에는 긴 머리칼을 잘라내는 도발적인 모습의 아이유가 뮤직 비디오에 등장하면서 콘서트의 막이 올랐다. 오랜만에 경쾌한 단발머리를 한 아이유가 레드 미니 드레스를 입고 "스물 셋"을 개사한 "스물 넷(Twenty Four)"을 첫 곡으로 불렀다. 약간은 긴장한 표정의 아이유는 외국인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댄스곡으로 구성된 1부가 끝난 후, 이어진 2부에서는 "꽃갈피" 수록곡들을 아이유가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잔잔하게 불렀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서정적인 곡들을 홍콩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매우 궁금했다. 특히 필자 앞쪽에 쪼로록 앉은 젊은 남성들. 주변 사람들은 따라부르기도 하고 야광봉을 흔들며 리듬을 타고 있었는데, 이 세 분은 전혀 미동도 없이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목격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 마음까지 설레었다. 특히 두 곡의 광동어 노래(囍帖街와 喜歡你)를 아름답게 소화해냈을 때, 홍콩 팬들은 마치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환호를 했다.



3부에서는 다시 경쾌한 댄스곡을 부르며 세련된 퍼포먼스를 뽐내는 공연이 이어졌는데, 무대가 훨씬 편해졌는지 아이유의 표정도 급격히 밝아졌다. 1부와 2부 사이에 관객과 아티스트 간의 탐색전 같은 줄타기가 이어졌다면, 3부에 와서야 비로소 서로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표현하면 알맞을 듯하다. 홍콩인들이 공연을 관람하는 태도가 우리와는 달리 다소 차가워 문화적 충격을 느꼈을텐데,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영리한 아이유가 홍콩 팬들의 조용하지만 뜨거운 사랑을 이해했나보다.  



헤어지기 아쉬워 무려 3번의 앵콜에 응해주며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준 아이유. 장장 3시간여의 라이브 공연이 끝난 후,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노래 "무릎"이라는 곡이 내 입술 위에서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그 정도로 깊은 여운이 남았다. 내년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그녀의 약속을 희망처럼 붙잡고 새해를 맞이하게 될 것만 같다.


마지막 앵콜곡을 마친 후 팬들에게 blowing kiss를 보내며 작별 인사를 하는 아이유



<무릎 - 아이유> 중에서


모두 잠드는 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다 지나버린 오늘을
보내지 못하고서 깨어있어


누굴 기다리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던가
그것도 아니면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자리를 떠올리나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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