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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라미 Aug 04. 2023

여덟시간의 공포, 어둠 속에서 더위를 견딘 시간

손전등 불빛 밑에서도 어깨춤을 추는 날이 오겠죠?

송크란 기간이라 맥주를 더 살수 없어서 슬펐던 밤.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 두시쯤 갑자기 정전이 됐다. 몇일전에 큰 쇼핑몰도 정전이 되었기에 태국에선 이런 일이 더러 일어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제일 처음 들었다. 일시적이라고 생각하고 십여분을 기다리다가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더니 관리소에 직접 물어보라고 넘겼다. 관리소에서는 집주인이 전기세를 내지 않아 단전이 된 것이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른 대낮이었고 전기세만 납부하면 금세 전기가 돌아오고 에어컨을 켤수있을 거란 생각에 그다지 절박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무던히도 느리게 흘렀고, 온 얼굴과 몸에서는 땀이 뚝뚝 흐르다 못해 뭉친 땀으로 인해 살결이 끈적해졌다. 다섯 시간쯤 되자 몸의 모든 구멍에서 쉰내가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네시쯤 하교한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시원한 물을 찾았지만 냉동고 벽에 있는 얼음도 녹아내릴 지경인데 찬물이 남아있을 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심심하다 노래를 부르는 통에 배터리가 삼십 프로쯤 남은 소중한 태블릿으로 얼마간의 시간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이내 덥다며 금세 힘들어 했고 어쩔 수 없이 감기 걸린 아이를 찬물로 샤워를 시켰다.

      

정전 발생 네 시간쯤 지나자 어둠이 집안 곳곳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집주인은 공공전기공사에서 사람이 나와 선을 다시 연결해야만 이 사태가 마무리 된다고 알려주며 오늘 밤 안에는 올거라는 모호한 답변을 했다. 본인도 그들이 언제 올지 ‘당연히’ 모른다고 덧붙이며. 더위에 화가 점차 솟구쳤고 인덕션도 냉장고도 멈춘 상태에서 요리도 불가했다. 머물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탓에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아낌없이 소진하고 가려고 미리 식단을 짠 것도 어그러졌다. 여분의 손전등이나 음식제공이라도 해야한다고 항의한 나에게 프랑스인 집주인은 여자는 나의 태도를 오히려 이상하게 여겼다. 왜 어둡고 더운 집안에 머물러 있냐면서. 레스토랑이든 쇼핑몰에 가 있으면 되지 않냐고. 문화차이인지 그저 마인드가 나와 다른건지 나는 이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도 모른 채로 무턱대고 택시타고 쇼핑몰까지 가서 지치고 졸린 아이와 뻗치기하듯 머무르는 것이 전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심지어 이것은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집주인들의 말에 입술까지 거친말들이 올라왔지만 여긴 태국이고, 그들은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되뇌이며 대화를 멈췄다. 거센 항의의 결과로 집주인의 남편은 랜턴 몇 개를 사왔다. 새카만 집을 손전등 네 개로 겨우 비추며 배달된 치킨을 아이와 나눠 먹었다.      


사실 나는 너무 덥고 지쳐서 입맛조차 상실한 상태였다. 삼십도가 넘는 온도에 일곱시간을 버티고 있다보니 내 몸뚱아리 존재 자체가 거추장스럽고 더러운 고깃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접히는 뱃살과 허벅지살 조차도 왜이렇게 살찌워졌는지 이상하게 화가 났다. 활짝 열어놓은 테라스 문을 통해 도마뱀과 파리들이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더위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몇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집안을 잠식해온 어둠이었다. 마침내 집안이 시커먼 칠흑 속에 잠겼을 때 더위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빛을 잃자 사방이 막힌 것처럼 공포스러웠고 손전등 빛이 닿는 작은 공간안에 정신도 육체도 갇혀버렸다. 여전히 휴대폰 배터리는 소량이지만 남아있었고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었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닿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시도했던건 휴대용 선풍기를 가장 높은 강도로 틀고 그 소음을 최대화 시킨 것이었다. 바람의 세기에 비해 선풍기의 소음은 꽤나 컸고 그것은 어둠의 적막을 얼마간 물리쳐주었다. 그리곤 녹아내리고 있는 냉동고에 고이 보관했던 맥주 한 캔을 조심히 땄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한 캔이 더위와 어둠의 공포에서 나의 평정심을 찾아줄 구원투수였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첫 모금을 들이키며 요동치는 불안함과 막막함을 씻어내려고 노력했다. 현재의 상황과 이 감정들은 스쳐지나가는 순간이며, 나는 지금 매우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맥주 한캔이 거의 바닥을 드러낼 즈음 나는 완전히 나가떨어졌다. 오히려 정전이 곧 종료될 거라는 믿음을 버리니 평온함이 찾아왔다. 땀으로 끈적이는 몸도, 지독한 땀 냄새도, 칠흑 같은 어둠도 그저 내버려두자고 완전히 포기하며 미지근해진 마지막 맥주 한 모금을 털어 넣었을 때 집안 곳곳의 전등과 에어콘이 동시에 뿅 하고 켜졌다. 나도 모르게 짐승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어둠속에 익숙해있던 두 눈은 순간 밝아진 시야에 곧바로 적응이 안 될 지경이었다. 가로등도, 네온사인의 간판도 많지 않은 푸켓타운 한복판에서 광명을 찾은 두 눈. 전기가 들어오자 곧 온수 사용이 가능해졌고 잊지 못할 만큼 시원하게 땀에 절은 몸을 박박 씻어냈다. 평소에 신경써서 닦지 않던 발꿈치부터 무릎 뒤, 귀 뒤까지 싹싹 씻어내며 엄청난 쾌감을 느꼈다. 시원한 에어콘 바람 밑에서 머리를 말리던 중 긴장이 풀렸는지 취기가 올라왔다. 고작 4.8도짜리 맥주 한캔에 취기라니. 헛웃음이 나오며 이만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액땜한번 거하게 하고 이 집을 떠나는 구나 싶었다. 그래도 별일 없이 지난 몇주 잘 지내서 고마웠다는 마음과 함께 집주인을 거세게 몰아붙인 것이 조금은 미안했다. 여전히 안일한 대처를 했던 그들의 태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나를 공포에 밀어 넣은 것은 아니었기에.      


더 놀라웠던 건 아이가 잠들자 필리핀 헬퍼가 고요하고 어두운 거실을 보며 마치 고향집에 있는 것 같다고 한 것이었다. 그녀는 마닐라 시골 마을이 고향인데, 그 곳에는 전기가 잘 안들어오냐고 물었더니 우기에는 특히나 위험해서 전기를 자주 끊어두지만 평소에도 이렇게 어둡게 저녁을 보낸다고 답했다. 내가 어둠속에서 전전긍긍하며 두려워할 때 헬퍼는 본인의 고향을 생각하며 친숙함을 느꼈다니. 엄청난 충격이었다. 토끼눈이 된 내 표정을 보며 그녀는 웃으면서 덧붙였다. 본인의 고향에서는 선풍기로 이정도 더위를 견디는 게 일상이라고. 나는 여덟시간동안 내가 조선시대 사람도 아니고 이 폭염에 왜 이렇게 버텨야 하는지 온갖 불만을 토해냈는데 마닐라에서는 이게 일상이라니. 한순간에 입을 다물게 되었다. 어둡고 더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달라고 하니 ‘근처 레스토랑에 가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했던 프랑스인 집주인과 부채와 선풍기로 폭염을 버텨낸다는 헬퍼 사이에서 뜬금없이 we are the world를 외치고 싶어졌다. 삶의 환경과 생각이 모두 이토록 다른데 내가 가진 하나의 생각으로만 따져 묻고 화를 낸 건 아닌지 그 여덟 시간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반나절이 가깝게 더위와 어둠과 사투를 벌이다가 갑자기 광명을 찾고 시원한 바람을 쐬니 개똥철학이 줄줄 떠오른다. 당연한 것들에 감사하자는 생각들. 위기를 좀 더 가볍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 작은 충격에도 쿠크다스처럼 바스라지는 멘탈을 다시금 붙잡으며 이 숙소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손전등 불빛 밑에서도 댄스음악에 맞춰 어깨춤을 추고 치킨 몇 조각을 거뜬히 해치우는 내 딸아이의 낙천적인 마음이 나에게도 언젠가 가능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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